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이야기 4. (인생을 되돌아 보자)
아래의 연옥 이야기는 알프스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젊은 여인이 쓴 것인데, 나중에 버나드 도일스 신부(Rev. Bernard Doyls, S.V.D.)께서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진정한 지혜와 신심
연옥에는 지상에서 위대한 지혜와 학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른 이들을 위하여 많은 좋은 일들을 했으며, 정의를 수호한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행동들을 자신의 야심적인 동기로 인하여 행하였다. 그들은 세속의 정신에 깊이 젖어 있었으며,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며, 그들의 주님이시며 창조주께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였다.
이러한 영혼들은 하느님께 대한 지극히 미소한 지식만을 가지고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지상에서는 모든 것을 잘 알았으나, 그들은 이제 크나큰 당황 속에 빠지게 된다. 전에는 그들이 매우 많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었으나, 이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위대한 것들을 겸손한 자들에게만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명한" 이들은 대개 피상적인 영혼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자아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그들의 잠으로부터 깨어날 때까지, 그들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연옥에 오래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빛이 드디어 영혼의 내부까지 꿰뚫고 들어올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수의 안에서 죽어서 생명이 없는 것처럼 누워있다. 그들은 가장 도움받기 어려운 이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과 자신의 것들을 그토록 많이 가졌었기 때문이다. 연옥에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 큰 존경을 받던 현명한 이들이 있다. 이제, 그들은 크게 당혹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보잘 것 없는 어린 아이가 그들보다도 현명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에게 위대한 것들을 밝혀 주신다.“ 재판을 하심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무한히 자비로우시다. 그분께서는 영혼이 지니고 있는 참으로 선한 것들을 정화하시고 티없이 순결하게 보존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영원히 보답을 주실 수 있으시다. 그리고, 수많은 잘못들과 실수들도 있었지만, 이로 인하여 선행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좋은 행위를 존중하시며, 지극히 작은 봉헌까지도 높이 보시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지상에서 경건하고 신심깊었던 영혼들은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받은 존경 때문에 연옥의 고통을 오랫동안 받게 된다. 나는 연옥에서 자신의 의지와 자애심으로 성인이 되고저 했던 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그리고, 고해 신부나 영적 지도자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신심 생활을 한 이들과,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하고 자신들의 이기심을 추구한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렇다. 이들은 신심을 실천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지 않았으며, 자신 안에서의 결점들을 보기 원치 않았고, 자신의 생활 방식이 최선의 것이라고 자만했으며, 겸손과 통회로써가 아니라 자랑스럽게 보속을 행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보속은 참된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거룩하게 되고저 하는 교만한 욕심을 가진 이들이었으며, 그들이 행한 극기와 희생들을 계속 되돌아보고 세어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일들을 행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작고도 중요한 의무들은 소홀히 하였다. 이러한 영혼들은 연옥의 불길 매우 깊숙히 있다. 그들의 전 생애가 하나의 오랜 기만이었다. 오, 영원하신 진리께서 그들을 얼마나 맹렬하게 태우시는 지! 하느님께서는 그들로 인해 기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그들은 크나큰 고통과 고뇌를 겪어야 한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통회할 수 있고, 그들의 교만한 자아가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혹심한 고통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통회와 겸손의 기미가 보이자 말자, 그들의 영혼은 철저하게 정화될 수 있다. 그 정화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그들이 자아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며, 그 때에는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연옥 이야기 3. (인생을 되돌아 보자)
아래의 연옥 이야기는 알프스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젊은 여인이 쓴 것인데, 나중에 버나드 도일스 신부(Rev. Bernard Doyls, S.V.D.)께서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연옥에서의 놀라운 일들 그러나, 연옥에서 모든 영혼들이 똑같은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를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이들이 가장 오래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사실이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연옥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런 일에 관하여 일체의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해주시기 위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 이유들을 연옥에서 발견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영원 안에서는 우리가 지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지상에서는 우리가 정확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어려우며, 따라서 우리가 판단할 자격이 없다.
오, 신적인 재판관의 결정하심이 우리들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이 영혼은 틀림없이 상실되었다. 아니면, 연옥의 맨 밑바닥에 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영혼이 이미 천국에 가 있을 수 있다. 또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 영혼은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거룩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연옥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느님께서만 당신의 피조물들의 마음 속을 아신다. 하느님께서만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판단하심에 있어서 대단히 인자로우시며 친절하시다. 반면, 우리는 가혹하며 퉁명스럽다.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부당하지 않으시다. 재판관으로서도 그분께서는 너무나 인자하시고, 사랑으로 넘치시고, 정의로우시다. 선의를 가진 모든 이들이 지극한 친절로써 다루어진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그들이 지상에서 살면서 그들 자신을 감싼 두꺼운, 말하자면, 수의(壽衣)에 감싸져 있다. 그것은 자기 본위 주의(즉, 자애심)의 의복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장 열심히 돌본 것은 자기 자신들이었다. 세상에서의 최고의 이상이 자아를 영광스럽게 하고 자아에 영예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자기 중심 주의가 그 거친 의복을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하느님의 빛이 뚫고 들어가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지상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방식이 과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가?" 그 대신, 그들은 별로 걱정함도 없이 그들의 생활이 올바르며 매우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교회에 즐겁게 가고, 기도를 바치고, 자선의 행위를 하지만, 그들의 영혼 주위에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대단히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이 없이,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없이 모든 행동을 한다.
