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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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성령님!새로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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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6-17 ㅣ No.130439

 

오소서! 성령님!새로나게 하소서!

 우리가 이렇게

자주 바치는 짧은 기도지만,

이 짤막한 기도에 얼마나

큰 의미가 함축되어있는지

오늘 우리는 새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 대 축일을

 지내면서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큰 은총과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 안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은총의 시간이

되어야하겠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오셔야

 비로소 부활의 신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이전의 세상과

인간은 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누르고 부활하셨고,

주님의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렸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기원하시면서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사시는 동안 함께했던

모든 제자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으로 일치를 이루시기를

 바라셨기에 당신의 얼인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얼인

성령께서는

또한 쇄신과 화해

리고 평화를 위한

 선물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신앙과 사랑 안에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이렇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주시면서,

창세기 2장 7절의 창조적인

동작을 다시 보여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에 숨을 불어넣으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화답송에서도

  “주님께서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님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주님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고 노래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한 얼인 성령 안에

머문다는 것은 새롭게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그 격에 맞게

사랑과 품위를 지닌 인간으로

새롭게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던

나약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면서

숨을 불어넣으셨고,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과 악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히브리인들은 해마다

오순절에 율법 선포를

기념하는 축제를 지냈습니다.

이 축제는 그들이 누리는

자유가 이집트 탈출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고,

 하느님의 손길에 의한 것임을

대대로 기억하기 위한

계약의 축제였습니다.

 이렇게 파스카가 백성의

해방을 기념하는 것이라면,

오순절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해방을 완성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

우리가 지내는 이 축제 역시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기쁨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속된 것과 죄”에서

해방되고 성령 안에서

평화를 누리면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1독서에서는 성령 강림 사건으로

 신비로운 현상들을 보여줍니다.

오순절이 되어서 신자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새로운 오순절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더불어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제

당신을 믿는 이들 가슴 속에

스며들어서 내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성령 강림은 구원의

 보편성과 영원한 자유를

가장 효과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는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성은 교회의

다양성뿐 아니라 여러 민족과

문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보편성과 일치성을 함께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여러 기능과 작용을 합니다.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내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힘이십니다.

 그런데 간혹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따로 떼어 놓고

그릇된 신심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따로 구분 짓고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면서

신앙공동체를 분열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성령으로 생기를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쁨과 평화를 살려면

공동체가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개인의 고유성에 따라서

각자 다른 소명과

다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다양성은

서로 대립으로 이끌고

불화와 반목을

가져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양한 고유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치는

 획일화 된 모습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보존하는

다양한 존재 양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성령 안에서만 이룰 수 있는

신앙의 힘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신앙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주셨고

그 평화를 전하라고

우리를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

이 시간 현재 자신이 성령 안에 살면서

공동체의 일치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고 구자윤비오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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