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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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섬의 노래(Songs from an Island; Lieder von einer I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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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yongdae_kim] 쪽지 캡슐

2018-03-13 ㅣ No.118963

어느 섬의 노래(Songs from an Island; Lieder von einer Insel)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1926-1973)/후고(後考) 옮김

 

 

 

교교(咬咬)한 달빛을 받아 과일들의 그림자가 벽에 떨어지고 있고

 

집은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것 같고

 

바닷바람은 달의 차디찬 분화구에 모래를 실어 나고 있는 것 같다.

 

 

 

해변은 아리따운 젊은이들의 품 안에서 잠들고

 

그대와 섬인 내가 한 몸이 되었기에

 

마치 피할 수 없는 십자가인양

 

십자가 모양의 돛대를 단 배들도 떠나가버렸지만

 

그대의 살은 아직도 나의 살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십자가 형장(刑場)들은 텅 비어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대가 부활하고

 

내가 부활할 때에는

 

무덤의 문 앞에는 돌이 놓여있지도 않을 것이고

 

바다 위에는 떠다니는 배도 없을 것이다.

 

 

 

내일 주일(主日)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술통들이 굴러가고

 

우리는 해변에 발자국을 남기고

 

해변에서 포도를 씻어 밟아 포도주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대가 부활하고

 

내가 부활하게 될 때

 

죄인에게 못을 박던 망나니는 문에 매달리게 되고

 

더 이상 소용이 없는 망치는 바다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축일로 지정되리라!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Saint Anthony)이여, 고생이 많았소.

 

레오나르드로 성인(Saint Leonard)이여, 고생이 많았소.

 

비터스 성인(Saint Vitus)이여, 고생이 많았소. 

 

 

 

저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해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믿게 해주시고

 

음악을 듣고 기뻐할 여유를 갖게 해주소서!

 

저희는 순수함을 배웠나이다.

 

저희는 매미처럼 합창했나이다.

 

저희는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지만

 

야윈 고양이들은 저녁 미사를 시작할 때까지 식탁을 긁고 있나이다.

 

나는 내 눈으로 그대의 손을 잡으면서,

 

차분하고 용감한 나의 심장이 그대에게 소망을 말한다.

 

 

 

아이들에겐 꿀과 호두를 주고,

 

어부들에겐 어망(魚網)을 채우게 해주고,

 

정원에는 풍요로움을 주고,

 

달에게는 분화구를 주기를 바란다!”

 

 

 

땅거미가 내리면서 우리의 열기(熱氣)는 사라지고,

 

기뻐 날뛰던 인파(人波)가 물러감에 따라

 

태고의 정적(靜寂)이 찾아 왔다.

 

그리하여 도마뱀이 살금살금 기어 다니고,

 

선인장들이 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물고기들이 마음껏 헤엄치게 되고, 바람이 광란의 축제를 벌이게 되고,

 

그리고 산도 욕망을 채우게 되었는데,

 

그곳엔 거룩한 별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떨어져

 

산의 가슴을 쳐서 먼지로 흩날려버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성인들이여, 이제 마음을 굳게 먹고,

 

뭍을 향해 말하세요, ‘분화구는 쉴 줄 모른다고!’

 

로코 성인(Saint Roch)이여, 고생했소.

 

오 프란치스코 성인(Saint Francis)이여, 고생했소.

 

 

 

누구든 떠날 때는

 

한여름에 모아둔 조가비들이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떠나가야 한다.

 

사랑을 위하여 차린 식탁을 바다에다 뒤엎어버리고

 

잔에 남은 포도주를 바닷속에 부어버리고

 

빵을 고기떼들에게 주어야 한다.

 

피 한 방울 뿌려서 바닷물에 섞이게 하고

 

나이프를 파도 속 깊이 던져버리고

 

신발과 심장과 닻과 십자가도 물속에 가라앉히고

 

머리카락 휘날리며 떠나가야 한다!

 

그러면 그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지만

 

언제 돌아 올 것인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땅 밑에는 불이 있고

 

불은 순수하다. 

 

 

 

땅 밑에는 불이 있고

 

바위는 녹아 있다.

 

 

 

땅 밑에는 용암이 흐르고

 

우리에게로 흘러올 것이다. 

 

 

 

땅 밑에는 용암이 흐르고

 

우리의 뼈를 노랗게 만들 것이다.

 

 

 

엄청난 불이 몰려오고

 

용암이 땅 위로 넘쳐흐를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The Game is Over)>는 시를 쓴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땅거미가 떨어져 파장(罷場)이 된 섬의 백사장에 서서

많은 것들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게 살고 있는 많은 피서객들이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지만 배고픈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세태를 비웃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화(淨化)하지도 않고 영성체(領聖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외딴 섬의 백사장에 사형장들을 마련하는 수가 많았기에

 

시인은 이 백사장에 서서 섬을 화자(話者)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돛대로 전락하여 의미를 상실하고 사람들은 권력과 부()를 잡아 갑()만 되려고 하고

가난한 을()만 괴롭히고 있는 세상에서 가진 자는 베풀지는 않고 갑의 횡포만 부리고 있으므로

구원을 받지 못하여 영원히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어 많은 가르치심을 주시고 인간의 죄값을 치르고 돌아가신 것을

경건한 별 하나가 넓은 산에 떨어져 먼지만 일으켰다고 표현했듯이

십자가의 위력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 같으므로,

섬은 휴화산이지만 언젠가는 용암을 뿜어내어

천지개벽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섬은 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들이 아직도 고통을 더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병든 것도 하느님의 은혜일진대

 

그들이 아직도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림도 하느님의 뜻일진대

 

그들에게 아직도 잃을 것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장애물이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실패, 고통, 고난, 아픔, 질병, 오해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축복이요,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좌절하여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밤에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뜻하지 않은 고난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면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고통은 황금알을 낳는 귀중한 시간임을!

 

지금의 이 고통은 우리 안에 있는 각종 아름다운 씨앗들이 알알이 여물기 위해

 

필요한 보석같이 귀한 시간임을 깨닫고 섬처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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