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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_Frank Sina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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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원 [lion77] 쪽지 캡슐

2021-12-02 ㅣ No.31895



 


album,comment,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10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된 노래람니다!My Way

(가사내용이 전세계인의마음을감동시켰다고함..특히,국가지도자들이퇴임할때..애창곡으로)

 

1967년 싱어송라이터 폴 앵카는 프랑스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의 히트곡

Comme d’Habitude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곡을 영어 노랫말로 써서 라스베이거스에 있던 시나트라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시나트라는 그 노래가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 곡을 억지로 녹음하게 되었고,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녹음을 마쳤다.

 

그렇게 탄생한 My Way는 처음에 평단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자기만족에 빠진 못된 포효 - 평론가 스티븐 홀든
히틀러가 파리에 입성할 때 불렀을 법한 노래- 업저버기자 피터 실버턴 

 

하지만 My Way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크게 히트한 것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미국에서 1위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Strangers in the Night가 그랬듯이

시나트라가 중요한 가수임을 확인시켰다.
 
언젠가 시나트라는 그 노래가 큰 인기를 얻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노래를 부르러 일어날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어요.

왜냐하면 그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건 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허풍을 싫어하거든요.”

 

그는 한 청중에게 작은 아랍 친구가 자신을 위해 히트곡을 더 자주 써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폴 앵카의 조상은 레바논 사람이다). 하지만 시나트라가 느낀 민망함에 대한 얘기는

My Way가 너무 많이 연주되고 많이 불린 뒤에 나왔다고 앵카는 말했다.
 
훗날 폴 앵카는 그 노래가 완전히 그 사람 자체라고 말했고,

프랭크 시나트라 2세도 후렴에 나오는 평범한 다섯 개의 단어”,

그러니까 I did it my way(나는 내 방식대로 했어)”가 아버지에 대한 정확한 요약이라고 말했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난 완전한 인생을 살았어, 모든 길을 여행했지

 
But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하지만 이보다 더,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걸 내 방식대로 했다는 거야


시나트라는 My Way내 인생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농담조로 그 노래를 자신의 국가라고 칭했다.
 
그가 웃음과 눈물, 사랑과 상실,
용서 없이 어렵게 산 인생에 대한 그 노래를 부를 때
노래는 하나의 자서전으로 전달되었다(원문 시나트라 타임지 번역분)

 

 

1915년 미국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태어났다.

1939년 해리 제임스 오케스트라(Harry James Orchestra)의 정식멤버로 가입해 가수 이력을 시작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토미 도시 오케스트라(Tommy Dorsey Orchestra)에서 활동하며 <아일 네버 스마일 어게인(I'll Never Smile Again)>, <스타더스트(Stardust)> 등의 싱글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1942년 솔로 데뷔싱글 <나이트 앤드 데이(Night And Day)>를 발표했고, 1943년 팀 웰렌(Tim Whelan)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 《하이어 앤 하이어(Higher And Higher)》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데뷔했다. 1953년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 감독의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에 출연했고, 이 영화로 1954년에 열린 제26회 아카데미상에서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 중·후반 흥겨운 스윙 스타일의 앨범 《송스 포 스윙잉 러버스!》(1956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2위), 《컴 댄스 위드 미!(Come Dance With Me!)》(1959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2위) 등을 출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60년에 설립한 리프리즈 레코즈(Reprise Records)를 통해 1965년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앨범 《셉템버 오브 마이 이어스》(1966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5위)와 《어 맨 앤드 히즈 뮤직(A Man And His Music)》(1965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9위)을 차례로 발표했다. 이 두 장의 앨범으로 1966년에 열린 제8회 그래미 어워드와 1967에 열린 제9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연이어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딸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와 듀엣곡 <섬싱 스투피드(Somethin' Stupid)>(1967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프랑스 샹송가수 클로드 프랑수아(Claude François)의 노래 <콤 다비튀드(Comme D'habitude)>를 영어로 개사한 <마이 웨이(My Way)>(1969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27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71년 은퇴를 공식 선언했지만 1973년 은퇴를 번복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1981년 당시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행해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호화 휴향지 선시티(Sun City)에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고 공연을 펼쳐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동료 및 후배 가수들과 만든 듀엣 앨범 《듀엣츠(Duets)》(1993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2위)와 《듀엣츠 II(Duets II)》(1994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9위)를 출시했다. 199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1940년대부터 부드러운 크루닝 창법을 내세운 스탠더드 팝 음악을 구현했고,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85년 대통령 자유 메달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1997년 의회황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수상했다.

《송스 포 스윙잉 러버스!》, 《셉템버 오브 마이 이어스》 등이 대표앨범으로 꼽힌다.

대표곡으로 <댓츠 라이프(That's Life)>(1966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4위),

<마이 웨이1위>, <심 프롬 뉴욕 뉴욕(Theme From New York, New York)>

(1980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1위) 등이 있다.

 

And now the end is near
그래, 그것이 나의 길이었어~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내 생의 막이 내리는 것을 마주하고 있어.

 

MY friend, I'll say it clear
친구, 분명히 해두고 싶은게 있어.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을 얘기해 볼께.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참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 다녔지만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Regrets, I've had a few
후회라, 나도 약간은 있었지.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렇지만 다시보면 굳이 언급할 정도로 많았던 건 아냐.

 

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고, 예외없이 끝까지 해냈지.

 

I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난 계획된 길로만 따라가기도 했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조금 다른 샛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기도 했어.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리고 그 보다 더 가치있었던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Yes, there were times I'll sure you knew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그래, 그런적도 있었지. 자네도 잘 알겠지만,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어.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을 겪는 도중 의심이 생길 땐

 

I ate it up and spit out
아무 의심없이 믿기도하고, 딱 잘라 버리기도 했어.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당당했고

 

And did it my way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And now as tears subside
그리고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I find it all so amusing to think I did all that
내 지나온 모든 걸 회상하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Oh, no, oh no not me I did it my way
"아니, 아니야, 난 달라. 난 내 방식대로 살았어" 라고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남자라는게 말이야, 가진 것이 과연 뭐겠어?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자신의 주체성이 없다면, 가진게 아무 것도 없는거지.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비굴한 사람처럼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게 진정 남자 아니겠어.

 

The record shows I tooked the blows
과거가 보여주는 것처럼 난 고난을 피하지 않았고

 

And did it my way
내 방식대로 살았어.

 

Yes, it was my way
그래, 그것이 나의 길이었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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