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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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에서 생긴 일 - 이열치열, 이스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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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20-08-12 ㅣ No.97638

참 더웠다.

어제 낮 최고 기온이 화씨 88도.

덥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덥다고 엄살을 부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 숫자에 습도를 더해서 계산을 하면

올여름 최고로 덥게 느껴진 날씨였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세탁소 문을 열었을 때의 땀에

일을 하면서 생긴 땀까지 더해진 티셔츠는

눅눅한 기분에서 하루 종일 자유롭지 못하게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축축한 더위 때문에 불쾌한 느낌이 들었는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생겼다.

내가 해결할 재주가 없지만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손님 한 명이 셔츠를 들고 왔다.

 

그는 손님이긴 하지만 손님 그 이상이다.

말하자면 그 집의 숟가락이며

그와 그의 가족사 정도는 대충 꿰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평소엔는 깨끗하기 그지없는 그의 셔츠가

어제는 사람으로 치면 중증 외상을 입고 있었다.

나의 표정이 일그러졌음은 불문가지.

 

날은 덥고,

다른 일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데

그의 셔츠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탁소 경력이 30 년이 넘다 보니

옷을 보면 세탁 시간 견적을 뽑는데 그 속도가 빛에는 못 미쳐도

거의 음속에 가까운 경지에 다달았다.

 

한 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문지르고 비비고 두들기고 빨아야

겨우 제 모양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제대로 열 받았다.

스트레스도 하나 더 늘었다.

 

그 셔츠는 정말 나에게는 쓴 잔이었다.

거둘 수만 있다면 내게서 거두어져야 할 독이 든 성배인 것이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풍파가 좀 잔잔해졌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문제의 그 셔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증 외상 환자를 수술하듯,

천천히 그 셔츠에 묻은 얼굴들을 비비고 문지르며 두들기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옷을 입고 들어간 것처럼

온 몸과 옷이 땀이 흘렀지만

한 시간 가량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깔끔하게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나의 땀과 맞바꾼 셔츠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옷과 씨름하는 사이 덥다는 생각도

온갖 시름과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뜨거움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뜻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나의 경우에는 열정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게 닥친 스트레스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림으로써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는 뜻으로 '이스치스'라고 해서

이런 경우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땀을 흘린 덕에

셔츠는 눈 부실 정도로 빛이 났고

덕분에 내 마음에도 빛이 났다.

그것은 열과 성을 다한 나에게

기대하지 않은 보상 같은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깨끗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어제는 더위와 스트레스에 하도 데어서

오늘은 더워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면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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