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6-29 ㅣ No.121523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가톨릭의 장점은 질서에 있고, 프로테스탄트의 장점은 자유에 있다.” 짧은 글이지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교계제도를 통해서 하나의 교리와 하나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는 같은 목소리로 길을 찾았습니다. 다만 지역의 현안이 시급할 때면 해결책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체 교회의 뜻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말씀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의 현안에도 쉽게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전체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었고, 절차를 따를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이 존중되었고, 새로운 사상과 문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성직자의 독신도 교회를 위해서라면 혼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성의 사제직도 교회를 위해서라면 허용하도록 했습니다. 가톨릭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사, , 제도를 과감하게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하느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방법과 절차는 모두 하느님의 뜻을 찾는 과정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참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이 두 분은 완벽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열정은 있었지만, 그것을 꽃피울 냉철한 이성은 부족했습니다. 말은 하였지만, 그것을 실천할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죽을 때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자들을 잡으러 가던 길에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세운 교회에 편지를 보냈고, 그의 편지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강한 추진력 때문에 때로 다른 사도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오로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초대교회를 이끌어 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교우 분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신부님은 자상하신데, 다른 신부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나요?’ 저는 자상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당 사목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베드로 사도처럼 열정은 있지만, 추진력이 부족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바리사이파처럼 주님을 따르기도 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느린 것도 없습니다. 천년도 하느님 앞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완벽한 것도, 똑똑한 것도, 재능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 하나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흘렸던 참회의 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066 2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