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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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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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10-23 ㅣ No.150528

세례를 받아 신앙인이 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게 가장 큰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였고, 박해와 순교를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전해진 복음은 마침내 당시 가장 강대한 국가인 로마에 전해졌고, 콘스틴티노스 황제에 의해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로마가 만든 길을 따라서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봉건주의 시대에는 군주가 명령하면 백성들은 모두 따라야 했습니다. 군주가 복음을 믿고 교회를 받아들이면 모든 백성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마을은 중심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유럽에는 그렇게 복음이 전해졌지만 아시아는 달랐습니다. 아시아의 군주들은 유교의 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고,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은 신정일치의 통치체제를 통하여 이슬람을 전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이슬람 지역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달라야 했습니다. 아시아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면서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이슬람과 대화하면서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복음은 이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적응해야 했습니다. 교회는 그것을 토착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이식하려했을 때는 많은 박해와 순교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이식하려했을 때는 전쟁과 폭력이 있었습니다. 창과 칼, 총과 대포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전해진 복음은 사람들의 몸은 복종시킬 수 있을지라도 마음을 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으면서 한국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려는 지식인들이 교리와 전례를 연구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은 호기심이 있었고, 양민과 천민은 교회에서 높고 낮음이 없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주문모 신부가 와서 사목할 때까지, 한국의 교회는 소위 가성직제도를 만들어서 스스로 주교, 사제가 되어서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법과 제도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았고 사제가 오면서 교회의 제도와 법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활발하게 뿌리를 내리던 한국교회는 몇 가지 이유로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해는 근 100년간 이어졌고, 만여 명이 넘게 순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교회는 박해를 견뎌내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100만 명이었던 한국교회는 매 10년 마다 100만 명씩 증가하여 2020년 현재 교적상 5,923,300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본당은 1,767개가 있으며 공소는 704개가 있습니다. 사제는 5,538, 수도자는 11,788, 주교는 40명이 있습니다. 박해를 견뎌내고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알릴 수 있는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행사가 여의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도 참가했습니다. 80만 명이 넘는 신자가 여의도 광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교회도 놀랐고, 한국사회도 놀랐습니다. 이후 1984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방한하여서 103위 성인의 시성식을 주관하였습니다. 1989년에도 44차 세계 성체대회가 한국에서 있었고, 교황님의 방한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활발한 사회참여입니다. 지학순 주교님을 중심으로 자유와 민주를 위한 활동이 있었고, 자유를 열망하던 사람들에게 교회는 희망의 빛이었고, 마지막으로 숨을 수 있는 피난처였습니다. 꽃동네를 비롯해서 교회는 약하고, 외롭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종교를 갖는다면 천주교회를 선택하겠습니다.’ 자발적으로 성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예비자 교리에 등록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인터넷이 있고, 각종 소통 수단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전하는 것이 예전보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의 기쁨을 삶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입니다. 맛집은 멀리 있어도, 작은 곳이어도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맛집의 음식이 맛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알려주는 사람도 적고, 복음의 기쁨을 삶으로 드러내며 향기를 전해주는 분도 적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복음이고, 무엇이 복음의 기쁨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를 선포 하셨고,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신앙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예수님께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 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등대처럼 위로와 용기의 희망의 빛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둔 밤을 항해하는 배들이 등대를 보고 길을 찾듯이,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사람들로부터 삶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전교이고,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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