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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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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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2-22 ㅣ No.110261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 윤경재 요셉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6,16~19)

 

 

 

도넛 만드는 사람과 그물 짜는 사람 그리고 시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줄 아세요? 어떤 수필집에서 읽은 질문입니다. 그 작가가 내놓은 답은 공기가 지나다니는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더군요. 그들을 일명 공기를 훔치는 사람들이라고 멋들어진 표현까지 해서 제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베드로도 그 성품에 인간적 약점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만 살펴보아도 그 인간됨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자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부탁하고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 두려워하니 그만 물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구하셨습니다.

 

예수님 첫 수난 예고 때 그는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나섰다가 예수께 사탄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다볼산 변모 사건에서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고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카파르나움에서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 묻지도 않고 내십니다.”라고 대답했다가 예수님께 핀잔만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여 자신의 도량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라고 거래하듯 묻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수난 때 제자들이 도망칠 것이라 예고하시자 그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습니다. 그러고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수난하시는 장면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제자는 요한과 베드로라고 복음서는 기술합니다.

 

복음서에서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도 지녔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고 후회하며 뜨거운 눈물도 흘릴 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알았기 때문에 남의 웬만한 실수쯤은 너끈히 수용할 아량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대로 일곱 번쯤은 용서할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본래 약합니다. 회개한 것 같아도 아주 잠시 동안만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다가 금세 그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혼과 육의 유혹에 넘어가 본질을 잊는 실수를 자주 범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인정하고 돌아올 줄 아는 게 또 인간이며 그런 행동을 반본 환원이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빨리 반본 환원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성인과 속인의 차이입니다. 속인들은 자신이 본질을 놓쳤다는 걸 알면서도 본래로 되돌아가는 걸 주저합니다. 오히려 그런 걸 기회로 자포자기 하는 쪽으로, 더 나쁜 쪽으로 움직입니다. 성인들은 자기의 죄성을 금세 인정하고 본성으로 되돌아오려고 힘씁니다. 죄의 고백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속인들은 오히려 죄를 감추려 듭니다. 죄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고백을 부끄러워합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강생하신 이유가 인간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죄성을 고백하고 반본 환원하라는 것이며, 그런 모습을 통해 이웃 사람들의 영을 각성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나 같은 중죄인이 회개하여 주님께 용서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 인류 공동체가 회개하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행복하다는 단어는 마태오복음서 53~10절 진복팔단에서 나오는 ‘makarioi’의 단수형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으로써 진복팔단의 상태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의 행복이며, 가난한 자는 매순간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기로 결심했을 때 나오는 고백이기에 가난을 실천하는 첫 걸음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베드로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온 천하에 드러내면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죄지은 것보다 자기 죄를 감추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서로 감싸주고 어루만져 주는 공동체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교회가 공기를 훔치는 사람들모임이 되었으면 온 세상이 더욱 시원하게 변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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