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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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금요일(백) 성녀 모니카 기념일 ...독서,복음서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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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8-26 ㅣ No.149309

성녀 모니카 기념일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이디아의 타기스테
(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1독서<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4,1-8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니,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3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불륜을 멀리하고,

4 저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5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6 그리고 이러한 일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고 또 엄숙히 경고한 바와 같이, 주님은 이 모든 일에 보복하시는 분이십시다.

7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이 사실을 무시하는 자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해제.역주 진 토 마 스)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생활

데살로니카 신도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자기 계획에 관해 말한 다음 이제 4-5장에서는 생활에 관한 훈계와 신앙문제에 관한 설명을 첨가한다.

 

1

주 예수 안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바오로는 예수의 입장에서,예수와의 일치에서,예수의 이름으로 권고한다.

 

3

성성은 바로 하느님의 본질이며 성화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하느님의 거룩함이 인간의 윤리나 도덕의 역행을 촉구하는 강렬한 동기로 강조한다. 성화는 이방 출신인 데살로니카 사람들이 과거에 알고 있던 습관과 전혀 달리, 하느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며 동시에 신자들이 노력해야 할 목표다. 성화에는 깨끗한 성생활도 포함되는데,

 

특히 이 점에 당시 이방인들은 무관심했다. 오히려 음란한 행위를 권장하는 종파도 있었다. 건전한 성도덕은 유다인들의 자랑이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에게도 그러한 이상을 요구한다.

 

5

자기의 그릇에 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자기 육체라고 보는 경우, 각자 음행을 피해 자기 몸을 깨끗이 함으로써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라고 보는 경우, 각자 정식으로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깨끗이 살라는 뜻이다. “얻는다는 말이 있으므로 부인이라는 설이 더 타당하다.

 

6

매매할 때”; “이런 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바오로는 계속해서 간음에 대해 경고하는 셈이다.

 

7

하느님이 부르셨을 때 신도는 이미 성화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성화를 다시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성화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성화시키는 힘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이다(8절 참조)

 

8

당신의 성령을 여러분 안에 주시는 하느님”: 에제 36.27;37.14에서 따온 표현이다. 그 예언은 이제 성취되었다. 모든 신자가 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바오로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부정한 짓을 하는 자는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의 영을 더럽히는 자다.

 

9

하느님께 직접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계약에 속한 사람들에게 약속된 일이다. 예수께서는 그 약속을 실행하셨다. 여기서는 하느님이신 예수의 설교를 생각할 수도 있고 신자들의 마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

 

 

 

 

 

 

 

복음<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나누어 다오.’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러 주십시오.’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열 처녀 비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는 마태오복음에만 있다. 이 비유의 기원을 두고 설이 구구하다. 예수 친히 발설하셨다는 설, 초대교회서 창작했다는 설, 마르 13.33-37; 루카12,3538; 13.25-38을 참작했다는 설. 예수 친히 발설하신 하느님 나라 비유와 문을 닫은 다음에는 두드려도 소용없다는 어록의 상징어를 합쳐서 마태오가 편집했다는 설 등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여기서는 위의 전승사 및 편집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지금의 텍스트를 기록하면서 마태오가 품은 뜻을 찾고자 한다.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뜻한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그 중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요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듣고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교회는 선인들돠 악인들이 함께 사는 불완전한 공동체다. 신랑인 그리스도께서는 내림을 늦추신다. 그렇지만 꼭 오신다. 한밤중에 곧 뜻밖의 시간에 오신다. 그분이 오실 때 그리스도인들은 마중나가야 한다. 그런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그리스도인들만 실제로 마중나가서 혼인잔치에 참석한다. 즉 종말축복을 누리게 된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주님해봐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뜻인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늘 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언제 내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태오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매우 사목적이다. 예수님이 내림을 좀 늦추시더라도 방심하지 말라. 그분은 예기치 않은 때에 꼭 오신다. 그분이 내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행하라. 그것만이 내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하고 구원받는 길이다. 이렇게 마태오는 나름대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천명한 셈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에 맞추어 이야기를 끌고가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가 있게 마련이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신랑이 하필 밤중에 온다는 것, 신랑이 어리석은 처녀들을 몹시 하대했다는 것 등 억지가 한둘 아니다. 그러니 우리 이야기는 자연스런 비유가 아니고 무리가 많은 우화. 우화에는 으레 많은 은유가 들어 있고 온유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에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에 관한 교훈을 담은 은유는 많이 나오는 까닭을 이제 알 만하다. 인생은 복잡하므로 많은 교훈이 필요하고 많은 교훈은 많은 은유를 필요로 하며, 많은 은유로 이야기를 엮다 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무리한 우화가 될밖에.

 

1

하늘나라는 ...와 같을 것입니다라는 서두는 비록 시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가라지 비유의 서두(13.24). 무자비한 종 비유의 서두(18.23).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 비유의 서두(33.37)와 동일하다.

구약성서에서는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을 맺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곧 신랑은 야훼를 신부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나타난다.

 

1세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가리키는 은유를 즐겨 썼다. 단 마태 25,1-13에서만은 교회를 뜻하는 은유가 신부 대신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다. 참고삼아 알리거니와 유다교에서 메시아를 뜻하는 은유로 신랑을 거론한 적이 없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신랑이라고 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다.

 

예수시대 결혼풍습을 알아야 신랑을 마중나가는 처녀들 우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겠는데 . 불행히도 그시대 결혼풍습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 우화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결혼풍습을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보면 무난할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약혼으로 법적 혼인이 성립된다. 야혼기간은 일년쯤 되는데. 그 동안 약혼자들은 합법적 부부이기는 하지만 성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 동안 신부는 그냥 친정에 눌러 산다.

혼행 때가 되면, 저녁때에 신랑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행차한다.

그러면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마중나간다. 그리고 신랑을 집에 모셔온다.

- 하객들 모두가 신랑과 신부를 모시고 신랑 집으로 가서 밤중 내내 혼인잔치를 벌인다. 잔치는 무려 한 주간 동안 계속된다.(요한 2.1-13).

 

10

10-12절의 변형태가 마태 7,22-23;루카13.25에 있다. 따라서 마태오가 10-12를 어록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13

여러분은 깨어 있으시오”(24.42;25.13). “여러분도 준비하고 있으시오”(24.44). 종말의 때는 미지수라고 마태오는 거듭 강조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마니교란 페르시아 왕국의 마니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것을 가미하여 세운 종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요즘시대에는 특히나 마니교하면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교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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