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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4 -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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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10-14 ㅣ No.115413




2017
10 14 () 가해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Saturday of the Twenty-seventh Week in Ordinary Time
(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기념일)

요엘서 4,12-21 / 갈라티아서 3,22-29
루카복음 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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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요엘서 4,12-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민족들은 일어나 여호사팟 골짜기로 올라가라. 내가 사방의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려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리라. 13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와서 밟아라. 포도 확이 가득 찼다. 확마다 넘쳐흐른다. 그들의 악이 크다.
14
거대한 무리가 ‘결판의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결판의 골짜기’에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15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제 빛을 거두어들인다. 16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17
그때에 너희는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사는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인들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리라.
18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 19 이집트는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광야가 되리라. 그들이 유다의 자손들을 폭행하고, 그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21 나는 그들의 피를 되갚아 주고, 어떤 죄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Reading 1


Jl 4:12-21

Thus says the LORD:
Let the nations bestir themselves and come up to the Valley of Jehoshaphat;
For there will I sit in judgment upon all the neighboring nations.

Apply the sickle, for the harvest is ripe;
Come and tread, for the wine press is full;
The vats overflow, for great is their malice.
Crowd upon crowd in the valley of decision;
For near is the day of the LORD in the valley of decision.
Sun and moon are darkened, and the stars withhold their brightness.
The LORD roars from Zion, and from Jerusalem raises his voice;
The heavens and the earth quake, but the LORD is a refuge to his people, a stronghold to the children of Israel.

Then shall you know that I, the LORD, am your God, dwelling on Zion, my holy mountain; Jerusalem shall be holy, and strangers shall pass through her no more.
And then, on that day, the mountains shall drip new wine, and the hills shall flow with milk;
And the channels of Judah shall flow with water:
A fountain shall issue from the house of the LORD, to water the Valley of Shittim.
Egypt shall be a waste, and Edom a desert waste,
Because of violence done to the people of Judah, because they shed innocent blood in their land.
But Judah shall abide forever, and Jerusalem for all generations.
I will avenge their blood, and not leave it unpunished.
The LORD dwells in Z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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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3,22-29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Reading 1


GAL 3:22-29

Brothers and sisters:
Scripture confined all things under the power of sin, that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he promise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Before faith came, we were held in custody under law, confined for the faith that was to be revealed.
Consequently, the law was our disciplinarian for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But now that faith has come, we are no longer under a disciplinarian.
For through faith you are all children of God in Christ Jesus.
For all of you who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clothed yourselves with Christ.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slave nor free person, there is not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And if you belong to Christ, then you are Abraham
s descendants, heirs according to the 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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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Gospel


Lk 11:27-28

While Jesus was speaking, a woman from the crowd called out and said to him, "Blessed is the womb that carried you and the breasts at which you nursed."
He replied, "Rather, blessed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ser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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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14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기념일)


