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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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번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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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4-21 ㅣ No.111583

 

삼세번

 

- 윤경재 요셉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21,1~14)

 

 

 

우리말에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더도 덜도 말고 꼭 세 번이라고 설명합니다. 동양에서 숫자 3은 양수 1과 음수 2를 합한 것으로 음양의 합이 되는 첫 숫자를 뜻합니다. 음양 결합이 완성되어 새로운 탄생과 시작을 일컫습니다. 3은 부부와 자식이 한 가정을 이루는 최소단위를 나타내어 3부터는 공동체로 취급됩니다. 심지어 영리한 까치도 숫자 3까지는 셀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승부를 겨룰 때 양 측이 한 번씩 이기고 지면, 마지막으로 결판을 짓는다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속담도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기회를 한두 번쯤은 놓쳤어도 다시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기회를 잡으라는 위로의 말입니다. 반대로 기회란 생각보다 드물게 오는 법이니 미리미리 준비하여 놓치지 말라는 충고의 말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서 21장은 부록에 속합니다. 요한복음서 원저자의 제자들이 그 정신을 본받아 이어 썼습니다. 특히 선교와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 부활이야기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과 저녁에, 여드레 날에 발현하셨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날짜가 특정되지 않은 날, 즉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최종적으로 삼세번 나타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사건을 접하고도 그때까지 확고하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각자 일상으로 복귀하여 선교사명에 손을 놓고 지냈습니다. 그 중 어부였던 일곱 제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였던 티베리아 호수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나마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산 것만도 다행입니다. 나머지 네 명의 제자들은 거명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각자 생활터전으로 흩어졌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축이 되어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습니다. 새 날이 되자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este’는 현재형입니다. 동사 현재형의 의미는 늘 그렇듯이언제나 계셨고,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제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할 거라 미리 아신 것처럼 질문하시고는 새로 방향을 지정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자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인간의 경험에서 나오는 행동보다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행동이 더 결과가 좋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제일 먼저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주님이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옷을 벗고 있었던 베드로가 즉시 겉옷을 두르고 호수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자신이 부여받았던 사명을 망각하고, 손 놓고 딴청을 부린 것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에 나온 행동입니다. 유대인에게 겉옷은 언제나 그 사람의 신분과 사명을 상징합니다. 망서리지 않는 즉각적인 행동은 완벽한 승복을 나타냅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야 예언자가 부르심을 받고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즉시 대답한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호수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죽음을 무릎 쓰더라도 주님께 달려가는 길만이 자신이 살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건너 저편 주님께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을 때 생겨날 것입니다.

 

안전한 물가에 주님께서는 미리 숯불을 피워놓으셨고 물고기와 빵도 마련해 두셨습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곳은 언제나 따뜻한 온기가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장소입니다.

 

인간을 배려하시는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마련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제자들이 건져 올린 물고기도 함께 봉헌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비록 주님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제자들의 성취감을 고취시키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아울러 자기가 잡아들인 것이니 자기네 입맛대로 처리하겠다는 욕심이 생겨날까 걱정하신 것도 담겼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일상에서도 주님의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겉옷을 벗어두고 행동하는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의 삶은 한낱 헛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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