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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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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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3-18 ㅣ No.119075

 

"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 계신다!..."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 여기 계신다!]

(로날드 로울러 신부)

가톨릭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갈 때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무릎을 꿇거나 깊이 절을 한다.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항상 바치던 다음과 같은 경배의

기도문을 바치기도 한다.

"이곳과 온 세계 모든 교회 안에

계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당신의 돌보심과 염려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시고

(마태 18,20)

당신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세례를 주고 우리 죄를 용서하실 때

당신의 관대한 권능과 은총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현존]

그러나 성체성사 안에서는

더욱 특별하게 현존하신다.

우리가 영성체 하실 때나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께

말씀 드릴 때 그분은 지식이나

자비와 능력으로써 만이 아니라

친히 전적으로 거기 현존하신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있는 곳은

어디나 주님의 실재성은 충만하여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신적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에 존재한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실 수 있기에 이 세상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이 함께 있다.

신자들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디에서나 계시는 주님이시지만

성체 안에 전적으로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다.

여기 현존하시는 분이 바로

내 형제가 되어 주신 주님이시고

당신 존재의 충만성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지상에서는

나를 위해 살으셨고,

나를 위해서 죽으셨으며,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내가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자신의 모든 것,

모든 희망과 염려를 맡길 수

있도록 현존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 영혼과

신성 안에 현존하시며

성체와 성혈 안에 전적으로

현존하신다.

당신의 전적인 존재가 이 거룩한

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이 성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하게 된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십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여기 나와

함께 계시나이다.

당신은 전적으로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알도록,

또한 내가 나의 모든 일생과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고는

당신 안에 완전히 머물 수

있도록 지금 여기 계시나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속되어 온

가톨릭 교회의 믿음이다.

최후만찬시 그리스도 친히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들어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사제들이 빵과 포도주를 들어

말하는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으뜸 사제로서

우리 구세주로서

우리 가운데 전적으로

현존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친구처럼

우리에게 생명과 힘을 주는

생명의 빵으로서 거기에

현존하신다.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몸이다." 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들어 말씀하셨다.

순수한 빵이 주님의

"이는"이라고 하신 말씀과

무한한 돌보심의 능력으로

빵은 지금 주님의

살아있는 몸인 것이다.

그 빵은 이제 그분의 모든 것,

즉 그분의 신성과 주권과

그분이 되시는 모든 것,

생명을 주는 영혼으로서

살아있는 몸이며 그분은 우리와

함께 여기 전적으로 현존하신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거룩한 도시에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교회의

항구한 신앙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본질을

신앙으로 가르침 받은

우리는 빵의 형상이고

그 맛은 빵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몸이라는 신앙과,

포도주의 형상이 즉 그 맛과 빛깔,

향기는 포도주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신앙에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빵은 우리 영혼의

상태를 들어 올리는

영적인 음식으로

"이 빵을 받아 먹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튼튼히 하여야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은

교회가 항상 이것을 가르치고

믿었음을 잘 알고 알았다.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당신의 귀하신 몸으로써

그리고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신성과

인성의 실재성으로써

우리에게 전적으로

현존하시게 되었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교회는 미사 때 일어나는

이 놀라운 변화를 위하여

사제가 그리스도께 하신

이 말씀을 사용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킨다.

이를 교회는 "거룩한 변화" 라 한다.

"이는 내 몸이다." 이로써

이 빵은 바로 예수님이 들고

축성하시던 빵이 되며 이 빵은

바로 예수 자신이 되도록

만든 실재성이다.

빵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축성 기도문이 말해질 때

그것은 이제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우리 구세주가 되시고

우리의 주님이신 그분의 전 실재,

즉 살아있는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실체 혹은

빵의 실재성은 더 이상

거기 없고 그 대신 거기에는

현존하는 주님의

실체가 있는 것이다.

보통의 빵이었던 그것은

주님이 선언한 대로 바로

살아있는 주님의 몸인 것이며

주님 자체인 것이다.

신앙만이 그것을 알고

기꺼워할 수 있다.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들은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

의 숭고한 말씀을 좋아한다.

그것은 가톨릭 교리에 우리의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말씀들이다.

"엎디어 절하나이다.

어 계신 천주성이여,

두 가지 허울 안에 분

명 숨어 계시오니,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오이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길 없고 다만 들음만으로

믿음 든든하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진리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 없나이다."

이 말씀들은 우리 가톨릭

신앙과 생활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힘이요 기쁨인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성체를 경배하고 흠숭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예수님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나큰 신앙으로만,

은총 중에 성체를 영한다.

우리가 영하는 빵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오

구세주의 본체이며

실체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리 안에서

예수의 진정한 현존에 관하여

신앙이 말해 주는 모든 것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말씀들을 주의깊게

읽을 시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거기서 읽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 마음의 신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새롭게 읽을 때 우리의

온 삶은 구세주의 은혜로운

현존에 따라 새로운 기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Soul'지에서

마리아 77호 중에서 부분발췌)

[사순절을 잘 지내고 계시나요?]

(윤병길·세례자 요한 신부님)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그분을 따름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일상생활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 파묻혀서 주님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살다가 내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데

왜 이런저런 일을 시키려 하느냐?”

그냥 지내던 대로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면 뭐가 좀 달라지느냐?”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을

내가 노력한다고 변화될

턱이 있느냐?” 하십니다.

절망에 빠진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서 신앙생활로 이끈다든가

봉사를 한다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나의 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나의 업무로

생각하고 그저 때워야 하는

책임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안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합니까?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신앙생활을 합니까?

여러분이 행하는 봉사와 활동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업적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와 업적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정성껏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과 함께 활동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뛰어들어서

함께할 때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 동안 주님을

자주 모시십시오.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자주 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내가 하나라는

느낌을 갖고 생활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은총이 충만할 때일수록

유혹도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떠나지

않도록 꼭 붙드십시오.

이 사순절, 우리의 모든 일이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와 친밀히 사는 법]

(준주성범 28)

1. 예수께서 가까이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좋고 예수께서

안 계시면 모든 것이 다 어려워진다.

예수께서 내 안에서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별 위안이 없고,

예수께서 한 말씀만 해주시면

우리는 큰 위안을 느낀다.

마르타가 스승이 오셔서

너를 찾는다 하니,

마리아가 울고 있다가 곧 일어나

그를 마중나가지 아니했는가.

네가 눈물 흘리는 것을

막아 즐겁게 해주시려고

예수께서 너를 찾아오시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다.

예수께서 안 계시면

네 마음은 무미건조해진다.

예수 이외의 것을 찾음은

그 얼마나 어리석고

허황된 일이냐. 온 세상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일 것이다.

2. 예수가 아니면 이 세상이

네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예수가 없으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되고 예수가 계시면

행복한 낙원이 된다.

예수가 너와 같이 계시면

어떤 원수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예수를 찾는 사람은 귀한

보배를 얻었고 그보다

더 값진 것은 또 없느니라.

예수를 잃으면 그 손실이

막대하니 온 세상을 잃은

이상의 손실이다.

예수 없이 사는 사람은

극히 가련하고,

예수와 같이 사는

사람은 부유하다.

[오늘의 성경]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탈출 32,32)

-모세의 기도-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1-13)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사무 1,11)

-한나의 기도-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루카 18,7-8)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http://마리아.한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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