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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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주교에게 - 파수꾼이 깨어 있지 않다면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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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0-11-12 ㅣ No.142117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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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파수꾼이 깨어 있지 않다면...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진리' 곧 나의 가르침과 말로 이루어진 유산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당연히 내가 내 교회에 가르쳤던 윤리적이고 영적인 가치들을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믿음과 나의 교리와 살아 있는 말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 내 교회 안의 어떤 이들이, 즉 교만하고 주제넘기 때문에 분명히 이단적인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하고 신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구속'과 내 '법'의 영적 가치를 마땅히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내 '법'은 그 자체로 영원하고 신적인 것이기에 변함없고, 절대로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누구도, 심지어 교황까지도, 그것을 조작한다거나 인간적인 교만과 이기심에 굴복시킬 권한은 없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빈틈없이 항구하게 깨어 경계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고, 이는 과거건 미래건 한결같은 의무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이 영적 보화들을 거저 주신 것은 인류가 '암흑의 지배자'의 압제에서 해방됨으로써 악에서 자유로워지고 드높여져서,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요 주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악의 어두운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보호하는 것이 과거에도 지금도 주교의 의무이다.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이 어두운 세력들은 그들의 파괴 활동을 위해서 하느님께 뽑힌 이들을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이 뽑힌 이들은 신심 깊고, 충실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많은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열정으로 불타는 아들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봉헌자들이 '신비체'의 끔찍하고 깊은 상처인 교만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너희와 교회의 원수들이며 내 원수들이기도 한 자들이 저지르는 사탄적인 붕괴와 파괴 활동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에도 위신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거기에 필요한 정력과 힘을 쏟아 대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항상 체면이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소경이 길을 인도한다면......


아들아, 오류와 부도덕의 만연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느냐? 이단의 급속한 확산은? 또 자연법에 어긋나는 낙태나 매춘을 합법화하고 범죄를 정당화하려 드는 추세에 대해서는?

사실, 선량한 사람들 편의 항의의 외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교회 안에 집단적 항의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진리의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신성한 권리를 옹호할 목적으로 정당한 수단이라면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말한다. 

그런데 주교와 사제들은 흔히 입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해야 할 대항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악과 공모하고 악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아들아, 네가 알다시피, 현대의 사목은 실제적인 모순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 무분별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든 조직들이 배척을 받는 중이거나 적어도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에 사탄의 조직들은 교의적인 악과 윤리적인 악, 그리고 흔히 물질적인 악까지 대거 전파함으로써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된 사회 속에서 아무런 배척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척척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 내 교회에는 얼마나 큰 맹목과 나약이 도사리고 있는지! 하지만 성인들과 순교자들은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하느님과 내 교회의 원수들은 악을 위해서 서로 단합하였다. 내 주교와 사제들도 선을 위해서 그렇게 단합했더라면, 내 교회의 면모가 오늘날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의무를 소홀히 한 무거운 책임


현대적 진보의 실현 가운데서, 특히 홍보 전달 수단들이 내 교회 안의 여러 악에 대해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정당화는, 영원한 '심판자'인 내게는 말할 것도 없이 통하지 않는 핑계이다.....  나는 하느님이니 현재적 위기의 근원을 완전히 알고 있다. 그 근원이 얼마나 다양하건 낱낱이 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신적 '정의' 앞에서는 핑계를 둘러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수단들과 공학 기술 그 자체는 선을 위해서 혹은 악을 막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었을 터이다. 합리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자만심이 없는 살아 있는 믿음, 행동적이고 순수한 믿음으로 악의 세력들과 대항했더라면 말이다.


나는 '심판' 때에 내 사제와 주교들의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의 정도를 평가할 작정이다!

어떤 핑계도 쓸데없으리니,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고, 앞으로도 결코 면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무거운 책임이 다수의 목자들과 사제들의 양심을 짓누르는 것은, 악의 세력을 막아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악의 세력이라면 단지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어머니가 끈질지게 가르쳐 온 모든 수단들을, 예컨데 겸손과 기도와 속죄와 같은 모든 수단들을 써서 대항하기도 해야 했던 것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규정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말았다. 인생은 시련이고, 지옥의 어두운 세력과 그 속임수와 대항해야 하는 투쟁이다. 이를 변형시키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변형시키는 것이고, '구속'을 변형시키는 것이며, 구속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렇다, 아들아. 반역하지 않고 저지른 잘못을 겸손하게 참회하는 것이 더 낫고 더 슬기로운 행위일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12월 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는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내 주교와 사제들 가운데서 많은 주교들과 매우 많은 사제들은 어떤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겠느냐?

1) 이단적 행동주의, 곧 거짓 열성으로 포장된 자만심.

