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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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心이 天心이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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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bukhansan] 쪽지 캡슐

2017-06-26 ㅣ No.212960

 

 

 

 

 

民心天心이라고라

 

 

민심이 곧 천심인가?

천심으로 이어지는, 천심이고도 남는 민심도 있지만 거꾸로 가는 민심도 있습니다.

, 같은 민심여론을 놓고 어떤 무리는 천심이라고 찬양하고 어떤 무리는 선동에 현혹된 잘못된 패악이라고 우려합니다.

민심 = 천심인 사회는 천국을 빼닮은 理想鄕입니다. 이런 사회의 지도자는 지도자라는 명칭보다 머슴이 더 어울립니다.

천심은 常識입니다. 상식이란 이성과 감성을 초월하는 가장 순수하고 보편적인 양심의 향기이며 하늘나라의 숨결입니다. 상식은 좌파도 우파도 똑같이 마시는 물과 같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민심이, 장삼이사(張三李四) 입에 오르내리는 구설이, 떠도는 여론이 과반이 넘는가 싶도록 파다하게 퍼진 사안이면 과연 그게 하늘의 계시와 일치하는 걸 까?

! 하릴없는 자의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과거 흰옷을 입고 학처럼 넓은 도포자락 휘젓고 살던 순박한 백성들의 민심은 천심이었을 테지만 현대는 그렇질 못합니다.

IT 발달로 찾아 온 정보화 시대에 민심은 초고속으로 공유되고 세력화까지 형성되지만 천심과는 상관없는 생떼가 항다반사(恒茶飯事)입니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다 진리는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당나귀 귀를 달고 있는 자 말고는 없습니다.

예수를 배신하고 떠나고 고발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군중의 힘이 진리를 가리고 하늘을 쪼개는 일까지 하고도 남았다는 걸 모르는 일이라고 할 사람은 누구일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위정자들이 백성을 받들고 위하는 자세로 곧잘 쓰이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無知莫知한 위정자들이 선동으로 선량한 백성을 혹세무민하여 이를 빌미로 반전을 도모하는 기록도 역사에 허다합니다.

군중은 바람 부는 대로 몰리기 일쑤고 집단적 파워형성에 열광하므로서 맹신의 대열에 자칫 동참합니다. 이를 뇌동(雷同)이라 합니다.

광우병 촛불인지 쥐불인지에 가담했던 분들 중에 뇌동이 아니라고 아직도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좀 이상한 사람입니다.

위정자가 민심을 거스르면, 선동으로 민심을 오도하면, 민심을 我田引水로 엮으면 백성은 고역을 맞습니다. 이 고역은 자업자득입니다.

 

 

사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진리이기는 합니다만 한편으로 들여다보면 색이 바랜 국면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개인·개성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데다가 극도로 발전한 IT시대에 기생하는 쓰레기 언론의 행태는 민심이 파행될 수밖에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비일비재합니다.

천심으로 이어지는 민심은 신성하지만 선동으로 일어나는 민심은 위험합니다. 오도되어 고삐 뚫린 시민은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할 것은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마태5:37-

 

 

누구나 할 것은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합니다. 다만, 옳은 건지 그른 건지를 분간하는 일이 지난하여 헛갈리는 게 문제입니다. ‘할 일인지 아니오할 일인지 분별하는 일이 쉽지를 않습니다. 내남없이 저마다 눈꺼풀이 두 겹 세 겹 씌워져 있어서 어이없게도 푸른색이 붉은 색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고 붉은 색이 꺼멓게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누구의 눈에는 아주 멋있어 보이는데 누구의 눈에는 유치해 보입니다. 누구에게는 천하일색인데 누구한테는 안 본 걸로 하겠답니다.

 

 

글씨 한 자를 보고도 문장 한 줄을 읽고도 그 쓴 사람의 인품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 뜨고도 못 보는 안타까운 노릇의 주인공도 있습니다.

누구는 간신이라 하고 누구는 충신이라 합니다. 누구는 배신자라 하고 누구는 의인이라 합니다.

아무리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해도 그렇지, 아무리 제 입맛에 맞으면 당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목후비 오장육부가 같은 인종들인데 가치관 판단범주가 그처럼 갈릴 수가 있는지 사람 사는 세상이 그야말로 요지경입니다.

 

 

관객 대박 영화들이 거개가 다 좌파 수작들입니다. 구름같이 모여들어 공감하고 의분을 일으켜 공분하고 동참의식에 빠집니다. 대박이 아닌 것들도 쌍욕을 마구 섞어 체제를 갈구고 공권력을 비웃고 재벌을 멸시하고 기존 가치체계를 제켜버리는 장면이 없으면 맹거니가 되어 며칠 못가 스크린을 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좌파적 저항의식의 태두가 가난이나 소득불균형이나 기회불균 등 등으로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좌파 바람은 GNP 만불, 이만불 대에 들면서 불기 시작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절박한 한계상항이면 언감생심입니다.

오늘날 좌파 의식을 날 세우지 못하는 축은 인텔리 축에 못 낍니다. 물구나무서서 걷는 게 더 멋져 보이는 희한한 하늘 아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애고아들입니다. 진실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고아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3:11~12-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에페소 6:11.14-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32-

 

 

뇌동하지 않고 진실을 해바라기하며 바른쪽에 서기 위하여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Hegel의 변증법 정반합의 원리, Kant의 순수·실천이성비판, Socrates, Platon, AristotelesIdea,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등 뭐 이런 거 통달한다고 세상사를 대함에 있어 성현 비스므리 하게라도 되는 건 아닙니다.

하늘의 계시에 맞갖게 응답할 수 있는 아담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세상 지식 다 물리고 주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품속에 넣어주신 내 안의 양심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게 상책이지 싶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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