모든 어머니는 자식 때문에 행복하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 사이에 많은 인연이 있고, 관계가 있겠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만큼 끈끈하고 일체가 되어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1촌이고, 부부는 무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 될 수도 있지만, 부모 자식 관계는 절대로 무효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에 둘러싸여 있던 어떤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외칩니다.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 보는 것은 여인만이, 더 나아가 어머니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따라서 이 여인의 외침은, 남성들은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축복을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 행복하신 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인연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셨기 때문이고, 이를 위해 아들의 수난과 죽음까지 함께하시는 고통도 기꺼이 인내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연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인연과 내가 선택한 신앙은 그보다 더 값진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것은 바로 내 삶의 봉헌과 투신이 그 안에 온전히 녹아 있어서 그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봉헌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투신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행복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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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08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그리스도 신앙이 유다인들의 선민의식과 율법 신앙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킨 힘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통해 선포된 하느님 사랑의 보편성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율법 준수를 통해 약속된 하느님 나라와 구원의 길이 선택된 자신들에게만 주어졌다는 편견을 가졌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창조 이래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당신 백성으로 초대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하느님 나라의 위대한 보편성을,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라는 감동적인 고백으로 선포합니다. 분열의 고통과 따돌림의 상처를 지닌 이들이 왜 예수님 안에서 치유와 자유를 체험하게 되었는지 알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지구촌, 세계화’란 이름으로 하나의 인류를 꿈꾸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숨겨진 특권 의식과 선민의식으로 사로잡힌 세상을 만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 시대를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못한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 “돈에 대한 물신주의”가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를 만들어 내고, 인간을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53-54항 참조).
오늘 복음에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는 한 여인의 탄복은, 성모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이미 주님의 어머니로 칭송 받으셨음을 드러내는 대목이지만, 언뜻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토로하는 우리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나보다 나은 이를 칭송하기보다 질시와 분노를 앞세우는 모순된 이 세상에 묻힌 또 다른 나의 얼굴이 아닐까 되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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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 10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요엘 예언서의 말씀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는 등, 생경한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러한 상징들을 모두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주제에만 머물러 보겠습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 안에서 종말에 대한 관심은 주로 유배 이후 늦은 시기에 나타납니다. 요엘서뿐만 아니라 즈카르야서, 3이사야서 등 여러 예언서에서, 종말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인데, 서로 병행되는 본문인 미카서 4장과 이사야서 2장에서도,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는 시온에 자리하십니다.
물론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성전 안에는 하느님의 옥좌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예언서들이 그려 보이는 종말의 장면은 첫 번째로 심판입니다. 우선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시는 하느님께서 불의를 심판하시고 세상을 정화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시온으로부터 구원이 세상으로 전해집니다. 에제키엘서도,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나면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그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 나리라고 이미 예언했지요(에제 47). 요엘서도 시온 산을 중심으로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고 예고합니다. 이와 같이 심판 뒤에는 구원이 있을 것인데, 지상에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장소인 예루살렘이 그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부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써 이러한 예언들이 성취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세상 구원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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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 11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루마니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파티(1917-1950) 20세기의 뛰어난 연주가일뿐더러 연주 만큼이나 아름답고 고귀한 인품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스승 나디아 불랑제가 기억하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한번은 제가 제네바에 그를 보러 갔어요. 그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어요. 제게 말하더군요. ‘선생님, 저하고 같이 의사한테 가십시다.’ ‘아니, ?’ ‘선생님이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진찰 받으시도록 의사와 약속을 잡아 놓았어요.’ 그는 이미 의사와 얘기를 다 해 놓았고, 제가 묵을 테라스 딸린 방까지 잡아 두었던 겁니다.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매우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자기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제가 며칠 잘 쉴 수 있도록 챙기는 걸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죠. 삶을 사랑했고, 멋진 연주회를 열었고 ……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도 감동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몇 차례씩 수혈을 받으며 버티던 중이었는데 말이죠”(브뤼노 몽생종,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블랑제』에서).
리파티는 난치병과 투병하며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도 자신보다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였습니다. 하늘이 내린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과 나누려 한 이 음악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그는 그야말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긴 사람은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배려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이야말로 어떤 명예와 즐거움보다 더 큰 행복의 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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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12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본당 사목자로 지내다 보면 “신부님,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식사에 초대되어 더러는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얻어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그러한 자리가 사목자에게 참된 보람을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사목자에게 가장 보람된 순간은 교우들의 신앙이 깊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냉담 교우들이 주님께 다시 돌아와 신앙생활에 충실할 때, 하느님을 모르던 이들이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입니다. 사목자는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사제 생활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고급 식당의 비싼 음식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군중 속의 한 여자가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탄복하며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과 혈육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복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젖을 먹인 것이 공덕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깨달은 하느님의 뜻을 지키는 것이 공덕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데에 관심을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과 어떤 면에서 관계를 이어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정작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에는 소홀하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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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13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저는 산에 가면 가끔 산삼을 캐곤 하는데 그렇게 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산삼을 캐면 꼭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 사람이 주인입니다. 건강하지 않던 사람이 그것을 먹고 건강을 회복하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20,35)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 물질이 있는데 이는 우리 몸의 특별한 반응을 통해 생겨난다고 합니다. ,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거나 좋은 생각을 하거나 선한 일을 볼 때 신체 내에 면역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체 현상을 인도 콜카타의 데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서 ‘데레사 효과’라고 부릅니다. 선한 일을 하면 남도 행복하지만 결국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바랍니다. 그런데 행복은 희생과 봉사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행복은 이 세상이 가져다 주는 행복과는 다르며 또 이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과도 다릅니다.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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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08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한 자매가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남의 자식은 일류 대학에 잘도 들어가고 좋은 직업 얻어서 장가도 잘 가는데 우리 자식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남의 자식들 잘되는 것 보면 화가 나고 저런 자식을 두면 얼마나 좋을까 늘 약이 오릅니다.
이런 마음은 모든 부모에게 공통된 것이지요.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 좋은 직장 얻고 혼인 잘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 주면 부모들은 더 바랄 것이 없지요. 게다가 사회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 자식을 두면 모든 부모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속의 어떤 여인도 같은 심정으로 소리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권위 있는 가르침과 예수님의 능력을 보며 저런 자식을 낳아 기른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할까 경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한 인간으로서 정말 행복하셨을까요? 사실은 역사를 통틀어 누구보다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영광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이지, 예수님과 함께하셨던 시간은 가시밭길 인생이셨습니다. 오로지 꿈결처럼 들려온 가브리엘 천사의 말씀을 믿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평생을 몸부림쳤던 여인이셨습니다.
남의 손의 떡은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남의 자식이 겉으로는 세상에서 성공의 길을 달리는 것 같이 보여도 그들 부모가 안고 사는 남모르는 고통은 오히려 더 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며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세상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해서 잘살기를 바라기보다 올바른 가치관과 신앙을 가지고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잃고 나면 그 나머지 외적으로 주어진 성공적인 모습은 전 인생을 놓고 볼 때 허깨비일 따름입니다. 이른바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영혼이 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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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09)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군중 속에서 어떤 여인이 주님께 목소리를 높여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주님을 낳으시고 기르신 성모 마리아를 칭송하는 소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이, 주님의 어머니도 소중한 분이시고, 참으로 칭송 받아 마땅한 분이시지요. 게다가 주님의 어머니가 아니셨으면 이 세상에 구원이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는 더할 나위 없이 참으로 고마운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 여인의 칭송에 대한 대답으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참으로 맛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서 안에서 이러한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주님의 말씀은 단호하시지만, 그 속에 따뜻함이 녹아 있습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께서 베푸시는 참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바로 그러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이 말씀을 삶으로 옮길 때, 우리는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 생활 안에서 어렵고 힘든 길이 되겠지만, 유한한 인생살이에서 어렵고 힘든 길은 잠시뿐이란 걸 우리는 압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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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10)