2) 때때로 기진 맥진할 정도로 외적 활동에 골몰하는 행위. 이는 하느님의 뜻에서 나온 계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교활한 오만과 음흉한 술책에 응하는 것이다.

3) 이 격화된 활동은 내적 활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의 확신이 뿌리를 박게 되었으니, 그들 자신이 바로 지주이고, 이 지주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다. 더 간단히 표현하면, 그들 자신에 대해 과장된 평가를 하게 되었고,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맡김의 정신은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4) 복음적 원칙에 따라 그들 자신을 새롭게 하고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기를 거부한 행위. 이는 하늘의 호소와 경고 및 초자연적인 여러 사실과 사건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무거운 죄가 된다.

5) 편의상 신중함이라는 미명으로 영혼들을 위한 크나큰 선익을 가로막은 행위. 그럼에도 그들 자신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수없이 많이 하곤 하였다!

6) 합리주의와 심지어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에 젖어 있는 일부 주교들의 행위

7) 아랫사람들에게서 오는 비난을 피하고 윗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성가신 일을 피하기 위해서 언제나 오로지 타협만을 찾아 온 행위. 이는 내가 그들에게 엄중히 책망하는 점이니, 무릇 타협이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성인들에게서 온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타협은 내 '복음'과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8) 교회 안에 널리 퍼진 혼란에 대한 책임

9) 더욱이, 교리 및 흔히 윤리 분야의 오염이 심각한 상당수의 신학교에 대한 책임. 따라서 그들은 오류와 이단의 파급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 거의 못 알아듣거나 전연 못 알아들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10) 어리석은 권위의 남용으로 초래된, 현대 사목상의 여러 모순에 대한 목자와 사제들의 책임. 권위의 원칙이 무질서의 침범으로부터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은 변해야 한다는 말과, 영혼의 목자들에게는 착함과 단호함이 썩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도 옳은 말이다.

11) 그리고 악마적인 현대 생활에 영향을 받아 많은 경우에 그것을 승인하고 축복까지 하는 다수의 주교와 사제들이 범한 매우 중대한 잘못이 있다. 악의 어두운 세력을 막고 내 교회를 파괴하는 그 세력과 대항하기 위해서 뽑힌 그들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인 그들이 지옥 어둠의 지배를 받아 불이 꺼져 버렸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생명의 누룩이요 땅의 소금인 그들이 마귀들의 공략으로 바싹 마르고 마비되고 만 것이다.

12) 게다가, 세상에서 한다한 사람들과 권력자들과 통치술을 겨룬 잘못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교술을 자랑하지만,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이요 인류의 '구원자'이며 하느님께서 온 인류에게 파견하신 최고 최상의 '특사'인 나는 오직 한 가지의 외교술, 곧 '진리'만을 외교술로 썼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 예수는 통치자가 된 적이 없었다. 공생활 삼 년 동안 영예나 인간적 칭송이나 동의를 구한 적이 결코 없었고, '착한 목자'로서 언제나 오로지 하나의 갈망만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사탄의 끔찍한 멍에에서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사탄이 있다는 것마저 믿지 않는 것이다.

13) 끝으로, 목자와 사제들의 또 한 가지 중대한 잘못은 지옥의 어두운 세력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들과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는 어처구니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무관심, 복음의 가르침과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나의 모범 및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들을 내쫓으라고 내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준 권한과 명백한 대조를 이루는 무관심이다. 이것이야말로 음흉한 속임수가 얼마나 극에 이르렀는지를 드러내는 점이다! 주교와 사제들이, 참 하느님인 내가 무익하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참 하느님인 나 예수가 모든 시대에 다 유익하고 필요한 말과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말이다?

나는 하느님이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내 가르침은 모든 세대에 걸쳐 유효하다.

그런데 이 무신론적이고 비뚤어지고 믿음이 없는 세대의 주교와 사제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대체 내 주교들이, 현 시대는 사람이 된 내가 세상에서 살았던 시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냐?

현대적인 진보 - 여기서 내가 말하는 진보는 사탄의 술책으로 조종되는 물질적 진보이다. - 는, 사회적이고 세계적인 무질서와 타락의 도구로 사탄 자신에게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단 말이냐?

공업 기술이나 물질적인 안락은 인류 전체의 지고한 영적 이익과 단절되어 있는 한 인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 주교와 사제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냐?

