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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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강론.“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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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8-03-17 ㅣ No.119056

 

 

요한 7,40-53(사순 4 )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6 개월쯤 전 초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휩싸이어 급박하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

 

 오늘 <복음>은 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의 여러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나섰다가 그냥 돌아온 성전 경비병들은 그들을 보낸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

 

 그런데, 대체 그분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기에, 그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대체,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어떻게 달랐을까? 그분의 말씀은 어째서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일까? 왜 오늘 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받고 변화되는 것일까? 대체, 그 신비로운 힘은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줍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을까?

 

 그것은 오늘 <복음>의 앞부분인 어제 <복음>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하느님에게서 왔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단지 하느님에 의해서 보냄 받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느님에 의해서 보냄 받은 자들은 많았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렇고, 세례자 요한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분이시요,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은 단 한 분,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온전히 하느님을 아시며, 그분의 가르침은 참되고 권위가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곧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고 성경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를 여기지만, 바로 그 안다는 사실에 걸려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는 편견혹은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르쳐줍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는 자신들이 안다고 여기는 무식한 이들과 자신들이 모른다고 여기는 유식한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안다고 여기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사실 선입견에 빠져 예수님을 거부하는 무식한 이들이요, ‘자신들이 모른다고 여기는 성전경비병들은 오히려 편견 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진정 유식한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자칫,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우리의 편견과 선입감으로 말씀을 거부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르면서 알 뿐입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사실, 지적 정보의 한 파편, 아니 한 파편의 한 부분도 제대로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저 1미크론(1/1000 mm)이나 1나노(10억분의 1) 만큼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양 믿어버리는 이 어리석음의 선입견이 때로는 하느님의 계획까지도 거부하고 외면하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알량한 지식 나부레기를 믿어버린 이 선입견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버리리고 맙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앎으로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우리를 알아듣고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말씀께 승복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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