그들은 외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내적 양심이 무디어지는 것을 초래한다. 만일 누가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면, 그들은 즉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변호한다. 연옥에는 이런 영혼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연옥에 와 있으면서도 진리에 대하여 아직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변화는 오직 서서히 올 뿐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수의를 뚫고 들어가 그 영혼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연옥 이야기 2. (인생을 되돌아 보자)
아래의 연옥 이야기는 알프스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젊은 여인이 쓴 것인데, 나중에 버나드 도일스 신부(Rev. Bernard Doyls, S.V.D.)께서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연옥은 정화한다 연옥에서 또한 나는 예수님의 고귀한 성혈에 대한 감사를 배웠다. 그 곳에서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성혈에 의하여 적셔지고 생기를 받고 있으며, 큰 혜택들이 그 성혈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참으로 연령들이 이 지극히 고귀한 성혈에 의하여 위로받고 있으며, 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공경을 성혈께 드리고 있다.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들은 아무런 결함도 없어야 한다. 만일 결함이 있다면, 하느님께 결함이 있는 것이 되며, 하느님의 행복하심이 완전하지 못함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성소(聖召)를 받아 있다. 즉, 우리가 하느님의 찬란함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지체(肢體)가 된다.
이는 너무나 훌륭한 신비이기 때문에 묘사할 수가 없으며, 단지 묵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왜 연옥이 있는가 하는 이유이다. 나는 연옥을 보속의 작업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다. 하느님께서 영혼들을 연옥에 두시는 것은 사랑과 자비로 인함이다. 만약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찬란히 빛나는 순결함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면, 이러한 정화를 거친 후에 그들이 누리게 될 행복의 충만함을 그들이 영원토록 지니게 되지도 못할 것이다.
오직 정화를 거친 후에야 그들은 하느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영원토록 더 사랑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오, 연옥에서의 가장 긴 기간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연옥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는 영혼은 없다. 아무리 불길 속 깊이 파묻혀 있다고 하더라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영혼들은 없다. 영원히 행복하기 위하여 고통받는다고 하는 확실성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다.
연옥 이야기 1. (인생을 되돌아 보자)
인간이 죄를 완전히 보속하지 못한 채 죽었을 때 영혼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을 연옥에서 씻습니다. 연옥의 영혼들은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있는 인간들은 연옥 영혼들을 위해 미사와 기도, 자선 등 각종 선한 일로써 위로와 보속의 단축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아래의 연옥 이야기는 알프스산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젊은 여인이 쓴 것인데, 나중에 버나드 도일스 신부(Rev. Bernard Doyls, S.V.D.)께서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연옥은 자비와 인자하심의 장소이다. 하느님께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무한히 인자하시다는 것을 나는 전에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연령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이시다. 나는 연옥에서처럼 자비로운 사랑이 흘러넘치게 퍼부어지는 곳을 본 적이 없다. 그 정화하는 불길 속에서 나는 하느님의 좋으심과 자비하심을 보았다.
나에게는 마치 영혼이 하느님께 이런 간청을 드리는 것 같았다: "제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보속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자, 하느님께서 대답하신다: "그래, 너는 이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수련 기간에 들어가게 된다. 너는 이제 고통을 받으며 너의 모든 죄들을 보속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순결하게 될 것이며, 나의 왕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
오, 얼마나 큰 감사로써 영혼이 연옥을 받아들이는지! 영혼은 자신을 이 정화의 장소로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인하여 기뻐 용약한다. 영혼은 연옥을 얻어내신 예수님의 고귀하신 성혈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는지! 참으로, 그곳은 멸망으로 떨어질 번 했던 영혼들이 모여있는 구속(救贖)의 장소이며, 피신의 장소이며, 자비로우신 사랑으로 마련해 주신 장소이다.
연옥은 또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장소이다. 그 곳에서 영혼들은 잠에서 깨어나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며, 선하시며, 위대하신지를 알게 된다. 그들은 지상에서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내쳤었는지를, 그리고 그리함으로써 얼마나 그들의 구세주를 슬프게 해드렸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 중에 얼마나 큰 혜택들이 그들에게 베풀어졌던가를 깨닫게 되며, 그들이 헛되이 지나쳐버린 수많은 은총들과 공로의 기회들을 알게 되며, 그들이 지상에서 예수님을 사랑해드림에 있어서 너무나 인색함으로 인하여 그분께 얼마나 심한 고통을 드렸는가를 깨닫게 된다.
