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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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는 삶의 여유도 값진 은총 / 연중 제16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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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7-22 ㅣ No.12213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와 각자가 한 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따로 외딴곳에 가서 좀 쉬어라.”하셨다. 오가는 이들이 너무 많아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에.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로 외딴곳으로 떠나갔다’(마르 6,30-32 참조). 선교 후 제자들은 저마다 보고한다. 각자 기적 체험을 한 이야기였을 게다. 병자가 낫고, 마귀 들린 이가 멀쩡해지며, 절망에 잠긴 이가 나름 을 갖게 되었다나.

 

보고를 듣고 나신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에서 좀 쉬잔다. 제자들은 의아했을 게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기적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은데 말이다. 그들은 피곤하지 않았으리라. 휴식은 낭비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쉰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다. 남들은 다들 일하는데 어디 쉬어서야! 쉽게 이런 생각에 젖기에. 그러니 바쁠 수밖에.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는 생산 능률의 효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다 보면 복음의 가치들도 물질적 척도로 평가되곤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속성을 잘 아셨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은 보상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어쩜 그들은 가난한 이가 부를 얻고, 병든 이가 치유되고, 불의한 재판의 결과가 공정하게 바뀌기를 기대하며, 복음이 세상 속에서 내는 효과를 직접 느끼고 싶어 한다는 점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가엾고 측은하게 보일까? 경제적인 이유는 물론, 모든 것을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따라서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시련을 겪을 때, 예수님을 찾자. 올바르고 착하게 살려 하다 지치고, 정의롭고 좋은 일 하다 실망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그분 찾아 나서자.

 

일만 하다 보면 책임감 때문에 쉴 시간 가지지 못하는 때가 참 많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영혼엔 소홀해지기도. 과중한 업무는 불평불만으로 이어지고 결국 내적인 공허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때가 주님 안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일 게다. 쉬는 것과 노는 건 다르다.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보고 기도하는 것, 때때로 피정 가 일상의 일 접고 주님 안에 머무는 건 쉼이다. 이렇게 영적인 힘을 얻어야만 일상도 기쁠 수밖에.

 

사실 세속적인 기대감이 커질수록 복음이 지닌 내면의 가치는 사라질 수도.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맡기신 복음 선포는 능률과 효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평화와 자유의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안에 을 통해 그것을 깨닫도록 이르신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이렇게 그 바쁜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좀 가잔다. 돌아온 제자들에게 휴식을 주고자 하셨다. 평상시 여유를 되찾으라는 거다. 이런 삶의 여유는 은총이다. 그분께서 주시니까 진정한 여유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 설정도 못 한 채 바쁘게만 산다면, 자신도 좀 돌아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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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곳,선교,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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