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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하지 않는다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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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29 ㅣ No.111085

 

나는 스스로 하지 않는다

 

- 윤경재 요셉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5,19~30)

 

 

 

 

유명한 노자 22장을 읽으면 오늘 복음말씀과 중첩되어 그 뜻이 선명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노자 22장은 보통 가,,다 세 문단으로 나누어 읽는데 가운데 문단 글귀가 아주 비슷합니다.

 

스스로 견해를 내지 않기에 분명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에 빛나며,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공을 이루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오래간다. 그는 오직 다투지 않기에 세상에서 그와 다툴만한 사람이 없도다.”

(不自見 故明, 不自是 故彰, 不自伐 故有功, 不自矜 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노자22장 글귀는 마치 예수님을 두고 쓴 것처럼 보일정도입니다. 노자 글귀가 성립된 것이 최소 BC220년 이전이라 보면 인류의 지혜가 무엇을 지향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첫째 문단을 읽어봅니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휘면 곧아진다. 패인 곳은 가득차고, 낡은 것이 새로워진다. (욕심을) 줄이면 얻고, 늘리면 미혹된다. 이러기에 성인은 ()’를 품어 세상의 본보기로 삼는다.” 여기서 를 말하며 하느님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셋째 문단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곡즉전이라는 말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참으로 옹글어서 (만사가) 그리로 돌아간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두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최고의 겸사가 얼마나 위력이 있고 미더운지 노자를 보면 확실해집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눈이 가리면 가치전도가 얼마나 심하게 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지는 게 이기는 길이라고 보여주셨고, 꼴찌가 첫째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무관이셨던 임경업 장군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그의 군사적 지휘능력, 외교적 탁월성은 임경업전으로 전해질 만큼 대단합니다. 임경업 장군께서 평안북도 영변에서 방어사로 지내던 시절의 일화입니다.

 

영변 지역에서 북쪽 오랑캐 침입을 지키는 요충지인 백마산성을 긴급히 보수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인근 지역 백성이 모두 동원돼 돌과 목재를 날랐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에 다치거나 죽어나가는 중노동을 밤낮으로 해야 했습니다. 자연히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방어사가 시키는 일이니 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쑥덕대기 바빴습니다.

 

하루는 누군가가 다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임경업인지 방어사인지는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고나 있나 모르겠어. 다들 안 그런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그러게 말이야혹은 방어사가 이 고생을 어찌 안단 말인가라고 맞장구쳤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여기 임경업이도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시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방어사도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백성들과 함께 돌을 나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군이 역사상 처음 패배한 전쟁으로 기록되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민가를 불태우거나 우림지역에 제초제를 살포하였습니다. 그런 행동이 당시 군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유일한 대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비인도적 행위로 오늘날까지도 비난받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를 치유하러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가국인 우리나라 군인들도 그 피해를 아직까지 겪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정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그 사건 이후 미군은 전쟁의 교범원칙에 합법성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이 상반된 두 가지 예화는 曲則全의 이치가 여전히 유효하며 만고의 진리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몇 년 전부터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 서번트 리더십은 겸손과 영적인 통찰력으로 구성원의 자율성과 도덕적 발전을 추구하며 구성원과 조직, 나아가 전 사회의 공동선을 이룩합니다. 위대한 리더들은 끊임없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조직의 비전으로 승화시켜 구성원들과 공유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서번트 리더십의 본보기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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