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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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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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1-06 ㅣ No.143447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합니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말합니다. 이는 윤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이 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세속오계, 삼강오륜은 인과응보의 원칙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토대로 법칙을 만들고, 법칙을 찾아냅니다. 과거로부터 현재의 상황을 유추하고, 현재로부터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곳이 있습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기존 과학의 법칙과 방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용서에 대해서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사건,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위에서 죽으신 사건은 인과응보의 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19는 무섭게 전파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86,000,000 명이 확진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인구 80중에 1명 정도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숫자입니다. 미국은 16명 중에 1명이 감염될 정도입니다. 한국은 800명 중에 1명이 감염된 정도입니다. 코로나19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이 생겼습니다.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손 씻기입니다. 이는 코로나19의 감염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되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서 성인품에 올려진 다미안 신부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몰로카이 섬에서 나병환자들과 지냈습니다.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손 씻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병환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함께 식사하고, 환자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을 위해서 집을 지었고, 수도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나병환자들은 다미안 신부를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정부도 나병환자들을 위해서 지원을 하였습니다. 건강하던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몰로카이 섬에 묻혔습니다. 봉사자들이 제2의 다미안 신부님이 되어서 몰로카이 섬으로 왔고, 신부님들이 왔습니다. 2,000명이 넘던 나병환자는 점차 줄어서 지금은 없습니다.

 

인과응보의 이 지켜지는 사회가 바람직합니다. 과학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세상에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인과응보와 과학의 법칙을 넘어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3차원의 세계에 살지만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넘어서 지복직관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환자의 친구가 되었고,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는 길을 갔습니다. 성인과 성녀들은 인과응보를 넘어서 자연법칙을 넘어서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입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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