깨닫지 못한 것이냐? 아니면 알려고 들지 않는 것이 편리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냐? 그리하여 악의 어둡고 불가해한 세력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진리라는 무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타협이라는 악마적 무기를 사용하기를 택했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사제직에 부여된 막중한 책임으로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냐? 주교와 사제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하느님께서 뽑으신 스승으로서, 물질적 진보와 소비 문화에 내재하는 위험과 함정으로부터 영혼들을 지킬 의무를 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아니다, 아니다, 아들아,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진실에 대해서 왜 걱정하느냐? 그들 자신의 선익과 교회 전체의 선익을 위해서, 겸손하게 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꼼꼼히 양심 성찰을 하게 하려고 거듭거듭 반복한 나의 당부는 불행히도 아무런 반향을 얻어 내지 못하였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아들아, 구원해 주려고 영혼들의 문을 두드리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반항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 이들의 선배 중 한 사람이 유다였다. 그러나 유다의 반항은 결국 그의 멸망이 되고 말았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기도하고, 보속하고,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12월 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사목상의 모순


아들아, 주교들에게 준 지난번 메시지에서 나는 주교들과 사제들의 사목에 나타나고 있는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모순은 그들이 하고자만 한다면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의 원인을 찾는 일이다.


누구든지 일이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면 못쓴다. 그들이 겸손하게 내게 청한다면, 내가 곁에 있으면서 빛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나는 지금이 다시 점검할 때요, 그것도 긴급한 재점검의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굳셈과 사랑과 신중성을 가지고 개입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악마는 내 교회가 무기력한 수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강하고 대담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먹은 채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지리멸렬하다기 보다는 월등 더 모순적인 (상황)이다. 모순이 어찌나 흔하게 만연해 있는지 생활의 습관으로 변해 버렸을 지경이고, 그래서 더 이상은 모순으로 보이지도 않게 된 것이다. 내 신비체 안에 널리 퍼진 이 모순은 참으로 엄청난 결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것만이 유일한 악도 아니다.


지금은 자칭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 통상 "선량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들은 아침이면 성당에 간다. 가끔 내 "말"에 대한 해석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성당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성사들을 받으러 오지만, 열렬한 믿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습관적으로, 또 어떤 이들은 가정의 전통상 다가오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죄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으면서 음란한 영화를 보거나, 음란물은 아니더라도 도둑질과 온갖 종류의 폭력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본다.


이와 같이, 물질주의적인 독이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젊은 층 사람들 속에는 부도덕이 넘쳐 흐르는 강물처럼 퍼져가고 있다.

문이란 문이 다 열려 있다. 자칭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의 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 하루가 가기 전에 중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에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다.


양심의 심판자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과, 누구의 무슨 죄건 예외 없이 줄곧 사해 주는 수많은 고해 신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곧, 아침에 '거룩한 영성체'를 하고, 저녁에는 육욕을 부추기는 것이 법칙처럼 되어 있는 댄스홀이나 극장이나 모임에 빈번히 가곤 한다는 것을!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거룩한' 영성체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은 (이렇다 할 참회 없이) 간통죄를 고백한다. 무엇이든지 사해 줄 태세로 있는 사제들이 없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제들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마태 7,6)고 한 (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말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성사들이 내 '수난'의 귀중한 열매라는 것을 잊어버렸고, '구원자'요 '해방자'인 내가 했던 말(마태 16,19; 요한 20,23 참조 - 역주)로 사도들과 그 계승자들에게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많은 사제가 그들 자신이 양심의 심판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지만, 심판자의 임무는 그의 직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죄와 그 죄의 중대성 (여부)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의 죄건 예외 없이 경솔하게 용서하는 것은 내 '자비'의 계획에 화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계획에 화답하는 것이다. 이는 구원의 수단을 저주의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은총의 무한한 가치와 그 은총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내가 원했던 수단들의 무한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너에게 모독적인 미사에 관하여 말한 적이 있지만, 지금 내 말은 미사에다 모고해를, 때로는 이중으로 모독적인 고해를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아, 이것이 바로 모령성체의 근원이다. 합법적인 것과 불법적인 것, 선과 악도 분별할 수 없게 하는 이 관용주의란 것은 대체 어디에 그 근원이 있겠느냐? 이런 이유로 지체 없는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무정부 상태가 사회 도덕에서 양심법에 이르기까지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들어와서, 일부 사제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승인하는 새로운 교리와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내는 자들이 되게 하였다.

그 결과들은 그 자체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제들에 있어서 제6계와 제9계는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극도의 교만이다. 하느님을 밀어내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며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이니, 하느님의 전능과 전지의 무소부재(無所不在)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은 끊임없이 사제들을 끌어들여서 그 자신의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되풀이해서 짓도록 한다. 그는 내 교회에서 충실한 동맹자들을 얻었으니, 이 파괴 활동의 협력자가 되게끔 그들을 유도해 온 것이다.

