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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3월 14일 사순 제4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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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03-14 ㅣ No.418052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 루카 15,1-3.11ㄴ-32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때>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 저와 ’죽이 잘 맞던’ 직장 선배 한 분이 있었습니다. 팍팍하던 직장생활, 선배로 인해 그나마 잘 견딜 수 있었지요. 하루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가도 선배 생각만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천사 표”였지요. "오늘 저녁 한잔 같이 하자"고 제가 떼를 쓰면 단 한 번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배는 주변 사람들한테도 ’인기 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선배와 한잔하고 싶어 했고, 점심 한 끼 같이 하고 싶어 했습니다. 선배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느라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접대비”로 지출했습니다. 


   그렇다고 선배가 많이 배웠거나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으며, 재산가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백”이 든든한 사람, 줄을 댈 만한 사람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선배 ’인기’의 비결은 다름 아닌 ’한결같음’이었습니다. 선배는 아무리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인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분위기를 편안하고 포근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선배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도 자신의 말은 최대한 아꼈습니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들어주며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괴로워서 다가갈 때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찾아갈 때마다, 그저 소주 한잔 사주던 선배,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던 선배를 통해 저는 하느님 자비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하느님은 “자비 빼면 시체”인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계심에도 유산을 챙겨 제 갈 길을 떠난 ’싹수머리 없는’ 자식조차 그저 말없이 다시 받아들이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 저질렀던 숱한 과오나 방황은 당신 안중에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가련한 처지에 가슴아파하십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고 그저 우리가 당신께로 발길을 돌리는 그 자체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죽을 것만 같아 찾아갈 때마다 우리와 함께 눈물 흘리시며 우리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십니다. 


   살다 보면 가끔씩 철저하게도 제 자신이 망가지는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술에 빠져 바닥을 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참담한 실패의 순간,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순간, 아침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하얗던 순간, 생의 최저점에 서는 순간, 정말 비참함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 자신 본연의 모습, 제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순간, “하느님을 떠난 나는 결국 티끌이었구나! 결국 내 생애는 하느님 자비로 이어온 자비의 역사였구나!” 하는 진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제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야 깨닫는 바지만 아버지를 떠난 인생은 무의미한 인생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함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비록 수시로 우리가 죄악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방황과 타락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다시금 새 출발 기회를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지칠 때마다, 세상으로 인해 상처받을 때마다, 우리 자신의 한계에 실망할 때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하느님 그분 품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U턴”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이 방향이 올바른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빨리 U턴 지점을 찾는 일입니다. 가던 길의 방향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연기처럼 덧없는 것들을 진리라고 여겼던 삶,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바쳤던 지난날 그릇된 삶을 접고 어떻게 해서라도 진정한 사랑,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사랑을 찾아 돌아서는 일이 회개입니다. 


   언제나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진실한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일이 회개입니다. 언제나 거듭 태어나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궤도를 본질적으로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일, 그것이 회개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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