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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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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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8-08 ㅣ No.139969

책임(責任)을 뜻하는 영어는 'Responsibility'‘Accountability'가 있습니다. 하나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입니다. 강재구 소령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훈련도중 수류탄이 떨어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시간이었습니다. 강재구 소령은 부하들을 위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육군은 전 장병이 모금을 해서 강재구 소령을 기리는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동상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자유의 전선 월남 출정을 위한 맹호부대의 수류탄 던지기 연습 중 한 부하의 실수로 많은 부하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 순간 터지는 폭탄을 막아 안고 자기 몸을 희생하다.”

 

베드로 사도의 ’Quo vadis Domine(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입니다. 박해가 심해지면서 베드로 사도는 로마를 빠져나와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다가오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대답합니다. ‘네가 도망쳐 나온 로마로 가는 길이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금 로마로 돌아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과 어둠에 직면한 인류에게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Responsibility'를 다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이고, 법적인 의미입니다. 행위가 있었고,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독일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였습니다. 독일은 인류와 역사 앞에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겸허하게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였지만 아직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전범이 안치된 곳에서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와 국제사회 앞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는 경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기업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는 기업인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경영이 악화되었음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기업인도 있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업인도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2000312일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교회가 인류 앞에 잘못한 것에 대해서 겸허하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교회의 권위로 과학적인 진리를 가리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무고한 사람을 재판에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질서를 지킨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이단으로 단죄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Accountability'를 통하여 발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고 있을 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청하였습니다. ‘주님 저도 물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물 위를 걸어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물위를 걷다가 그만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두려움에 빠진 베드로 사도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손을 잡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 사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두려움의 바다, 상심의 바다, 근심의 바다, 욕망의 바다, 시기의 바다, 분노의 바다에 있습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그만 바다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그만 바다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음성을 큰 바람 속에서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진 속에서 듣지 못하였습니다. 불길 속에서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은 내적인 침묵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때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소중한 주님과 떨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행복합니다.’

 

교회가, 신앙인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면, 주기보다 받으려 하면 세상이라는 바다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욕망의 바다에, 욕심의 바다에 빠지려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해서는 먼저 희생하고, 먼저 나누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 신부님, 마더데레사 수녀님은 세상의 등대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희생의 빛으로, 사랑이 빛으로, 희망의 빛으로 손을 내밀었고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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