하느님의 좋으심이 모두 그들에게 밝혀지며, 그들은 그들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하여 어떤 불의로써 갚아드렸는가를 알게 된다. 그곳에는 영혼을 태워서 정화하는 불이 있으며, 표현할 수 없이 큰 고통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들은 주님의 지극히 고귀하신 성혈의 공로와 일치되어 있으며, 이것이 죄를 보속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연령들은 하느님의 좋으심과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다. 지상에서의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이 크면 클수록, 그들이 연옥에서 받는 고통도 더 클 것이다. 영원 속에 들어간 영혼들은 더 이상 지상에서처럼 완고하지 않다. 하느님의 좋으심과,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하느님의 높으심으로부터의 빛으로 인하여 그들은 유연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연령들에 대하여 심하시거나 혹독하지 않으시다.
반대로, 그분께서는 좋으시며, 연령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으로 가득 차 계신다. 그리고,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하느님께서 지극히 좋으심을 확실히 깨닫는다. 나는 연옥 전체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 것 같다: "오, 얼마나 좋으신가!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좋으신가! 우리가 그분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틀림없이 그분을 더 사랑해드리려고 했을 텐데!"
하느님의 사랑과 자신들의 완고함 사이의 엄청난 대조에 대한 깨달음은 영혼에게 깊은 영향을 주며, 지극히 큰 고통이 된다. 나는 이 고통을 내 마음 속에서 경험하였는데, 그 고통스러움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복된 고통이다! 그것은 절망이 동반되지 않은 고통이다. 왜냐하면, 연령들은 그들이 구원되었음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며,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고, 그 곳에서 그들의 죄가 완전히 없어지고 잊혀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 동안에 행한 가장 미소한 선행까지도 영원히 보답해 주신다. 그 사랑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하여 연령들은 오직 통회를 함으로써 이를 견디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통회의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동시에 행복하다. 그들은 모든 걱정과 불확실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들은 그들이 영원한 빛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성녀 파우스티나의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환시
주님께서는 2000년 4월 30일 성인에 오르신 성녀 파우스티나를 통해 천국과 지옥과 연옥의 환시를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를 통해 부활절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공경받기를 원한다고 하셨고, 현재 교회는 부활절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지내고 있다.
[천국의 환시]
파우스티나 수녀는 전에 연옥과 지옥을 본 일이 있었다. 11월 27일 몸이 약해 누워있을 때, 다음과 같이 천국에 대한 환시를 기록하였다.
오늘 나는 정신적으로 천국에 가 있었다. 나는 사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보았다. 모든 피조물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았다. 이 행복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이 행복에서 나오는 영광과 찬미는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께 되돌아간다. 그들은 끝없는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명상한다.
이 행복의 원천은 그 본질상 불변의 것이나, 항상 신선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행복을 쏟아 붓는다...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눈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조그마한 행위라 하더라도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충실히 사랑하는 영혼에게 내리시는 은혜는 측량할 수 없다.
하느님의 엄청난 엄위로우심을 보고도 나는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이 자기들이 받은 은총과 계급에 따라 하느님을 숭배한다는 사실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기쁨도 더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즐거웠다. 내가 작음을 보고 기뻤다. 왜냐하면 내가 작아야 하느님께서 나를 품안으로 데려가 성심에 보다 가까이 안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하느님,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을 감싸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정(父情)어린 가슴에 껴안으시게 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연옥의 환시]
"나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령하는 수호천사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고통받는 영혼들의 큰 군중이 있는 불과 연기가 가득찬 장소에 있었다. 그들은 열렬히 기도하고 있었으나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며 오직 우리가 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을 태우고 있는 불꽃이 나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나의 수호천사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영혼들에게 그들의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의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방문하는 성모님을 보았다. 그 영혼들은 성모님을 '바다의 별' 이라고 불렀다. 성모님께서는 그들에게 원기회복을 가져다 주신다. 나는 그들과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나의 수호천사는 떠나자고 나에게 손짓하였다. 우리는 그 고통의 감옥을 벗어났다. [나는 내적 목소리를 들었다] 나의 자비는 이것을 원하지 않지만 내 정의가 그것을 요구한다." (일기 20)
[지옥의 환시]
이 피정에서 파우스티나 수녀는 신비적 일치의 경험을 가졌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을 보았다.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어느 한 순간에, 긴 세월 동안 묵상과 명상을 통해 얻은 것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파우스티나는 예수의 명령으로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 지옥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심한 고문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였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나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보았다. 지옥을 이루는 첫째 고문은 하느님의 상실이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을 파괴시키지는 않은 채 파고드는 불길인데, 하느님의 분노에서 나오는 영신적 불로서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 고문은 연속적인 암흑과 질식할 듯한 무서운 냄새, 더구나 이 암흑 가운데서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고문은 사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 고문은 무서운 절망감, 하느님의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각 영혼마다 특별한 고통이 있다. 예를 들면 감각의 고통이 있다. 각 영혼은 각자 지은 죄의 양상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각자가 겪는 고통이 다른 동굴과 구덩이들이 있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까무라쳤을것이다. 죄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도 지옥이 어디 있느냐, 본 사람이라도 있느냐, 지옥이 어떻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에 의해 이것을 기록한다.
나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지옥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지옥의 심연을 방문하였다. 나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 악마들은 나를 증오했으나 하느님의 명령으로 나에게 순종하였다. 나의 기록은 내가 본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옥에 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따라서 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한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기도한다.
오 예수님,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어떠한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