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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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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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3-31 ㅣ No.128665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는 은혜의 뜰이라는 쉼터가 있습니다. 입구에는 흔들의자처럼 오셔서 언제든지 편안히 쉬다 가셔요.’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매월 토요일에 피정이 있습니다. 강사는 재능기부로 피정에 함께 합니다. 피정에 참여하는 분 중에서 간식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제게도 기회가 주어져서 피정에 함께 했습니다. 참석한 분은 40명가량 되었습니다. 굳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사순시기를 은혜로이 보내려는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은혜의 뜰을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수녀님은 마치 천사 같았습니다. 많은 분이 은혜의 뜰에서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목이 마르셨을까요? 의욕이 없는 사제들의 모습에 목이 마르실 것 같습니다. 교회를 멀리하고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들을 모습에 목이 마르실 것 같습니다. 은혜의 뜰 벽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정에 참여한 분들을 보시면서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안식년 중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피정에 함께한 저에게도 미소를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사제들은 인사이동을 통해서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됩니다. 동료 사제 중에는 늘 불평과 불만이 있는 사제도 있습니다. “보좌 신부 때는 본당 주임신부를 잘 못 만나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본당 주임신부가 되어서는 보좌 신부를 잘못 만나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보좌 신부가 없는 곳에 가서는 모든 것을 혼자 하느라 힘들었다고 합니다. 신자가 적은 본당에 가서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신자가 많은 본당에 가서는 일이 많아서 죽겠다고 합니다.” 동료로서 참 안타깝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의 생각을 하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신설 본당에 가면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서 좋고, 시골 본당에 가면 모처럼 쉬면서 건강을 돌볼 수 있어서 좋고, 보좌 신부가 열성적이면 일을 맡길 수 있어서 좋고, 보좌 신부가 의욕이 적으면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좋고, 신자들이 많으면 함께 할 일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친구는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삶을 살다 보면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빛을 추구하고 그림자를 멀리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사랑하고 계십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은 여행자들에게 더없는 휴식처가 되고,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봄날에 따뜻하게 비추는 태양의 입김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빛은 자기가 빛이라고 자랑하거나 뻐기지 않습니다. 그림자는 자기가 그림자라고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또한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의 제 2 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당신의 모든 백성이 하느님과 화해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일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이렇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으려면 바로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고 형제들과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화해를 이루려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처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를 해야 하며, 자신의 지위와 능력, 재능과 명예를 오직 하느님께 돌리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화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이웃과 화해하지 못하면 내가 있는 삶의 자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으로 신음했던 이집트의 노예 생활과 고난의 삶을 살았던 광야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한다면 어느 곳에 있던지, 바로 그곳이 약속의 땅이 될 것이고 용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오늘 복음의 큰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동생과 화해하지 못하였고, 동생을 아버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큰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집마저도 약속의 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비록 모든 것을 탕진하고 남의 집에 노예처럼 살며 굶주림에 지쳤지만, 하느님과 화해하고, 자신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면서 약속의 땅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살 때 바로 그곳이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시면 이제라도 훌훌 털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십시오. 큰아들처럼 자신의 지위와 명예가 자신의 능력과 실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시면, 그러한 오만과 교만을 떨쳐버리고 겸손의 옷을 입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사순절을 더욱 뜻있게 보낼 수 있고 우리는 새로운 삶, 부활의 삶으로 초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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