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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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19 ㅣ No.112708

 

2017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코린 6,1-10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저는 자전거 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이렇게 자전거를 좋아하는

저를 향해 사람들은

저의 자전거 실력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제 자전거 실력은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종종 중심을 잡지 못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취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자전거 타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좋아한다고 하면 무조건

잘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잘 하면 더 좋겠지만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순간을 즐길 수만 있다면,

삶의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면

이것으로 족합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것을 굳이

잘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즐겨 봅니다.

사실 예전에는 제가 응원하는

팀이 이겨야만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지게 되면 괜히

짜증을 내고 화도 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운동 경기를 즐기면서

볼 수 없더군요.

 왜냐하면 제가 응원하는

팀은 이상하게도 항상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데,

이겼을 때에만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잘 하고

또 이겨야지만 의미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은

이러한 세상의 관점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즐기는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는 삶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쁠 수가 있습니다.

연애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바로 이 모습이

신앙 안에서의 즐기는

과 참 비슷하다 싶습니다.
연애할 때에는 같이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입니다.

 서툴고 능숙하지 않아도

마음이 즐거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달성되었을 때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그 순간이

 행복인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보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연애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과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내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또한 천 걸음을 가지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라고

말씀하시지요.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인

사랑으로 바라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고

또 하지 못할 것도

아닌 것입니다.
결국 악인과

맞서지 말라는 것은

그냥 무시하는 것으로

그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사랑으로 사는

사람만이 주님과 늘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우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미셸 퓌에슈)
가족모임 후의 저녁식사.
"종이로 만든 집"
(‘좋은생각’ 중에서)
1986년 도쿄, 전시회를
준비하던 건축가 반 시게루는
고민에 빠졌다.
주최측은 전시장을
나무로 꾸미길 원했지만
예산이 부족했다.
대안을 찾던 중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설계도를 그리는 데
사용하는 기름종이였다.
‘종이로 나무를 대신하면 어떨까?’
화재와 습기에 취약한 종이는
애초에 건축 소재로 최악이었다.
시게루는 종이의 장점을 살린
종이 관에 주목했다.
종이 관은 마분지가
휴지 심처럼 말린 것으로,
재활용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길이와 크기,
두께를 쉽게 조절할 수 있었다.
가벼워서 운송비가
적게 들 뿐 아니라 무너져도
사람이 다칠 위험이 적었다.
더구나 장기간 햇볕을 쬐면
내부 섬유질 구조가 변하면서
강도가 높아졌다.
약한 종이라도 두루마리
휴지처럼 여러 겹 말아
기둥을 만들면 같은 면적의
콘크리트 기둥이 받치는 무게의
80퍼센트를 견딜 수 있었다.
시게루의 종이 집은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피난민 거처가 됐다.
맥주 상자를
모래주머니로 채운 뒤
종이 관을 쌓아 올리자 단열,
내구성, 방수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2013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도
종이로 다시 세웠다.
‘종이는 약하다’라는
고정 관념을 깬 시게루는
2014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참 많은
고정 관념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때,
더욱 더 넓은 세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족모임을 마치고
다시 성지로 돌아오는 길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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