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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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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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6-11 ㅣ No.121060

 

지금은 끊었지만, 담배를 처음 배울 때입니다. 양 담배는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양 담배를 보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케이스도 좋아 보였고, 담배의 향도 좋았습니다. 요즘은 양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국산 담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제, 특히 미국 제품은 튼튼하고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 중에는 남한 제품이 많다고 합니다. 남한의 물건들이 깔끔하고, 튼튼하기 때문이랍니다. 판문점 선언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오겠지만 이미 평화와 번영은 제품들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땀과 노력이 열매를 맺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유대인의 회당이 아닌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운전하다가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도 합니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시설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우선 깨끗하고, 음식도 맛이 있고,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아무리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좋아도 그곳에서 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 많은 휴게소가 있습니다. 사찰, 회당, 사원, 교회들이 있습니다. 각 종교는 저마다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인생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영원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기쁜 소식은 신약성서의 큰 주제입니다. 신약성서의 이름이 바로 복음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쁜 소식입니까? 신약성서에서 기쁜 소식은 크게 3가지 단계를 거쳐서 발전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이 기쁜 소식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는 바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한 사람들이 맞이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만났고,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죄를 용서받았고, 치유를 받았던 사람들은 놀라고 기뻤습니다. 제자들에게 이제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의 능력이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 기쁜 소식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세 번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살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예수님처럼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예수님 자신이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제자들은 12명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교회는 12명의 제자를 특별히 사도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님을 체험했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의 선교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까지를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에게 부여했던 사도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 뒤로 교회를 이끌었던 학자와 지도자들은 교부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2000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사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된 우리는 모두 사도직에 불리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사도들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삶을 통해서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사명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도직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언직입니다. 예언직이란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는 많은 예언자가 나옵니다.

둘째는 제사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봉헌되었고, 성전에서 가르쳤으며,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전례에 함께 하면서 신앙의 샘에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셋째는 봉사직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려 주는 일,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직을 수행함으로써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신 말씀은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신앙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삶의 위로를 받고, 새로운 길을 향해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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