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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안티오코스가 유다교 박해 / 유다 마카베오[1] / 1마카베오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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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2-06-29 ㅣ No.15599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안티오코스가 유다교 박해(1마카 1,41-64)

 

이렇게 안티오코스가 유다인을 박해하는 가운데, 그는 온 왕국에 칙령까지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저마다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여기에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바치는 종교적 의무까지 덧붙여진다. 이 결정은 유다교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였다. 종교의 자유는 안티오코스 5세 때에야 비로소 얻어진다(6,57-61; 2마카 11,22-26 참조).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이 종교는 무엇보다도 우주의 신으로서 임금 자신의 수호신이기도 한(다니 11,38 참조),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을 경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임금은 이 신을 자기 왕국의 일치를 도모해 줄 수 있는 뛰어난 존재로 여긴다(2마카 6,2 참조). 이 종교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도시들에서 유통된 화폐에 새겨진 제우스의 모습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그러나 칙령 자체에 관해서 언급하는 고대의 역사가는 없다. 임금은 사신들을 보내어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이러한 칙서를 내렸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칙서를 본문 그대로 전하지 않고 내용만 요약해서 전한다. 유다인들이 자기 고장에 낯선 관습을 따르게 할 것, 성소에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바치지 못하게 하고, 안식일과 축제를 더럽힐 것,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이교 제단과 신전과 우상을 만들고,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 그들의 아들들을 할례 받지 못하게 하고, 온갖 부정한 것과 속된 것으로 그들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도록 할 것, 그리하여 율법을 잊고 모든 규정을 바꾸게 할 것, 임금의 말대로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 등이다.

 

이처럼 임금은 자기의 온 왕국에 이렇게 모든 칙령을 내리고, 온 백성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세웠다. 또 유다의 성읍들에는 각 성읍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저마다 율법을 저버리고 감독관들에게 동조하여, 이 땅에서 나쁜 짓들을 저질렀다. 아무튼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이와는 달리 유다인들의 배교 행위가 강요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2마카 6,7 참조). 이 감독관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숨을 곳을 찾아 온갖 피난처로 떠나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즉 기원전 167128일이다.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 우상은 페니키아의 하늘의 주인인 바알 샤멤과 동일시한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이다. 이 신상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대제단 위에 세워졌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율법서는 모세 오경을 가리킨다.

 

사실 임금의 칙령이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모세의 법이다.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모든 성읍에서 달마다 눈에 띄는 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하였다. 매달 스무닷샛날에는 번제 제단 위에 있는 단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다. ‘매달 스무닷샛날은 임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날 사람들은 축제에 참석하지 않은 유다인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2마카 6,7). 그렇지만 이에 반대해 삼 년 뒤 바로 같은 날에 유다 마카베오가 새 제단을 봉헌하게 된다(4,52-53; 2마카 10,5).

 

아무튼 그들은 제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부인들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고, 그 젖먹이들은 그들의 목에 매달았다. 심지어는 그들의 집안사람들과 또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푼 이들까지 매달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처형은 아주 드물게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2마카 6,10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이렇게 안티오코스는 유다인 박해에 만족하지 않고, 유다교마저 처참하게 박해하고 짓밟았다.

 

안티오코스가 유다인들은 물론 유다교마저 박해하는 그 무렵에 요야립 가문의 사제로서, 시메온의 손자이며 요하난의 아들인 마타티아스가 예루살렘을 떠나 모데인에 자리를 잡았다.[계속]

 

[참조] : 이어서 ‘8. 마타티아스의 이민족 제사 거부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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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코스,올림피아,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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