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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천년 동안 교회는 사도 성 바오로를 아무도 [친 로마파]니, [친 파이서리파]라고, 부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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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찬 [andreaphc] 쪽지 캡슐

2020-07-19 ㅣ No.220545

천주교회는 사도 성 바오로를, 2천년 동안, 성경이나  어떤 책에서도, 아무도, 그를 [친 로마(Roma)파], [친 파이서리(Pharisei)파]니 하며, 차별하거나, 소외시키거나, 낮추어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도 바오로의 강론과 복음전파에 감격하며 감사하였다.



사도 성 베드로와 사도 성 바오로는 실로 세계교회사에 있어서뿐 아니라, 특히, 로마 신도단체를 이룩하고 교구를 세우는 대 역사창조에 있어서도 천주교회의 위대한 창립자들이며, 더욱이 성 바오로 사도는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저술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바오로(Paulus) 사도는 본래 이름이 사오로(Saulus)였으며, 타르소(Tarsus) 출신으로,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스라엘이 로마 대제국에 점령당한 후, 로마 대제국으로부터 [로마대제국 시민권]이 주어질 정도로 저명한 집안 출신이었다. 소년시절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 시대에 가장 학덕과 명망이 높은 큰 스승 가말리엘(Rabbi Gamaliel)의  슬하에서,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전념하여 익히던 大明律 이상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중요히 여기는, 유데아 민족의 전통 법률(Torah) 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던 청년이었다. 

사오로가 30대 중반에 이르도록 당시 이스라엘의 보수적인 파리서이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기 그리스도교신자들을 반민족적인 분열주의적 사이비 신흥종파로 취급하였으며, 이들을 색출하고, 체포하며 형벌을 가하고, 나아가 구금하였으며, 종종 즉석에서 타살하기도 하였는데, 열두 사도 중 젊은 층에 속하던 사도 작은 야고버(St. Jacobus)를, 마치 6.25 사변 때 우리나라에서 한 때 자행되었던 인민재판처럼, 많은 군중이 모여 사도 야고버를 둘러싸고 돌을 던져 쳐죽이는데, 사오로도 참석하였었다. 

그러나 사오로가 36세 경(?)에 이르러 그리스도교 신도들을 잡으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 예수님의 발현을 목도하면서 기적을 체험한 후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하였고, 이름도 [사오로]를 [바오로]라고 개명하였다. 그 때부터 바오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전파에 눈부신 활약을 하므로서, 이스라엘 민족들만이 신봉하는 민족종교(religio nationalis) 수준에 불가피하게 얽매어 있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인식을, 전 세계 인류를 위한, 전 인류가 신앙해야 하는 세계적인 보편 교회(globalization of the universal Church)로 발전시키는데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바오로 사도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천주교회가 이렇듯 세계적인 보편교회로 성장하기까지는 훨씬 더딘 걸음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찾아내어 혹심한 벌을 가하며, 무자비하게 박해하던 사오로가 개종하여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열심히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사도 바오로]를 존경하고, 본받고자 힘쓰며 오늘날까지도 [복음 전파의 큰 스승]으로 섬기며 사랑하고 있다. 지난 2천년 동안 천주교회는 사도 성 바오로를 아무도 [친 로마파]니, [친 파이서리파]라고, 부르지 않았다!

반세기 전에 필자가 서울 혜화동에 있는 천주교회의 성신대학에서 철학과 학생으로 공부할 때, 금년 100세로 天壽를 하시는 위대한 한국 철학가 김형석 교수님이 종종 오셔서 우리들에게 특강을 하신 적이 있었다. 천주교회 사제들을 양성하는 대신학교에 특강 초청을 받으시는 교수님들은 그리 흔하지 않던 시대라서, 교수님께서도 꽤 기뻐하시는 편이셨고, 우리 학생들도 무척 즐거워하였다. (He was very happy with us and we were all very lucky to see him !) 그 때도 교수님의 철학강의는 매우 드문 명강의였으며, 우리 젊은이들은 늘 감격하며 감사하였다. 

그 후, 필자는 1971년 천주교회의 사제가 되어, 한국주교회의 여러 주교님들의 잔심부름을 하느라고, 로마와 유럽 여러 나라의 대성당들을 수십 차례 방문하며 참배할 수가 있었는데, 뜻밖에도 정말 예상 외로, 필자 자신이  한국천주교회 탄생지 천진암 성지 개발과,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는일에 얽매이게 되었는데, 평소에 존경하던 이 시대 한민족의 위대한 사상가요, 선구적인 광풍제월(光風霽月) 이신 철학가 김동길 교수님을 100년계획 위원회의 한민족 중장기 사업에 고문으로 모셨다. 김교수님께서도 전직 서울문과대 학장님들이나 전직 총리들과 함께 천진암 100년계획 한민족 대성당 건립위원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신 것을 반가워하시고, 자택으로 30여명의 위원들을 초청하여 고명없는 맛있는 냉면누-드 냉면(모윤숙 여사가 이렇게 불렀다고 전함)을 두 차례나 대접하여 주셨다. 우리 모든 위원들도 무척 감사하며 즐거워하였다.(He was very happy with us and we were all also very lucky to see him !)  

교수님께서는 위원회 때마다 꼭 참석하시어 고견을 주셨고, 미국에 가셔서도 장시간 몇차례에 걸쳐 한민족 100년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 계획을 강의하시어, 재미 교포 교우들로부터 격찬의 시청소감을 국내에서까지 들을 수가 있었고, 로마와 전 세계에도 알려주셨다. 

이 시대 한민족의 두 분 원로들께서 최근 역시 100세로 天壽를 하시고 먼저 가시는 백선엽 장군의 영원한 안식처를 위하여 한 말씀씩 하시는데 국민들과 정부 책임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역시 지난 해부터 허위적거리며 8순 고개를 넘으면서, 저 어른들의 뒤를 바라보며,우리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길 위에서 외람되지만 하루살이 숨넘어가는 허약한 군말이나마 보태고 싶다. 지금 얼마나 많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저 원로 대가들의 말씀은 무게가 다름을 깨달아야만 한텐데,,,! 

그런데 매우 적지 않은 이들이 돈과 힘에 겨워, 실로  고약한 소리도 적지 않게 주저하지 않는다. 폭언은 언어폭력으로서 끔찍한 폭력이다. 특히, 남의 신상에 관한 폭언이나 남의 명예와 남의 종교를 헐뜯는 폭언은 자신에게 돌아올 폭탄이 된다. 남의 얼굴에 피를 뿌리고자, 자신이 한 입 가득히 피를 머금고서 남에게 뿜으면, 남의 얼굴에 피칠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자신의 입에 피가 묻어서 그 입이 먼저 피묻은 입이 되어 더럽혀지게 마련이다. 함혈분인이면 선오기구(含血吩人 先汚其口)다. 

우리나라는 땅도 그리 넓지 않지만 자원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우리에게 하늘이 내려주시는 자원이 있다면, 어쩌다가 가끔씩 태어나는 훌륭한 위인 몇분들이다. 이분들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일에 온 겨레가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 저런 못된 폭언을 일삼는 그대는 민족의 위대한 저 명인들처럼 무슨 일을 하였는가 뒤돌아보며 깊이 반성할 것이다?!  <추후 계속>  Msgr. By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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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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