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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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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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12-09 ㅣ No.151492

손님이 와서 모처럼 맨하턴엘 다녀왔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부르클린 브리지를 걸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맨하턴의 야경을 보았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잊은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서 기다리면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Freedom means the opportunity to be what never thought we would be.” 자유란 전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를 의미한다는 뜻 같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을 관람하기 전에 박물관을 들렸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결코 해방 될 것 같지 않았던 노예들이 해방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의 힘입니다. 꿈을 찾아 이민 왔던 사람들이 신대륙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자유의 힘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교만과 만나면 방종이 됩니다. 자유가 욕심과 만나면 탐욕이 됩니다. 자유가 권력과 만나면 위선이 됩니다. 자유가 폭력과 만나면 전쟁이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앙의 역사에서 보았습니다. 아담의 자유는 교만을 만나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아합의 자유는 욕심을 만나서 나아만의 포도밭을 빼앗는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의 자유는 충실한 부하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인류는 여러 이유로 전쟁을 벌였고, 수많은 죽음을 양산하였습니다. 유다는 그 자유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겼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유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바오로는 그 자유를 이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자유는 사랑과 만나야 합니다. 자유는 정의와 만나야 합니다. 자유는 희망과 만나야 합니다. 그때 자유는 진리가 되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미쳤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한 번도 목숨 걸고 도전한 적이 없는 것이다.” 요한이 단식을 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니까 마귀가 들렸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함께 먹고 마시니까 먹보요 술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과 타성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회개의 기회도 얻지 못하였고, 주님께서 전하는 복음의 기쁨도 알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 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서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간다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고,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 제 때에 열매 맺고,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보여 주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이 바로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단식을 한 것은 속죄와 회개의 표시이고,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은 단식하는 그 자체만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시고, 술과 음식을 나누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보여 주는 것인데, 율법 학자들은 또한 그 뜻은 보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만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드러나는 현상을 보기보다는 그 현상에 담긴 깊은 뜻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하십니다. 오늘 성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났으며, 하느님께로 가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내가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사람을 대할 때 욕심, 편견, 시기라는 안경을 쓰고 보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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