조개는 바다 밑 모래 바닥에서 숨을 쉽니다. 어쩌다 잘못되면 모래를 빨아들이기도 합니다. 연한 살 속에 모래가 박히면 조개는 통증을 없애려 ‘진액’을 짜냅니다. 끊임없이 짜내어 모래알을 에워쌉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조개 속의 모래알은 영롱한 ‘진주’로 탈바꿈합니다. 하지만 ‘조개 속에 박힌 모래’가 전부 진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모래 때문에 생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죽기도 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군중 속의 한 여인이 성모님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여인입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자녀를 진주로 키워 내는 어머니의 헌신을 체험해 본 여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처럼 사는 것이 ‘말씀의 실천’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가족과 이웃을 어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들과의 부딪침을 ‘어머니의 인내’로 극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삶의 진주’를 만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셨습니다. 슬픔과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하셨습니다. 아드님의 죽음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답게 사셨던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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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11)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군중 속의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이 어떤 가슴인지 알고 있는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따뜻한 가슴을 지녔습니다. 자녀에 관한 한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내부에 발전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발전소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마음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전기를 일으켜 그것을 이겨 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의 답변 역시 따뜻합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쉬운 길을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고 따르면 행복이 옵니다. 그분의 말씀인 ‘사랑하며 사는 것’을 실천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평범하면서 쉬운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길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전기가 들어와야 빛을 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차가운 유리 조각에 불과합니다. 전기는 따뜻함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닮는 행동입니다. 타인을 기쁨으로 대하면 자신의 운명에도 기쁨이 함께합니다. 짧은 인생에서 차갑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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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3)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의 죽음은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슬픔에 가슴이 미어져도 소문 없이 묻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치고 절망에 젖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자식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에는 앞이 캄캄한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순교자들 가운데에서도 자녀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순교라 하지만 어찌 인간적 감정마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도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셨습니다. 슬픔과 분노와 무력감이 드셨겠지만, 어머니는 아드님과 함께하시면서 아드님의 죽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성모님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답게 사셨던 성모님의 참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성모님을 예찬한 이 여인은 분명 어머니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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