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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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싶습니까? -평생 배우십시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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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3-20 ㅣ No.110857



2017.3.20. 월요일 한국교회의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사무하7,4-5ㄴ.12-14ㄱ.16 로마4,13.16-18.22 마태1,16.18-21.24ㄱ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성인이 되고 싶습니까?

-평생 연민, 기도, 순종을 배우십시오-



요셉과 같은 성인이 되고 싶습니까? 

배우십시오. 

공부하십시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고 우리 모두 필생의 평생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 모두가 성인이 되는 도량이요 배움터입니다. 

평생학인이 되어 성인되는 공부에 힘쓰면 됩니다. 


성인은 관상하라 기념하라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성인이 되라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마땅한 평생 공부가 성인이 되는 공부입니다. 

사실 모두가 성인이 되라 불림 받은 존재들입니다. 


요셉 성인 역시 평생 하느님을 찾는 마음으로 공부하며 사셨을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성인들을 롤모델로 삼아 배웠을 것입니다. 

오늘 1독서 사무엘 하권을 읽으면서 다윗의 모습에서 요셉이 연상되었고, 

제2독서 로마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요셉이 연상되었습니다. 


다음 나탄을 통한 다윗에 주는 말씀은 흡사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 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사무엘하7,12-14ㄱ.16).


물론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해당되는 예언이지만 깊이 멀리 내다 보면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바로 다윗을 닮은 섭리의 인물이 요셉임을 깨닫습니다. 

물론 요셉이 이스라엘 역사의 위인 다윗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다윗을 믿음의 롤모델로 삼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가 고백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을 것이다.’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로마4,17ㄴ-18.22).


구약의 아브라함이라면 신약의 요셉입니다. 

아브라함의 풍모를 그대로 닮은 믿음의 사람, 의인 요셉입니다. 

역시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아브라함을 롤모델로 삼아 살았을 요셉일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요셉의 믿음의 모습이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의로운 사람 성 요셉의 인품을 세 측면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첫째, 요셉은 '연민의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연민이요 측은지심입니다. 

사람됨됨이의 일차적 기준도 이런 측은지심의 연민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배려와 존중, 측은지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리아를 살리는 것이, 마리아를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요셉의 우선적 관심사였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1,19).


요셉의 마음이 하늘처럼, 바다처럼 한없이 넓고 깊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연민의 사람입니다. 

하여 마태복음 사가는 주저함없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 명명합니다. 


원불교 지도자인 정산 송규 종법사는 제자들에게 다음처럼 당부했다 합니다. 

“화평하고 고운 얼굴을 갖고 싶거든 아무리 어려운 역경을 당하더라도 화를 내지 말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마라.”


정산 종법사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지극한 평범이었습니다. 

꽃을 가져온 신도들에게는 

“세상 어디나 도량입니다. 핀 곳에 그대로 있다면 더 많은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지요.”라고 말했고, 

새나 물고기를 잡아 가져오면 “새의 집은 숲이요, 물고기가 사는 곳은 물입니다.” 말했다 합니다. 


로마의 키케로는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라 말했다는데 

아마 연민의 사람, 성 요셉의 얼굴도 이렇게 화평하고 고왔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둘째, 요셉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침묵은 기도입니다. 

복음 분위기에서 감지되는 요셉의 침묵이요 기도입니다. 

바로 이런 침묵과 기도가 요셉을 연민의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봅니다. 


기도는 소통입니다. 

하느님과 대화의 소통입니다. 

신뢰와 사랑의 소통입니다. 


마리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개입하십니다. 


물론 요셉의 밤샘기도가 전제됩니다. 

하느님과 요셉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깊은 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당신 속내를 다 털어 놓으시며 요셉의 자긍심을 세우신후 그를 격려하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1.20-21).


말그대로 요셉의 침묵의 간절한 밤샘 기도에 대한 주님의 통괘한 응답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너무나 투명하고 분명하여 요셉의 두려움은 완전히 걷혔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기도합니다.


셋째,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은 사랑입니다. 

순종은 믿음입니다. 

순종은 겸손입니다. 

순종은 아름다움입니다. 


영성의 잣대는 순종입니다. 

성인의 일차적 특징은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가는 것도 순종의 길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순종을 배워가는 순종의 학교요 우리 삶의 여정은 순종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1,24ㄱ).


셩 요셉의 지체없는 순종입니다. 

하느님은 얼마나 요셉이 고맙고 사랑스러웠겠는지요. 

마리아와 쌍벽을 이루는 요셉의 순종의 믿음입니다. 

참 천생연분의 부부입니다. 

예수님 역시 평생 요셉, 마리아 부모님의 순종의 믿음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 요셉 수도원의 배경인 불암산같은, 하늘같은 배경의 성 요셉입니다. 

연민의 사람,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한마디로 하느님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 요셉을 닮은 연민의 사람,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주 예전에 성 요셉을 묵상하며 써놓은 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커져서/텅빈 공空이 되고 

 작아져/흔적없는 무無가 되어 살 수는 없을까?

 물러나/산山 배경이 되고

 내려와/땅 마당이 되어 살 수는 없을까?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무아無我의 삶/진아眞我의 삶이겠다.”(1999.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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