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건강함보다 죄에서 자유로워지기 - 윤경재 요셉

스크랩 인쇄

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28 ㅣ No.111065

 

건강함보다 죄에서 자유로워지기

 

- 윤경재 요셉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5,1~16)

 

 

 

 

38년이란 숫자는 신명기 2,14절에서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열두 명을 보내 정찰하였습니다.(민수기 13) 그들은 정탐에서 돌아온 선발대가 보고하는 말만 듣고 막강한 가나안인과 아모리인들과 싸우면 죽을까봐 겁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황하며 세월을 소모였습니다. 이 기간은 주님의 도움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말씀을 믿지 못한 채 인간적 의심만으로 망설인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던 군사들의 한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는데 걸린 시간이 38년입니다. 의심의 뿌리를 완전히 뽑는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38년이란 결국 병자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저자가 굳이 38년이란 숫자를 거론한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인간성을 상징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한 곳에 정체되어 앞으로 뚫고나가지 못하는 환자의 심리를 이차적 이득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 가기 싫은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꾀병을 부리고, 공부에 게을리 하는 이유가 부모나 선생님에게 관심과 사랑을 더 받으려는 이차적 이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인간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는 자신이 두각을 낼 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쁜 짓을 하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떼를 쓴다든가 주위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자기의 약점을 일부러 꾸며 관심을 자신에게 쏠리게 합니다. 커서는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자기 사정을 이해해달라는 차원을 넘어서 너는 내 심정이 어쩐지 몰라라고 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칩니다. 자신의 불행을 이용해서 특별하다우월함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행을 이용해 상대를 지배하려 드는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서 변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동정과 작은 관심에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이런 심리를 불행 자랑이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는 이 병자의 소원을 그대로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끌어안고 벳자타 못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과연 건강해지고 싶으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병자의 무의식 저변에는 병을 낫고 싶다는 소망보다 이 상황을 즐기고 싶다는 불행 자랑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너 자신을 확실하게 알라는 지적입니다.

 

그럼에도 병자는 확실한 의지를 표명하지 않고 핑계를 댑니다.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남들이 자기보다 앞서 못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용기가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남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아들러는 용기의 심리학을 강조합니다. 그는 성격 개조도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싸울 용기가 없었기에 한 세대가 사라지는 38년을 기다려야 했고 벳자타 못가의 병자도 용기가 부족했기에 그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자리가 좋아서 떠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병자더러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하고 명령하십니다. 용기가 부족한 병자가 또 다른 핑계를 댈 여유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삶을 이것이든 저것이든 선택이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행복과 불행도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과거 ~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인과론적 해석을 초월하고 사람의 현재 행동 뒤에는 어떤 목적이 숨어있다는 목적론적 해석을 도입했습니다.

 

생각과 감정과 오감은 내가 일으키는 것이기는 하나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므로 겉 자아에만 영향을 미칩니다. ‘참나(나의 영)성령자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생각 감정 오감을 아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취급해버립니다.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집착할 것도 용기를 잃을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뒤틀린 육체를 가졌으니 한 발짝도 성장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병자의 태도는 그 자리가 어떤 이득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온 현상입니다. 자신의 병이 타인으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변명하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남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아들러는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는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불렀습니다.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는 말씀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여 수용하고 화해하라는 명령입니다. 자신의 두려움과 화해하라는 요청입니다.

 

자신과 화해할 때 하느님과의 관계가 재정립할 수 있습니다. 굳이 외형적 샘물에 몸을 담글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샘물이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러나 요한저자는 우리에게 건강이 최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다시는 하느님을 의심하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727 6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