사탄과 그 협력자들이 나의 이 변함없는 말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겠느냐?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 역주) "죽음의 힘도 감히 교회를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역주) 내 교회는 정화되고, 내 교회는 해방되리라! 교회에 대한 내 사랑이 그것을 요구하고, 정의가 그것을 요구하고, 내 자비가 그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불이다


아들아, 앞의 메시지들 속에서 짙은 어둠으로 내 교회를 휩싸고 있는 구름에 대하여 네게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는데, 이건 어쩌다가 그냥 말해 본 것이 결코 아니다.

또 다른 기회에 '사랑'은 타고 있는 숯불로 비유될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하면서 성질이 다른 물건 - 예컨데 그 자체로는 싸늘하고 거무스름한 쇳조각 - 을 변화시켜서 불 고유의 성질을 띠게 할 수 있다. 타오르는 숯불 속에 넣은 쇳조각은 불처럼 타고 빛을 내고 탁탁 튀기도 하면서 불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지상에 내려온 '불'이다. 내 사랑으로 영혼들을 불태우고 그들에게 내 신적 '생명'이 스며들게 하기 위한 불이다. 이 불을 끄는 것은 물이 아니라, 암흑과 죄와 증오와 반역으로 뭉친 자의 영 속에 있는 온갖 더러움과 온갖 오물과 온갖 어두움이다.

타오르는 숯불에 물을 부으면 무엇이 남느냐? 김을 내는 검은 뜬숯 몇 개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사탄은) 모든 것을 창조주이신 하느님, 구속자이신 하느님,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과 반대로 행한다. 나는 내 사랑의 불을 가져오기 위해서, 영혼들에게 내 신적 사랑의 열과 빛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종살이를 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나의 형제들이 되게 하여 나와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나누어 받는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과 자유를 조금도 잃지 않은 사탄은 끊임없이 영혼들을 변질시켜서 김을 내는 뜬숯으로, 즉 그와 함께 지옥 영벌의 상속자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다.


아들아,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사실이 있으니,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는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도록 방향이 지어져 있다는 점과, 세상은 귀양살이와 싸움을 해야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 싸움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그 악한 군대의 증오와 시샘과 질투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사탄이 성공적으로 그의 계획을 성취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계획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하는 것, 그리고 주교와 사제들을 무기력한 수면 상태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그들이 빠져 있는 모순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의) 말은 나와 너희 어머니의 것이 될 터이니, 어머니께서 그 저주받은 '뱀'의 머리를 또다시 짓밟으시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신앙이 소생하고, 현재의 통탄할 모순을 생생하게 통찰하며, 진지한 회개로 돌아옴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붕괴를 멎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둠과 자만과 교만이 이기고 있을 때가 아니겠느냐?.....


아무도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아들아, 아무도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날수가 이미 헤아려져 있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나의 호소에 귀를 막고 무관심한 채로 있는 자들은 불행하다! 사람들은 이미 내 '자비'에 너무나 많이 반항하였다.

지금은 재검토할 때이다. 도끼를 나무 뿌리에 대야 할 때이다(마태 3,10 참조 - 역주). 무기력한 수면 상태를 흔들어 깨우고, 전장(戰場)으로 나가서 지옥의 원수와 대결할 때이다.

나는 사탄을 이겼고, 세상을 이겼고, 죽음을 이겼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지금은 중요한 때이지만, 너희가 나와 일치하고 너희 서로 일치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너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너희에게는 원수의 자신만만한 진군을 억제하고 멈춰 세우고 한정할 수 있는 수단들이, 그것도 더없이 효과적인 수단들이 있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네가 겪는 어려움들을 내게 바쳐 다오. 그것이 내게 봉헌한 수많은 영혼들의 어리석고 무분별한 고집을 보상할 테니 말이다.

(1975년 10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교들의 신원


주교들은 영원한 사제인 내가 나의 영구적인 사제직에 참여하게 하려고 부른 사람들이다. 주교들은 내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이다. 주교들은 나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을 우두머리로 하여 사도단을 이룬다.

주교들은 교황과 일치하여 나 하느님의 '말'을 맡아 지키며 전파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 "너희는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참조 - 역주)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구속'의 결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사제직의 완전성에 참여하는 사람들로서 모두가 지혜의 선물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지혜의 선물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불행히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고, 지혜를 지니고 있는 이들도 그 지닌 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빛의 밝기가 동일하지 않은 것과 같다. 한낮의 햇빛은 그 밝기가 달빛과 다르고, 하물며 반딧불의 밝기와는 월등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불공평하시기 때문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아들아. (사람이 지닌) 지혜의 정도는 은총의 충동에 화응하는 정도와 관계가 있다. 주의깊게 깨어 있는 정신으로 은총의 충동에 응답하되, 아낌없이, 용감하게, 때로는 영웅적으로 항구하게 응답함으로써, 그것이 (아무도 없는 곳에) 헛되이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이들은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덜 응답한 주교일수록 덜 받았을 수밖에 없다. 지혜라곤 조금도 없는 주교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모든 악의 뿌리인 자만과 교만으로 성령께서 오실 길을 가로막았음을 뜻할 뿐이다.


