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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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 1 박 2 일-비, 십자가, 그리고 살아 남는 일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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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20-06-04 ㅣ No.97344

Boston 1 박 2 일-비, 십자가, 그리고 살아 남는 일(2019.01)

 

작년 말, 아내는 연초에 Boston 근교에 있는 다육이 농원에 가는데

같이 갈 거냐고 은근한 추파를 던졌다.

이런 상황은 장기 둘 때의 외통수에 해당한다.

"Yes"라는 대답 외에 다른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다육이 농원 방문을 주 목적으로

우리의 Boston 행이 결정되었다.

 

Boston은 아이들 어릴 적에 여행 삼아 두어 번 다녀 왔고

둘 째가 BC(Boston College)를 졸업한 관계로 그 후에도 몇 번을 다녀 온 곳이다.

 

미국에서 제법 오래 된 도시라는 것,

그래서 나이 지긋한 건물과 신세대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로

내 머리 속의 Boston은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굳이 우리와 Boston과의 인연을 뒤적이자면

셋째 딸이 Eastman 음대 출신으로 구성된 

'Arabesque'라는 목관 오중주단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을 했는데

국제 콩트르에서 우승을 한 댓가로 

두 번의 연주회를 주최측에서 열어 주었는데

한 번은 카네기 홀, 

리고 다른 한 번이 바로 보스톤에서 제일 오래 된 교회에서 였던 관계로

당연히 부모된 도리로 Boston에 다녀 올 기회를 한 번 더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추억도 되 살릴 겸 해서

그 교회도 다시 한 번 찾을 요량으로 

우리는 토요일 정오가 채 안 되서 보스톤으로 출발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약 220 여 마일,

거의 4 시간이 걸리는 곳에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가 Boston에 가자며 추파를 던질 때

내 구미를 당기는 미끼를 두어 개 끼워 넣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하루 묵었던 호텔이었다.

개업을 해서 지금까지 쉬임이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호텔 중,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1855 년에 문을 열면서

Omni Parker House는 'Saturday Club'이라는 모임을 유치했는데

이 모임에는 그 당시 Boston 일대의 유명한 사상과와 문학가들이 참여를 했다.

에머슨이며, 나다니엘 호오도온, 올 펠로우 같은사람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었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이 호텔에 다섯 달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도 여기에 묵었고, 

케네디 대통령이 상원 출마를 발표한 곳도 이 호텔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클린의 눈물'을 작곡한 오펜 바흐도 

미국 여행 중 이 호텔에 머물렀는데

나중에 여기에서의 경험 중 일부가 

'호프만 이야기'의 한 부분의 테마로 쓰이기도 했다.

 

월남의 호치민은 젊은 시절, 이 호텔에서 빵을 굽기도 했으며,

클린턴 대통령, 콜린 파웰 같은 사람들도 

이 호텔을 다녀가거나, 호텔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호텔과 식당은 이미 훌륭한 평판이 나 있다.

(우리는 식당에 안 갔다.)

 

하여간 이 호텔은 미국 역사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들락날락하던 곳으로 그 이름을 높이 세운 곳이다.

게다가 Boston 시의 심장부에 자리한 까닭으로

주변의 명소를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아주 착하고 아름다운 특징이 있어서

가격만 허락한다면 하루 이틀 묵기에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 

바로 'Omni Parker House' 호텔이다.

여행 다니며 호텔 이야기는 별로 할 게 없는데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이 호텔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도

긴 시간 동안 쌓인 시간의 켜가 

바로 살아 있는 미국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종일 내리는 비를 뚫고 

호텔에 도착해 보니

로비가 고풍스럽고 아주 정중한 분위기로 우릴 맞았다.

주워 들어 알고 있는 명성 때문인지

조금 위축이 드는 느낌을 받았으나

그런 느낌은 겉에서 보기에 화려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며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덜컹거리는 것이

비포장된 길을 군용 트럭 뒤에 타고 가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였다.

호텔 방도 경직된 우리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는지

아주 작고 소박했는데

욕실에는 난방의 효과가 미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 자는 크고 호화로운 방도 있을 것이다.)

 

호텔 방에 짐을 두고 우리는 서둘러

비 내리는 Boston의 어두운 거리로 나갔다.

비가 내리고 쌀쌀하기는 하나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뭐라도 건져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도리가 아닌가.

 

호텔을 나와 무작정 길을 따라 걸었다.

두어 블록 가서 오른 쪽에 어둠 속에서도 

씩씩하게 빛나는 건물이 나타났는데

매사추세트 주 청사 건물이었다.

 

그 밝게 빛나는 건물을 향해

불나비처럼 걷다가 중간에 우연찮게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Paulist'

 

한국어로 옮기자면 '바오로 회'라고 하면 될 지 모르겠다.

