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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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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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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8-13 ㅣ No.113850

 

2017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일

제1독서 1열왕 19,9ㄱ.11-13ㄱ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제2독서 로마 9,1-5

형제 여러분,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복음 마태 14,22-33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저는 2,000년에 운전면허를

획득한 후 거의 20년 가까이

운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운전 실력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운전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입니다.

주차하기 힘든 곳에서도

손쉽게 주차를 하기 때문에

이제는 베테랑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제 동창신부 차를 빌려 타고

연습을 했는데 앞으로 도저히

운전을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인천에서 김포까지 가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고,

도중에 자동차 시동을

자그마치 15번 이상

꺼뜨렸습니다.

진땀이 계속 났고 시속

60Km로만 달려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러한 제가 답답했는지

뒤 따라 오는 차들은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면서

제발 빨리 좀 가라고 합니다.
이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운전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이 운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을 살고 있는

제가 그때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스트레스도 없고,

운전을 통해서 어떤

어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운전을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

련들도 이렇지 않을까요?

힘들다고 피한다면,

또 불평불만만으로는

고통과 시련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조만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호수에서 파도에 시달리던

제자들을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호수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지요.

오랫동안 함께 했던

예수님이기에 어떠한

불가능도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바로 파도에

시달리는 고통에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엘리야가 주님을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 지진, 불 속에서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주님을 만났던 곳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바로 일상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 아닌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고통과 시련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예수님의 용기를 내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주님께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용기를 낼 수 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어떤 고통과

시련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셨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고통과 시련에

 마주 할 수 있는 용기를

 늘 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이는 곧 주님과 함께 라면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주님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주님과 늘 함께

할 수 있도록 늘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이 외쳤던

고백을 우리도

자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않은

 마음으로는 사람을 모른다.

(쇼펜하우어)

초보운전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곧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을 하십시오."

성지에는 초를

봉헌하는 곳이 있습니다.

직접 갑곶성지까지 와서

봉헌하기 힘든 분들을 위해

 저와 영성센터장 신부가 함께

오전 9시 전에

초를 밝히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즘 지향자에 특별히

 입시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험생 ***’라는

지향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달력을 보니 2018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수학능력시험에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들이 더욱 더

몰두한다고 합니다.

학생들보다도 입시 제도를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시험은 자녀가 보지만,

원서도 대신 써 주고

들어갈 대학도 찾아줍니다.

학생이 해야 할 일을

어머니가 대신 해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고마워할까요?
분명히 아이가 더욱 더 시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모가

대신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고마워하지

않으니까 이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일을

 한 것뿐입니다.

즉,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에

몰두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남이냐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 역시 남입니다.

나를 위한 일이 전혀 없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나를 위해 몰두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갑곶성지의 초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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