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11주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6-17 ㅣ No.121207

1784년 이 땅에는 작은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이승훈은 북경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은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234년이 지났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씨앗을 이 땅에 뿌리내렸고, 박해와 순교의 피를 통해서 자라났으며,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는 103위의 성인을 공경하고 있으며, 124위의 복자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받아들였고, 삶으로 실천했던 신앙의 선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어르신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씨입니다. 다른 하나는 천주교라는 신앙입니다. 어린 시절 생활의 중심은 신앙이었습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 연도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몇 시간씩 걸려도 주일미사에 참례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제 손을 잡고 언덕을 넘어 성당으로 가셨습니다. 친지 중에 성직자와 수도자가 많은 것도 모두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였던 어르신들의 기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송이 꽃이 아름답게 필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날아왔던 작은 씨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씨앗이 썩어가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줄기로 비와 바람을 맞아들이고, 뜨거운 태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꽃이 져야만 또 다른 씨앗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제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무를 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이었습니다. 새들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시냇물도 말라버렸습니다. 혼자서 외롭지만 매년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지금 그곳은 새들이 머무는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꽃들이 만발한 동산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나무를 심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희망의 씨앗을 이야기하십니다. 길가에 버려질 수도 있고, 가시밭에 떨어질 수도 있고, 자갈밭에 떨어질 수도 있는 씨앗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 씨앗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박해와 시련이 있었지만, 근심과 걱정이 있었지만, 교회는 성장하고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씨앗은 1784년 한국 땅에도 심어진 것입니다. 한국 땅에 심어진 말씀의 씨앗도 100년이 넘는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회는 교황님께서 3번이나 방문하셨을 정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우리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근심의 씨앗이 뿌려지면 근심은 걱정과 불안을 자라게 합니다. 근심은 불평과 불만, 원망과 분노를 열매 맺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우리의 마음에 근심의 씨앗이 뿌려지면 그렇게 커다란 파도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근심의 바다에 침몰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면 감사와 기쁨이 자라게 됩니다. 용기와 위로, 용서와 나눔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우리 마음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근심과 희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선택하면 근심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설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특정한 시간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을지라도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소통의 나라, 흐름의 나라입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함께 있든지, 떠나 있던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어머니의 뜻이 이루어지는,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일방적인 나라입니까? 기도와 대화가 함께 있는 가정입니까? 함께 살지만, 하숙집과 같은 가정입니까?

 

오늘 영성체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모든 날, 주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주님의 집은 넓은 평수의 집이 아닙니다. 주님의 집은 화려한 주택이 아닙니다. 주님의 집은 작고 초라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집입니다.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집입니다. 기도와 나눔이 함께 하는 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324 13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