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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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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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7-26 ㅣ No.122208

 

무더운 여름입니다. 용광로에서 철을 다루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길에서 교통정리를 하시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운 여름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인류가 뜨거운 사막을 건너서 지구촌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체력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강한 체력이라도 사막을 건너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사막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조 알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물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타조 알을 묻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땅에 묻어 두었던 타조 알을 꺼내서 물을 마실 수 있었고, 드디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에 이름을 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상상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인류의 상상력은 예술, 문학, 과학, 역사, 종교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물은 다시 목이 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하늘나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 코끼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식은 하느님을 온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상상력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자만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현재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날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을에 철새는 겨울이 오기 전에 멀리 따뜻한 남쪽으로 긴 여행을 떠납니다. 지금 남아 있는 들판의 먹을 것에 만족하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겨울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상상력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였고,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상상력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목마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 회당장 야이로, 하혈하던 여인, 세리 자캐오, 자비를 청했던 실로암의 소경이 있었습니다. 진리의 빛을 보았던 성인과 성녀들이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 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금 내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얼마나 큰 기쁨인지,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것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별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문제 해결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행복의 시작은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할 때, 기뻐할 때, 고마워할 때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부제서품을 받으면, 사제서품을 받으면 고민은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본당 신부가 되면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교구청에 있으니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감사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부족하기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은인들을 보내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많은 결점과 잘못이 있음에도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작은 힘이지만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귀로 들으면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삶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을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시나이산으로 매일 오르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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