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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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무엇을 보았습니까/고준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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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식 [wgs691] 쪽지 캡슐

2017-03-25 ㅣ No.110983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9,1-41)

★ 말씀의 초대 ★


“블랙”(Black)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중복 장애인 헬렌 켈러의 생애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대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빛이 없는 곳에서는 성한 눈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한마디가 오래오래 가슴속에서 맴돕니다. 우리가 모두 성한 눈을 가지고 다닐지라도 빛이 없다면 눈은 쓸모없는 기관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안 계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는지요? 어느 날 불현듯 엄습해 온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시는 주님께서 안 계시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요? 우리 모두 길을 잃고 어둠 속을 지치도록 헤맬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우리 존재가 없는 것만도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빛이심을 드러내시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는 이제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주님을 선포합니다. 보지 못하던 자가 진정으로 보게 되었고, 육신의 눈이 성한 사람이 오히려 참빛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세상 것에 눈이 밝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을 깨닫고 살지 못하면 우리의 성한 눈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진정한 빛이 없기에 그의 영혼은 어둠 속에 있을 뿐입니다. 세상 것에만 눈이 밝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일 수 있지만, 내면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소경의 평생소원은 눈을 뜨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 마침내 눈을 뜹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음의 눈까지 떴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의 목적은 단순히 병만 고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치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치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셈입니다.

소경의 치유도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기적은 준비되어 있으면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준비도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주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한 자세로 믿음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 기적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의 교훈은 이 점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소경 이야기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바리사이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적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뜬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예수님을 윽박지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장님입니다.

다음은 소경의 가족과 이웃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고도 호기심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해가 끼칠까 두려워합니다. 믿음에서 의심을 넘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소경입니다. 그는 눈을 뜨고 싶은 일념으로 기다렸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소경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일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 복음 묵상 ★


무엇을 보았습니까?

  어느 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의 빛을 보고 자신과 부딪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등불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그만 “탁!”하고 이 맹인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맹인은 화를 버럭 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그러자 맹인과 부딪친 사람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맹인이 들고 있는 등불을 확인하고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꺼졌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눈이 먼 병자를 고쳐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기고 기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땅히 지켜야할 안식일 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심지 어는 눈먼 사람이 눈을 떴다는 사실마저 부정하려고 듭니다. 그러면서 아예 예수님과 눈멀었던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웁니다. 마치 위의 이야기처럼 등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도 모르는 소경이 자신과 부딪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볼 수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태생 소경이 분명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행위를 했다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 계명을 지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반대로 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진정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태생 소경은 비록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빛이요 구원 그 자체임을 보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죄인으로 취급받으며, 심지어는 회당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여러 소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운 사람만 소경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돈에 미친 사람은 돈만 보이고, 도박에 미친 사람은 화투장만 보일 것입니다. 또 여자에 미친 사람은 여자만 보이고, 권력에 미친 사람은 권력만 보일 것입니다. 그렇듯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소경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말씀자료:-고준석 신부-편집:원 근식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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