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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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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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4-26 ㅣ No.111677

 

2017년 4월 26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

력을 쓰지는 않았다.

복음 요한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즘에는 게임이 참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 게임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게임 역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도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요.

제가 어렸을 때에만 해도

게임이라고 하면 친구들과

함께 직접 몸으로 하는

것밖에 없었지요.

혼자서 기계와 함께 하는

게임이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자오락실이

생겼습니다.

한 판을 하는데 50원이라는

비용이 들었지만,

전자오락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문제는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전자오락을

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오락을 너무나 하고 싶었던

저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나 했습니다.

어머니 동전 지갑에서

50원을 몰래 꺼낸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락을 하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오락 한 판을 하고 난 뒤에,

저는 어떠했을까요?

죄책감과 두려움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차마 어머니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성당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발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제 심정을 표현한다면

‘지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느낀 것은 천국과

지옥이 어떤 구체적이고

지리적인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삶 안에서

충분히 느끼고 체험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죄에 무기력하게

사로잡혀 있을 때에

지옥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밖에도 소외된 경험,

사랑받지 못한 경험,

수치심에 억눌렸던 경험

등에서 우리는 지옥에 갇힌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천국에 있는

경험을 할 때에도 있습니다.

사랑으로 관계의 회복을

경험했을 때,

자신의 선한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었을 때,

악을 멀리고 선을 행하면서

기쁨을 체험했을 때 등으로

인해 우리는 천국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외아들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하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천국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드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죄 안에 계속해서

갇혀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만

들어가는 곳이 아닌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의 모서리에

부딪혔을 때

결국 나를 지켜 주는 건

사소하다 여겼던

행복의 조각들입니다.

(무무)

우리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통받는 예수님상.

"시간이 있는 사람."

유럽의 탐험가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탐험가들에게 시계 없이 사는

원주민은 연구대상이었지요.

어떻게 시간을 알지 못하면서

살 수 있는가 라는 것이지요.

시간을 모르면 약속 시간을

맞출 수도 없을 테고,

그래서 이렇게 못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탐험가의

손목시계를 본 한 원주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에게는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오.”
시계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시간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쫓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치게 되는 것이지요.
저 역시 종종 휴대전화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휴대전화에

 구속될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별 일이 없으면 휴대전화를

보면서 이것저것 하는 모습들,

그러다보니 늘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여유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스스로 바쁘게 살지 말고,

나의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

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그러한 시간들이 분명히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그래도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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