주제넘은 자만


내 사도들은 나와 함께 지낸 삼 년 동안 완덕의 길에서 이렇다 할 진보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영혼에 주제넘은 자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내게 한 어리석은 질문들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이 순수하고 단순하고 겸손해서 내가 각별히 사랑한 한 사도만은 예외였는데, 성령께서도 그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오순절이 되기도 전에 '지혜'의 선물을 풍성하게 내려 주셨다.


나는 부활한 이후 내 어머니에게 나타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라자로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및 다른 이들에게도 나타났지만, 내 사도들에게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도들은 굴욕감을 느꼈고 자존심이 상했으며 좀은 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 교훈으로 말미암아 자기 반성을 하게 된 그들은 내가 수난하는 동안 달아나고 말았던 큰 잘못과 떳떳하지 못했던 처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곤한 잠에 떨어진 것은 영혼에 배어든 주제넘은 자만 때문이었다. 늘 노리고 있는 '원수' 앞에서 깨어 있지 않고 그렇게 허점을 내보이고 있었으니, 그에게 지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승천하기 전 사십 일 동안 그들의 교만을 깨끗이 없앴고, 내 승천에 대해 초연할 수 있게 준비를 시켰으며, 특히 '지혜의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 안에서 자유로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켰다.

내가 그들에게 사제적 능력을 준 것은, 그것이 사제직의 완전성으로 절정에 이른 오순절의 성령 강림 때였다.


끊임없이 싸우는 십자군


자만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솟아 있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과 같다. 주교들 중에서 자만에 물든 사람들은 내가 내 '사랑'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너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내 양떼를 치는 많은 목자들이 그들의 열띤 활동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는 까닭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들에게 주었던 지난번 메시지에서 이것에 대해 이미 말했는데 일부러 다시 언급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영혼과 그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서 너무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어서, 아무리 말해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무덤을 탈환하기 위해서 십자군을 일으켰다. 지극히 거룩한 내 몸이 안장되었으니 내 무덤은 말할 것도 없이 성스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역시 무덤일뿐, 한 영혼만큼 큰 가치를 지닐 수는 없다. 영혼의 가치는 한없이 크고, 내 '구속 신비'의 대가인 까닭이다.

십자군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구원 신비의 계획 안에 포함되는 것이니, 그것이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곧 어둠의 지배자와 그의 악한 무리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십자군을 이끌어 가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목적


나의 강생과 수난과 죽음은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멸망을 초래하는 사탄의 종살이에서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나의 사제직에 주교와 사제들이 참여하는 것도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그들을 내 공동 구속자로 삼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그들은 내가 나의 말로, 특히 나의 모범으로 가르쳐 준 무기를 사용하면서, 지혜롭고 총명하고 항구하게 십자군을 이끌어, 이 십자군으로 그칠 줄 모르는 싸움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방도가 없다. 내 교회의 사람들이 이 무기들을 잘 썼더라면 오늘날의 세상은 지금과는 아주 딴판일 것이다. 사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그의 전진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동구속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 주교와 사제들은 이 의미를 잘 깨닫기 바란다! - 겸손과 가난과 고통과 사랑과 순종의 안전한 길로 나를 따르고, 그들이 내 대리자와 함께 맡아 관리하는 진리와 너무도 자주 짓밟히며 놀림감이 되는 정의를 옹호하는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권위의 길로 나를 따른다는 것이다.

주교들은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죽기 위해서 태어나고,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기 위해서 죽는다는 것을! 그러니 이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정신과 마음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은 나의 강생과 십자가의 희생 제사의 대가인 것이다.


주교와 사제들은 사람의 원수가 영혼들을 멸망으로 끌어가려고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능력이 있는 원수와 대적해야 하는 맹렬한 전투에, 외적 활동이나 이단적인 행동주의, 혹은 그 싸움에 적합하지 않은 다른 수단들을 가지고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수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은 내가 알려 준 방어 계획을 실현할 줄 몰랐다. 십자가에 달린 나를 바라보며 따른다면, 적을 과소 평가하지 않고 대적해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어 내게 되련마는!


