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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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은혜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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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3-19 ㅣ No.110841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은혜로운 만남"

해외 출장 다녀오는 길에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신 영화 두 편을 보았습니다.

‘덕혜옹주’와 ‘밀정.’ 두 편

다 개화기 한국 근대사의

슬픈 과거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더군요.

꽤나 서글펐던 우리 민족의

지난 세월을 다시 복기하는

듯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두 영화는 모두 나라

잃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아버지 고종황제마저

억울하게 여의고, 강

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덕혜옹주의 신산한 삶과 죽음,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청춘을

 불태우던 앳된 얼굴의

독립투사들의 고뇌를

실감나게 묘사했습니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장면 장면들이 결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우리 민족의 수모와 굴욕,

서러움과

픔의 시나리오여서

더욱 그랬습니다.

더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참 그랬습니다.

 따지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우리 인생,

어찌 그리도 우여곡절을

거듭하는지요?

우리 네 삶이란 것,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멋진 영화

배경처럼, 혹은 고급스런

인테리어 잡지 화보처럼

그렇게 아름답다거나

화려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보다는 삶이란 것,

 얼마나 팍팍한지 모릅니다.

때로 얼마나 더 굴욕을

견뎌내야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네 인생, 결코 호화롭지도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않습니다.

따스하고 환한 햇볕이

드리운다거나 멋진 무지개가

뜨는 순간은 한 순간입니다.

대부분의 순간은 비참과

슬픔을 그저 묵묵히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대낮에 물을 길으러

몰래 마을 공동 우물가를 찾은

사마리아 여인의 삶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때는 햇빛이 가장 강렬한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대체로 근동 지방에서는

정오 무렵,

너무나 뜨겁고 건조하기에

가급적 외출을 삼갑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하필

정오 무렵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정오 무렵 우물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인은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보통 이스라엘 아낙네들은

한풀 더위가 꺾인 저녁 무렵

우물가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 시간 거기서 여성 특유의

잡담과 뒷담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은 그들의 시선,

들의 입방아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사실 다섯 번이나

남편을 교체했던 사연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다섯 번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내면의 상처가

깊었던 것입니다.

남자로부터 받은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컸던 것입니다

.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녀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여인은 혹시나

하고 이 남자 저 남자를

찾아 헤매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롭게도 사마리아

여인은 기적처럼 예수님과

일대일로 만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 가련한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여인의 채워지지 않는

 죽음과도 같은 갈증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비하신 예수님과 ‘참 만남’,

 ‘일생일대의 은혜로운 만남’을

통해 여인은 서서히 자신이 처한

비참한 실상을 파악해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채울 수 없는

 갈망을 채워주실 분이 바로

자기 앞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이야말로

제 평생의 갈증을

채워주실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인생 역전은

그냥 주어진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마음은

새 삶을 향한 절박함,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자비와 능력만을

 신뢰하며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외친 것입니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 15절)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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