바오로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복음 전파에 힘을 쏟는 가톨릭 단체인데 

특별히 책이나 영상 등 미디어를 통한 선교를 하는 곳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미사 시간 안내가 눈에 들어 왔는데

토요일 오후 5 시에 미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일요일에 미사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토요일에 주일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곳에서 특전 미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쾌재를 불렀다.

다음 날 주일 미사를 해야 하는데 여행 중 미사 시간 맞추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 해 보니 5 시 8 분.

좀 늦었지만 영 늦은 것은 아니었다.

추운 날씨에 영 낯설기만 한 어둔 밤거리를 배회하느니

미사를 드리기로 즉흥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은 바로 꿩 먹고 알 먹는다는 속담의 

전형적인 이중적 특혜를 누릴 수 있음과 다르지 않았다.

 

주위의 이목을 끌지 않고

살금살금 걸어서 빈 자리에 발을 디디니

'대영광송'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사의 중심인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었다는 말과 같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우리 부부를 빼고는 

사제를 비롯해서 모두가 백인들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후손일 것이다.

 

먹고 살 것이 별로 없는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생활이라는 게 뻔하다.

흔히 이민자에게 주어지는 3 D(Dirty, Dangerous, Demanding, or Difficult)라고 하는 

일에 종사했을 초창기 이민 1 세대들.

건설 잡역부에서 가정부까지, 

그 아프고 쓰라린 시간들을 견디어 낸 이야기들을 풀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설움과  어려움 딛고 살아남은

아이리쉬의 후손은 지금 Boston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Boston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주류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John F Kennedy도 아이리쉬 이민자의 후손이다.)

 

마침 우리가 미사에 참석했을 때는

'Epiphany', 즉 '주의 공현 대 축일'이었다.

옛날에는 '삼왕 내조 축일'이라고도 했었는데

동방 박사 세 사람이 동방에서 시작해 

별빛을 따라 베틀레헴까지 가서

예수의 탄생을 보고 경배를 했다는 이야기에 근거해서

공적인 예수의 출현을 기념하는 날이다.

 

2 천 년 전,

먼 거리를 여행하기에 모든 면에서 어려웠음에도

끝까지 길을 가서 예수를 만난 세 명의 현자를 생각하며

내 머리 속에서는 젊은 시절 읽던 이사야 서의 'Remnant'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그 때는 영어로 읽었다.)

 

'Remnant라는 단어는 남은 것, 짜투리라는 뜻이다.

이사야 서에서 Remnant는 어려움과 시련을 견디고 헤쳐나가서

끝까지 남는 사람들이다.

Remnant는  메시아의 출현과 구원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로 나는 이사야 예언서의 줄기를 이해했다.

 

견디고 살아남는 일의 숭고함을 마음에 새기며

미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 성당의 십자가는

처음 보는 내 눈과 마음을 빨아들였다.

보통 개신교 예배당의 십자가는

열 십 자 형의 빈 십자가이다.

빈 십자가는 곧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개신교 예배는 

부활의 기쁨과 환희가 그 바탕을 이룬다.

 

그런데 천주교 성당에는 

보통 십자 고상(고통받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이 걸려 있다.

그러므로 고상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심성 속에는

고통 받는 예수가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미사가 좋게 말하면 엄숙하게 진행되지만

다르게 말하면 밝고 빛나는 색조는 쏙 빠진 채 

우울하고 슬프게 이어진다.

 

그런데 그 날 내가 만난 십자가는

서로 다른 두 십자가를 혼합한 형상을 띄고 있었다.

예술가의 상상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수가 죽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데

그걸 연상시키게 십자가는 두 쪽으로 갈라져 있고,

예수상은 허공에 매달려 있음으로 해서

죽음과 죄의 고통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더불어

부활의 환희까지도 다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Remnant 가 되어

어둠과 시련을 넘어 부활의 환희를 만날 수 있을까?-

 

우연히 마주친 십자가 때문에

미사를 드리는 동안 짧지만 깊은 묵상 속에 잠길 수 있었다.

 

아, 살아남는 일의 숭고함이여.

 

 

 

아내와 비가 하루 종일 나의 동무가 되어 주었다.

 

 

 

 

 

9 층 엘리베이터 앞,

거울, 그리고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우리 방에서 거울 보고 Selfie 

 

 

 

 

 

서양의 건물 중 많은 수가

13 층이 없다.

 

12 층 다음이 14 층

 

 

 

호텔 로비.

 

 

 

 

 

 

밝은 조명을 받고 있는 건물이

매사추세츠 주 정부 청사

 

 

 

 

크리스 마스 추리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이

Boston Common이라고 하는 곳.

공원이며

옛날에는 공공연하게 정치가 이루어진 광장.

 

 

 

 

내가 감동 받은 십자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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