아들아, 내 교회 안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반대들과 지배적인 혼란, 교리와 윤리의 전복과 타락, 사제와 신자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더듬거리고 있는 현상.... , 이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면 좋겠느냐? 영화관을 관찰해 보아라. 사람들이 성당에서 하는 말과 영화관에서 하는 말은 서로 대립되는, 이질적인 말이다. 성당에서는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데, 성당 사람들 사이에는 흔히 물질주의와 육정과 폭력이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메시지에서 나는 신학교를 이단의 온상으로 변질시킬 바에야 차라리 사제가 없는 편이 낫다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토록 큰 불행, 이 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겠느냐? 그 책임의 대부분은 필요한 능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다. 이는 가공할 몰지각이다. 악의 세력들이 저항할 수 없도록 진군해 오는 판인데, 그들은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게으름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이겼고(요한 16,33 - 역주), 내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겸손으로 '뱀'(묵시 12,9)의 머리를 짓밟으셨다. 너희도 겸손과 가난과 순종으로 나와 하나 되어 있을 때만 너희 영혼의 원수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영혼들의 빛이 되어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 편안한 생활과 인간적인 존경과 이익이나 찾으며 사람들의 호감을 잃을까 봐 부심하는 바람에 눈이 멀고 말았다. 불행히도, 영화에 대한 말을 다른 통탄할 상황에도 적용시킬 수 있어졌으니, 이를테면 이단적인 사제들에게 맡겨진 학교에서 실시하는 종교 교육 같은 것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나이에 이른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영혼에, 모범적인 생활을 하지 않기 십상인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 씨를 뿌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 섬세함을 요하는 사명을 사나운 이리요 마귀로 변해 버린 사제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착한 평신도에 맡기는 편이 나았을 것이고, (그렇게 했다면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이 암흑 시대에, 수많은 목자들은 나와 내 어머니의 적지 않은 개입을 침묵으로 막아 버리면서 자못 엄격하게 굴었는데, 다른 여러 상황 속에서 그런 엄격함을 더 발휘했더라면 큰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바로 본당의 조직 안에서 오류와 부도덕이 확산되고 있건만, 주교들은 이를 교회의 중심 문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도 적의 간계와 속임수와 능력과 유혹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목자들은 어찌하여 그들의 사목에 있는 심한 모순을 간파하지 못한단 말이냐? 원수는 그 자신의 화신인 물질주의로써 대대적인 전투를 개시하였고, 그 공격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반격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다.


치유책을 써야 한다


아들아, 내가 큰 고통을 느끼면서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상황에 치유책을 써서 영혼들을 기도와 속죄로 준비시키는 것이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자비'의 때가 '정의'의 때에 길을 내어 주려고 하는 시점이다. 영혼들을 준비시키되, 적어도 이 사실을 알려 주면서 치유책을 쓸 필요가 있다. 즉, (정의의) 중대한 때가 막 시작하려고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탓이 아니라 그들의 죄 탓이요, 악의 세력 앞에서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무기력 탓이라는 것을 말이다.


머지않아 내리닥칠 밤의 어둠 속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휩쓸려가지 않게 하려면, 지체없이 행동할 필요가 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큰소리로 이렇게 외쳐라 : 사람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한다!(이사 42,20 참조 - 역주)

그들의 마음속에는 '빛'이 꺼져 버렸다.

그러나 악의 세력이 이기지는 못하리라! 내 교회는 어리석은 인간적 교만에서 정화될 것이고, 나와 너희 어머니의 '사랑'이 결국 승리를 거둘 것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그리고 네 고통을 내게 바쳐 다오!

(1975년 10월 2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인 나 예수는 사랑으로써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사제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품고 있으니, 내 사제직의 완전함을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어지는 일은 없다. '사랑'인 나는 또한 '진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어두운 구름이 내 교회를 온통 휩싸고 있는 이 심각한 시기가 내 자비로운 성심에 안겨 주는 한없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내 사제들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지금은 내가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존중하면서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 교회의 주교들 중에는 그야말로 착하고 거룩한 주교들이 있고, 나는 그들에 대해서 사랑과 호의를 품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의 사목을 반드시 다시 보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주교들도 있다. (그들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토하되, 크나큰 겸손으로 내 복음의 빛, 내가 알려준 빛나는 길에 비추어 진지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긴급하다. 이 길은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준 길이지만, 사람들의 '스승'이요 '목자'요 안전한 '인도자'가 되어야 할 그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 준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상 여정은 나와 너희의 어머니께서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부터 어머니의 태중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작,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야말로 과거에도 지금도 하느님의 무한한 선하심의 신비이다.

 나는 더없이 가난한 모습으로 세상에 왔다. 외양간으로 쓰이던 춥고 누기 찬 동굴 속에서, 그 절대 빈곤 속에서 나의 지상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난은 또한 내 온 인생의 동반자였다. 노동하고 기도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내가 걸은 길이었다.

