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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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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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19-12-10 ㅣ No.134463

 

민병섭 바오로 신부님의 카페에서 본 글입니다. 나름 뭔가 생각하게 하는 진한 여운이 남아 공유를 하고 싶습니다. 일단 신부님 카페에 올려진 글을 먼저 한번 보시죠.

 

평범하고 무료한 주말, 한 중학생이 잘못된 것은 알지만, 충동적으로 장난 전화를 걸었습니다. 발신 번호 표시제한으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중년의 여자 분이 받았습니다.아이는 별생각 없이 TV에서 자주 들었던 대사를 흉내 내어 마구 말했습니다

 

."엄마, 나야. 큰일 났어. 나 사고 쳤어. 나 경찰서 갈 것 같아. 어떡하면 좋아?"순간 전화기를 통해서 당황스러워하는 숨소리와 다시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려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명석아! 너는 괜찮니? 다치지는 않았어?"

 

학생은 상대방 여자분이 속았다는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학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여자분은 계속 학생에게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밥은 먹었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요즘 많이 힘들지 그래도 가끔 엄마한테 전화 좀

 

보고 싶구나. 너는 엄마 보고 싶지 않니?"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느낀 학생은 그냥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여자분이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명석아. 끊지 마. 명석이는 이미 하늘나라에 있다는 거 아는데 그리고 전화 건 사람이 명석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엄마한테 한마디만 더 해주면 안 되겠니 제발 부탁이야"장난 전화를 걸었던 학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엄마. 사랑해요!"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의 슬픔은 세상 어느 것보다 아프고 괴롭습니다.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치는 그리움은 너무나도 큰 고통입니다.그 아픔을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만 있다면 거짓말이라도 매달려 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하루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일지라도, 주어진 내 시간에 마음껏 사랑하시고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듣고 싶은 아들 목소리 (민병섭 바오로 신부)

 

이 스토리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나시는지요? 참으로 가슴이 먹먹한 사연입니다. 한 중학생이 장난 전화를 했습니다. 자신이 마치 아들인 것처럼 했습니다. 근데 중년의 부인이 마치 속는 연기를 하듯이 진짜 아들인 것처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난 전화를 한 학생은 부인이 속은 줄 알고 재미를 느꼈습니다. 부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정말 자식인 것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했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니 장난 전화를 건 애가 그냥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왜 끊으려고 했을까요? 처음엔 장난이 먹힌 것 같았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이거 장난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걸 어린 학생이지만 분위기를 감지해서 응겹결에 잠시 겁을 먹은 모양입니다.

 

너무나도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부인의 목소리에 아이를 향한 뭔가 간절함이 묻어났기 때문에 학생도 그 느낌을 인지한 모양이라 더는 장난을 계속 이어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전화 통화를 그만 하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수화기 넘어로 또 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입니다. 근데 이때 아들이 하늘 나라에 있다는 걸 밝히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부탁을 합니다. 자기에게 무슨 말이든지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학생은 울먹이는 심정으로 엄마 사랑해요 라는 한마디를 하고 전화를 내려놓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슴 짠합니다. 부인이 아들이 하늘 나라에 있다는 걸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일단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부인의 아들이 지금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이 부인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죠. 이 상황에서 이 부인이 뭔가 한마디 부탁하는 말을 하는 걸 보고 이 학생은 순간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까요?

 

바로 죽은 아들이 그리워서 자신이 장난으로 전화를 걸었던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아주머니가 죽은 아들의 목소리가 간절히 그리워서 비록 남이지만 순간 마치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고 싶은 엄마의 절박한 심정을 느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이 순간 이 학생은 어떤 심정으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을 했을까요?

 

바로 울먹이는 목소리로 했습니다. 이 아이도 그 상황이 처음엔 장난으로 했지만 슬픈 마음이 자기에게 옮겨져 왔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장난 전화를 한 개구쟁이 중학생이었지만 나름 이 상황을 잘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아주머니가 이 학생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말입니다. 바로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이 아들은 진짜 아들로서 엄마를 부른 건 아니지만 짧은 순간이지만 아들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이 스토리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자체만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 글에서 무엇을 느끼시는지요? 비록 어린 학생이 장난 전화를 했지만 부인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를 했다는 겁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까지 한 번만 거짓이라도 좋으니 아들처럼 되어 줄 수 없겠니 하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학생은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거절을 한다고 하면 이 아주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장난 전화를 했을 때는 가짜 아들 노릇을 했지만 이제는 마음은 진짜 아들처럼 아들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만약, 이분이 그냥 아들이 하늘 나라에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면 이 스토리는 별 아무른 감응이 없는 글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바로 이 부분이 이 스토리 전체의 느낌에 여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마침 그나마 이 학생이 상황을 잘 파악해서 다행이지 만약 이런 상태를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하면 얼마나 이 아주머니 가슴에 상처를 줬겠습니까? 그렇치 않아도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을 텐데 그걸 장난 전화로 받고 말았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슬픈 이야기지만 감동이 전해오는 건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머니께서 직접 마치 아들인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로는 전달을 했지만 가슴으로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를 한 학생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 처음엔 장난 전화를 해 동기는 불순했지만 말입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는 나중에 어떤 상황이 되었을지는 잘 모릅니다. 하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짜 아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더라도 아들에 대해 사무치는 그리움을 잠시나마 달랬을 수도 있을 거고요, 또 다른 하나는 이 학생으로 인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사무칠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그런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냥 짧은 스토리이지만 뭔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이런 느낌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만 사람마다 느끼는 상황이 다르니까 한번 이 내용이 복음은 아니지만 이 스토리를 잘 묵상을 하게 되면 제가 느끼지 못한 다른 감동도 있을 겁니다. 한번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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