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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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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1-22 ㅣ No.126985

 


2019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히브 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복음 마르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종종 사람들이 저에게

글쓰기와 말하기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쉽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매일 글을 쓰고 있으며,

남들 앞에서 강론이나

 특강을 하면서 말을

자주 하기 때문에 둘 다 쉽게

하리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둘 다 어렵습니다.
매일 글을 쓰고는 있지만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찾고,

때로는 좋은 문장들을

메모해놓아서

인용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혼불’의 저자 홍명희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것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렇게 훌륭한 작품을 쓰신 분 역시

 글 쓰는 것을 어려워 하셨는데,

하물며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겠습니까?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글이라는 것은 나중에

수정도 가능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한번 내뱉으면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써서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신부라는 입장에서 하는 말과

글이기 때문에 좋은 말을

골라서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하라고... 긍정적으로 살라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이렇게

말하다보면 이런 울림이 가끔

제 안에서 들리는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사니?’
내 삶과 동떨어진 말을 하는

위선자와 같지 않을까 라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저절로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저절로 위축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말과 글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살고 계신가요?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만을

 높이려는 욕심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은 이런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을

 향해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비난합니다.

 즉, 안식일 법에 의하면 일해서는

 안 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걸으면서 밀 이삭을 뜯은 것은

추수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교만의

마음이 억지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지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교만의 마음이 아니라,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랑의 관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을 내려놓고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글이 바뀝니다.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실패가 확실히 보장된다.

(밀 이삭을 뜯는 예수님의 제자들)

누가?

(탈무드 중에서)

누가 현명한 사람인가?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 사람인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누가 존귀한 사람인가?

자신의 동료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현명함, 강함, 부유함, 존귀함...

어쩌면 우리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저절로 얻어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는 마음, 스스로를 통제하는 절제,

가진 것에 충분함을 느끼는 여유로운 마음,

이웃 사랑을 향한 마음 등...

우리들이 노력해야 할 것들이

 정말로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성 바오로 피정의 집에서 개인 피정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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