 나는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사람의 '길'이다. 나는 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환경과 관습과 풍습은 변할지라도 나는 변할 수가 없다.


앞장 서서 가야 할 막중한 의무


 주교들은, 사제와 신자들이 따르고자 한다면, 앞장 서서 가장 먼저 이 길을 가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모든 주교들이 이 메시지를 읽게 되기를 바란다. 주교들 가운데는 겸손하게 스스로의 사목을 재검토하고, 지체없이 서둘러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아, 나의 지상 생활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끼를 들고 단호하고 용감하게 잘라낼 것은 힘껏 잘라내는 것이 상당수의 주교들에게도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사람들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내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지침에 반기를 드는 주교들이 있다는 것, 심지어 추기경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그들은 이로 인한 추문과 악한 표양을 고려에 넣지 않았다. 마땅히 지녀야 할 신중한 태도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내 대리자에게 공공연하게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는 노골적인 불순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주교들의 행동은 무엇을 본뜬 것이겠느냐? 물론 나의 모범을 본뜬 것은 아니다! 나는 하느님이면서도 사람들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들아, 그러니 교회를 괴롭히는 위기에 다소 책임이 있는 주교들이 없지 않다. 착함과 관용을 나약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나약은 많은 사제들에게서 보게 되는 해이(解弛)의 부분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착함과 관용과 사랑을 방종과 혼동하지도 말 일이다. 방종은 상당수의 '영혼의 목자들'로 하여금, 비록 고의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수많은 악과 추행의 공모자가 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주교가 그의 신학교에 이단자들이, 그렇다, 이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면 되겠느냐? 이단자들에게 장차 사제가 될 영혼들을 양성하는 지극히 섬세한 임무가 맡겨져 있는데도 말이다?

 진리는 곧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진리요 사랑인 반면, 이단과 오류는 내가 아닌 다른 데서 온다는 것을 주교들이 몰라서야 되겠느냐?


겸손과 가난


 아들아, 너는 주교들에게도, 내가 그들에게 십자가의 길로 나를 따라오라고 당부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나의 길을 기억하게 하여라. 나는 세상에서 무한한 '겸손'과 '가난'으로 나의 길을 시작하였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상당수의 주교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주교들의 또 다른 위험은 자만이다. 내 대리자인 교황도 전혀 결함이 없는 완전성의 은혜는 받지 못했지만, 뭇 민족들의 스승으로, 나의 가르침인 '교리'의 수탁자 자격으로 무류성(無謬性)을 받았다. 그러나 주교들은 개별적으로 무류성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황과 일치해 있을 때만 교황이 지닌 이 은혜를 나누어 받게 되고 여기에 참여하게 된다. 일부 주교와 추기경들은 이 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내 신비체에 큰 고통을 초래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더욱이, 그들 모두가 힘차고 영웅적이고 너그럽고 용감한 성덕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양떼를 지켜 줄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주교는 기수이다. 그런즉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가야 한다. 무서운 문제가 있는데도 많은 주교들이 이에 대하여 의무를 소홀히 하는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겠느냐? 사실, 사탄과 모든 악의 세력들이 (나의) 속량을 받은 영혼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더럽히고 휩쓸고 지배하기 위하여 자행하는 무서운 파괴 작용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보다 사제들은 더욱 잘 알 수 있고, 하물며 주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탄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물질주의의 화신이 되어, 그리스도교 세계와 비그리스도교계 어디서든지 수없이 많은 영혼들 안에서 신앙을 흐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였다.

 이제 누구든지 알아야 할 것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외적인 성질의 기선(機先)을 잡기보다 내가 말과 모범으로 제시한 대로 앞장을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탄과의 싸움


 아들아,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사제들은 위해서 너에게 했던 말을 주교들에게도 되풀이한다. 그들은 번번이 시간을 낭비하고 (이 싸움에 필수적인) 수단들도 낭비하고 있다. 숱한 모임과 만남과 토론들이 논쟁과 분열의 동기로 변하곤 한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식사를 하거나 토론을 하기 위해서 자주 모이지만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이는 일은 드물다. 사탄과 악의 세력들과 싸워 이기려면 기도하고 속죄해야 한다. 그런데 속죄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기도를 제대로 바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내적이고 외적인 극기, 그리고 속죄.... 하지만, 오늘날, 견진성사를 받은 내 군사들을 이 싸움을 위해 훈련시키는 사람이 과연 있느냐?

