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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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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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6-10-07 ㅣ No.107331

임진왜란 1592’를 보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쉬운 전투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의 상황을 모두 기록하였고,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적었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한 공을 모두 부하들에게 돌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을 믿었고, 부하들은 이순신 장군을 믿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게 도망가는 왕이 조선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빼앗긴 땅도 조선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부하들이 곧 조선이었습니다. 부하들이 살아있으면 조선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끝가지 싸울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목이 아프거나, 허리가 아프면 찾는 침술원이 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가게 되었고, 몇 번 다니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게 침을 놓으시고, 지압을 해 주시는 분이 고맙기도 했고, 그분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분은 앞을 잘 보는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5년을 넘게 다녔는데, 그분이 앞을 볼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에게 저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침을 맞고, 그분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배는 12척이고, 적의 배는 수백 척입니다. 당연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부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었습니다. 장군의 뛰어난 전략을 믿었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려는 부하들의 용기를 믿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셨고, 제자들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未得先愁失(미득선수실) 當歡已作飛(당환이작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얻기도 전에 먼저 잃을 것을 근심하고, 기쁜 일을 만나서도 슬픔 마음 일어나네.”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이것은 뉴턴의 물리학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빛이 상황에 따라서 파동과 입자로 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걱정, 근심, 두려움,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차면 내 몸도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체격을 가졌어도, 많은 배움이 있어도 그것들은 무기력하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 희망, 믿음, 온유함과 친절로 가득차면 나의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많은 배움이 없어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와 희망의 문으로 들어옵니다. 불행은 절망과 불평의 문으로 들어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려한 식탁이라고 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비싼 침대라고 해서 편안한 잠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소박한 밥상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비싼 침대가 아닐지라도 얼마든지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 있어도 주님과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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