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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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자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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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16-11-11 ㅣ No.88833

나는 거의 매일 그녀와 마주친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어도

그녀는 내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3층 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문을 열고

세탁소까지 100여미터의 거리를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조금 딴 청을 떨어도 채 2 분이 걸리지 않는다.

 

많이 걸려야 120초, 

그런데 그 사이에 거의 매일 만나는 여인이 있다면 

그걸 우연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운명이라고 하는 게  타당할까?

 

그녀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슬며시 내 운명 속으로 들어 왔다. 


아파트와 세탁소 사이에는 버스 정류장이 둘 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조합도 매일 다르다.

그러니 그런 행인 1,2,3---을

운명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탁소 길 건너에 신문을 파는 할머니가 있긴 한데

내가 일부러 길을 건너지 않는 이상

매일 보기는 해도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나의 그녀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고 운명이라고 할 밖엔.

 

출근 길에 만나는 이 여인은

어느새 내 마음의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서 

어쩌다 하루라도 못 보면 궁금해서 견디기가 힘이 든다.

 

오늘도 아파트 문을 나서며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눈에 띄질 않았다.

조바심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세탁소까지 가는 발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가던 길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길 건너 편 가로수를 바라보기도 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돕는다던가,

결국 세탁소 앞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늘 하던대로 내게 인사를 했다.

 

"굿 모닝 빠삐"

(빠삐는 히스패닉들이 보통 이름 모르는 남자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우리 정서로 아저씨에 해당한다.)

그녀가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오직 '굿 모닝' 단 한 마디다. 

 

나는 "꼬모 에스따 미 아미가"

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몇 번 말을 섞어보긴 했어도 

인사가 끝나면

그녀는 스페인어로만 말을 하기에 

대화는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러니 우리의 관계는 발전될 기미가 없이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늘 그리워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오늘 드디어 그녀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직감적으로 고백할 것이 있음을 알아챘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말이 없어도 통하는 그 무엇이

우리 사이엔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아직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세탁소 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불을 켰다.

그녀는 자기 겉 옷을 손으로 가리켰다.

난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그녀를 도와 겉 옷을 벗겼다.

 

몇 겹의 옷을 그녀는 더 껴입고 있었다.

하기야 얼음이 얼지 않는 날씨라도

긴 파자마 바지를 입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나를 보더라도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그녀가

이런 날씨에 여러겹 옷을 껴입는 방법 외엔 

추위와 겨룰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신속하게 그녀의 자켓을 살펴 보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자켓엔 지퍼 슬라이더가 사라졌다.

 

손재주가 없는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퍼 슬라이더 교환하는 일이다.

세탁소 손님들의 지퍼 슬라이더를 교환해 주는 일로

나는 겨울 동안 짭짤한 부수입을 올린다.

이건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영양가 넘치는 내 은밀한 비자금의 출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녀의 고민거리를 순식간에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묻는 것이었다.

 

"꽌또? (얼마?)

 

내가 최대한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다"(nothing)

"쁘레젠떼 빠라 우스떼드"(그대를 위한 선물)

 

잠시 더 깊어졌던 그녀의 얼굴의 주름이 활짝 펴졌다.

그녀는 나를 껴 안으며

"그라시야"(Thank you)라고 몇 번을 말 했는 지 모르겠다.

사실 그녀가 내 서비스에 대한 값을 지불하려면

새벽부터 찬바람 쐬며 모아서 겨우 쇼핑 카트를 채우고 있는

빈 병의 반은 내려 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녀는 70대 후반의 히스패닉 여자다.

아침마다 빈 병을 주워 생활비를 보태는 눈치다.

그리고 내가 인사를 하면

스페인 어로 팔다리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하는데

팔다리 삭신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거의 매일 early bird가 되어

빈 병이 담긴 쇼핑 카트를 끌어야 하는 

그녀가 가진 육신의 고통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나는 요즈음 오른 쪽 팔꿈치에서 시작해서

팔등을 타고 내려 오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밥 숟가락을 들어 올릴 때마다 시큰시큰 감전된 것처럼 

통증이 팔등에 퍼져서 그 좋아하는 밥  먹는 일도 귀찮을 지경이다.

작은 통증 때문에 삶이  짜증스러움에도

나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울 

그녀의 고통을 생각하며 참아 낸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이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랑은 자신이 알지 못 하는 사이에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그 어떤 것인 것 같다.

 

중학교 때 읽었던 에릭 시걸의 소설 'Love Story'의 마지막은 

(내 부실한 기억이 맞다면)

다음 문장으로 맺는다.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미안해'라고 말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 뿐 아니라, 

'고맙다'라는 말마저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집에서 마시는 물병들을 모으고 있다.

나의 그녀를 위한 깜짝 선물이 될 것을 생각하면

슬금슬금 기쁨이 몰려 온다.

 

그녀가 그 선물을 받으면 아마 내 뺨에 입을 맞출 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녀가 그렇게까지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러면 어떠랴.

기뻐할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하는 것을-----

 

오늘 아침 그 일(?)이 있고부터는 

그녀와의 관계는  

'아 미가'(여자 사람 친구)에서

'노비아'(여자 친구)의 경계를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 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 것 같다는 뜻이다. 

 

가게 문을 나서는 그녀와

그녀가 끄는 쇼핑 카트 위로

막 떠 오르는 해로부터 

부신 햇살 한 무더기가 우르르 쏟아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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