 게다가, '원수'가 있다는 것, 원수야말로 가장 무서운 실재라는 것, 이 원수를 이기려면 결정적인 무기로, 이를테면 묵주 기도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다면?.... 공격용 무기로서 오늘날 묵주 기도만큼 무시무시한 무기는 없는 것이다.

 영혼들 안에서 사탄이 벌이는 파괴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과거의 '성체회'와 '매괴회'와 여러 '신심 단체'및 효과적인 다른 단체들을 새로우면서도 그만큼 효과도 있는 형태로 대치하여 시기 적절하게 대비하지 않았던 주교와 사제들은 이를 소홀히 한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큰 결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러 기도 단체와 다른 새로운 단체들을 아직도 서둘러 동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단체란 '성체의 벗회'같은 것으로서, 사람들이 청하기만 하면 내가 그 시작 방법도 제시해 줄 것이 아니냐?

 내가 사용하였고 사도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던 무기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코 사탄을 쳐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대화


 방어와 공격의 작전 계획을 짜면서 그 안에 무기의 현대화 계획을 넣지 않는 사령관이 있겠느냐?

 그런데 내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는 영적 무기이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각 본당마다 서둘러 기도 단체들을 준비하고 육성하며 독려해야 한다.

 영혼들의 목자는 무익한 토론이나 논의에 빠지지 말고, 사제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과 함께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긴급히 해야 할 일이다. 분별이 없어서 하느님의 '정의'를 믿지 않는 눈먼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거듭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고 너의 씨를 뿌리고 네 고통을 봉헌하여라. 그러면 적어도 그 일부만은 비옥한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1975년 10월 1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관료적인 사제


 현재의 사목은 여러 심각한 악에 오염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사목을 다른 무슨 직업으로 여기게 하는 (사제들의) 관료적인 태도이다. 믿음의 결핍이 행동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달리 보이게 할 수가 없다. 믿음과 행동의 관계는 자동차의 엔진과 차체와 같다. 엔진의 출력과 차량의 종류나 크기는 다양하지만, 엔진이 작동되지 않으면 차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본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멎어 있기 마련이다.

 이 세대의 사제들을 보아라! 그들의 태도를 보아라!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옷 입는 방식과 일반인들의 공통적인 생활 방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 보이느냐? 초자연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수명이 다 되어 못쓰게 된 엔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신비체'에 그토록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사람들이 그런 엔진이 되고 말면, 그것은 '신비체'를 위해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라는 천부적인 덕행이 특히 사제들 속에서 찬란히 빛나야 한다. 이 덕행들은 서로 어찌나 밀접하게 결합해 있는지, 은총의 생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 하나의 전체를 이룰 따름이다. (사제들이 그렇게 살기는 커녕....) 따라서 믿음이 없는 사제에게는 바람도 없기 마련이다. 바람은 사목 생활에 내포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본질적인 원동력인데 말이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타락하고 악한 표양을 보이며 불행에 빠지고 결국은 배교에까지 이르는 정신적 영적 쇠약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배교한 사제가 얼마나 많은지! 배교는 하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신비체 속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혹은 전염성 종양처럼 남아 있어서,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멸망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제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 불행한 사제들은 사제직의 '원수'에게 무섭기 짝이 없는 사슬로 묶여져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제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없는 사제는 냉정하고 비생산적이고 위선적인 관료와 같은 사람이다. 영혼들의 아버지인 사제가 그들의 고통 앞에서 체면상 공허하고 효과가 없는 말, 골자가 빠진 말이나 할 뿐이다.

 영원하신 아버지와 일치해 있는 사제에게서 나오는 말은 생명의 말이다. 거룩한 사제의 말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효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향료가 된다.

 관료적인 사제는 악마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들을 진단할 수가 없다. 하기야 그런 사제는 악마가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메말라 있다. 이 잘못된 메마름 때문에 영적인 악들을 식별할 수가 없는데, 믿음이 없는 이 세대의 사제들 중 다수가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사제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느냐?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불행한 자들이다. 외관상 반대로 보이더라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신중하고 진실하고 현실적인 말로 그들을 존중하며 도와 주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한 우정과 형제애를 느끼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고 과거에도 어쩌면 몰랐던 것은, 그들 자신이 바로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과 사제직과 권능에 참여하게 된, 인간적이며 신적인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의 희생으로 속량하신 영혼들을 영원히 구원하시려고 뽑으신, 하느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영혼들이 나의 '피'로 씻음과 정화와 성화를 얻기 위해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무한한 '사랑'의 표적임과 동시에 끝없는 증오의 표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들아, 그들을 얽어 매고 있는 더없이 끔찍한 종살이의 사슬을 그들 자신이 끊어 버리도록 돕기 위해서, 너는 기도하고 보속하며 축복해 주어라.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5월 2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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