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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목요일]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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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11-14 ㅣ No.133834



 

[연중 제32주간 목요일]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는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고 한다. (지혜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화답송 시편 119(118),89.90.91.130.135.175(◎ 89ㄱ)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 당신의 진실 대대로 이어지고, 당신이 세우신 땅 굳게 서 있나이다. ◎
○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 (루카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지혜7,22ㄴ-8,1)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4)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5)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6)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28)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30)

  

지혜서 7장 22ㄴ절 - 8장 1절까지는 '지혜의 본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첫째, 저자는 지혜서 7장 22ㄴ절-23절에서 지혜의 21가지 속성(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등등)을 밝히고, 이어서 지혜를 세상의 영혼(지혜1,7참조)동일시하여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민첩하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라고 한다.

그 다음 지혜서 7장 25-26절에서 저자는 '숨결', '발산', '광채', '거울', '모상'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지혜가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나면 지혜서 7장 27-28절에서 "지혜는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라고 하면서 지혜가 사람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그리고 지혜서 7장 29-8장1절에서 저자는 지혜가 지닌 우주적 차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혜는 해와 별과 빛보다 빼어나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라고 지적한다.

또한 지혜에는 도덕적 차원도 있다.

그래서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지혜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 실천적인 조언을 주는 것 이상으로 부각시키고, 지혜를 우주적, 역사적, 도덕적, 신학적 의미를 가진 인격체가 되게 한다.

지혜는 분명 이스라엘의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여신이 아니다. 저자는 유일신 사상을 믿는 유다인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주님이시며,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시라고 믿는다.

지혜는 정의나 자비처럼 기껏해야 하느님의 속성이다.

하지만 지혜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지혜가 여성의 특성을 갖는 것은 단순히 '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크마'(hokma)그리스어 '소피아'(sophia) 명사의 성이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혜는 여신 '이시스'(isis; 많은 학자들은 지혜서 7장 22-24절에서 이시스의 속성에 해당하는 것을 제시한다고 본다)나 다른 여성 신들을 가리키는 유다인들의 용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의인화된 지혜의 속성들을 예수님께 부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콜로1,15-20; 요한1,1-18; 히브1,1-4참조).

 


 연중 제32주간목요일 복음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0ㄴ~21)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때'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한 대답을 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그 도래의 시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음을 먼저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모습'에 해당하는 '파라테레세오스'(paratereseos; observation)의 원형 '파라테레시스'(parateresis)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방법으로서의 '관찰'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표징들에 대한 관찰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 속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 어떤 징조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이 가시적으로 어떤 표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내어서 그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 가시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지극히 복된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유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물리적 시각으로 확인되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미래에 당신의 재림을 통해 온전히 완성되어져 나타날 하느님의 나라를 부정하신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도래로 이미 이 땅 가운데 영적인 하느님의 나라,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무지와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여기서 '가운데에'에 해당하는 '엔토스'(entos; in the midst of; among; within)'안에'(within)라고 번역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개인의 내부에', '마음 안에'라는 뜻이 되고, '가운데에'라고 번역하면, '너희 가운데에' 혹은 '이 세상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을지라도, 당시 예수님 앞에는 함께 동행한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한 번역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있다'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은 원형 '에이미'(eimi)현재 시제이다.

이 시제는 하느님의 나라의 미래적 측면보다는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 즉 현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구원과 통치를 인정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이들 가운데 이미 임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바로 이 순간도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 11월15일

 

복음: 루카 17,20-25: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오느냐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그들도 군중들도 예수님의 인격과 그분의 행위를 통하여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왔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질문은 당신이 말하는 그 나라가 오기 전에 십자가와 죽음이 당신을 덮칠 것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사랑과 인내로 그들의 비방을 비방으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1베드 2,23)신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21) 이 말씀의 의미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다시 일어나 다가오겠느냐고 그때를 묻지 마라. 오히려 너희가 그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되도록 애써라. ,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너의 의지에 달렸고,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로움을 인정받고 온갖 덕행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이는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합당한 이로 여겨질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탄이 쫓겨나고 더 이상 죄가 다스리지 못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지식이나 무지, 즉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나라나 사탄의 왕국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의로움에 대한 사랑이나, 죄에 대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의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고 의로움이요 평화이며 기쁨이라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영의 생명을 죽이는 불의와 전쟁, 침울함 속에 있는 사람은 이미 악마의 나라의 시민이다. 이 하느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삶 속에 무엇을 끌어안고 사느냐가 문제이다. 그 나라는 은총과 진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세상 종말에 그분은 하늘로부터 희미하게 또는 은밀하게 내려오시지 않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1티모 6,16)으로서 하느님 같은 영광에 싸여 내려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번개가 빛을 내는 것처럼 오시겠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위엄을 입으시고 천사들을 거느리신 채 만물의 하느님이요 주님으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이제 먼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나라는 먼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구원의 수난을 겪으시고, 당신 육신의 죽음으로 죽음을 무너뜨리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이 세상의 지배자를 파멸시키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다가 때가 되면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시편 96,13)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실천하여 우리 자신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그러한 변화를 청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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