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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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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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jhyukj27] 쪽지 캡슐

2020-09-21 ㅣ No.220985

은남자가 트럭에 심하게 받혀 몸이 바닥에 갈렸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던 중에 난 사고라고 했다. 남자의 골반과 하지는 부서져 나갔다.

터져 나온 내장은 갈가리 찢겨 너덜거리는 피부 조각들 사이로 흩어져 나왔다.

피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개방성 골반골 및 대퇴골 골절' 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출혈은 끝없고 환자는 몇 분도 채 버티지 못한다. 

이미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기관삽관을 하고 중심정맥간만 확보해 2번 수술방으로 올렸다.

마취과 이숙영 교수가 환자를 보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환자를 전신마취 시키며 물었다.

 

- 살겠어요? 젊은 친구가 너무 아깝다.....

 

나는 이숙영이 환자의 바이탈을 붙잡고 있는 사이에 9번 수술방으로 가서 정형외과 조재호 교수를 찾았다.

수술을 마무리하는 중인 그의 등 뒤로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국종입니다.

 

조재호는 환자의 환부에서 시선을 떼지않고 답했다.

 

-급한 환자가 있나요?

 

우리가 서로 급하게 찾는 경우 그 이유는 대부분 하나였으므로 조재호는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개방성 골반골 골절(open pelvic bone fracture), 복합개책골절(open book type fracture)인것 같고 

대퇴골 쪽도 너무 안 좋아요.

 

조재호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고 계세요 제가 곧 넘어갈게요.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조재호가 온다면 희망이 있다. 2번 수술방으로 돌아왔다. 

이숙영이 간간히 버티며 마취 장비 세팅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환자의 혈압이 너무 낮았다.

시시각각 환자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베타딘.

 

나는 환자의 온몸에 베타딘을 뿌리면서 곧장 수술에 들어갔다.

하지로 내려가는 총장골 동맥, 정맥부터 좌측 하지 쪽 혈관, 근육과 골격 구조가 대부분 소실됐다.

대장에 심하게 터져나가 분변이 흘러내려, 갈라진 상처 부위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피는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왔다. 환자의 열린 복부는 이미 시뻘건 피 구덩이었다.

우리는 고인 핏물 속에서 허우적 대며 출혈을 막아내려 애썼으나, 혈관을 다 결찰(ligation, 잡아매는 것)하면

내부 장기와 하지가 통째로 썩어들어 갈 터였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숙영이 필사적으로 RIS(Rapid Infusion System, 급속가온혈액주입기)를 돌리면서 

환자의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을때, 수술방 문이 열리며 조재호가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수술대에 다가와 붙었고, 자리를 잡자마자 그대로 수술에 몰입했다. 방금 수술을 끝내고 왔는데도

다시 온 힘을 쏟아부었다. 나는 이숙영, 조재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환자의 상태는 가망 없어 보였으나, 조재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터져나간 장에서 쏟아지는 분변이 그가 수술 중인 구역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하트만 수술(Hartmann's Operation) 외에는 방도가 없었으므로, 터져버린 환자의 S자 결장을 그대로 이용해

인공항문을 만들어 좌하복벽으로 뽑아냈다. 이라크 전선에 참전했던 미군 군의관들은 이 수술에 대해 말하곤 했다.

전장에서 짦은 방탄복을 착용 할 때 적군의 총알이 골반에서 하복부까지 뚫고 들어오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그로 인해 하부결장(대장)이 파열되면 어쩔 수 없이 이 수술을 시행해야만 한다.

이 수술은 환자를 살려낼 수는 있지만, 뱃가죽으로 변이 흘러나오는 현실은 환자에게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하트만 수술을 하고 난 후 의식을 되찾은 환자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늘 힘겨웠다.

가능하면 이 수술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는 너무 젊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수술을 받는다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조차 알 수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내가 위쪽에서 환자의 내장을 붙들고 해매는 동안 조재호는 떨어져 나간 혈관과 신경, 근육들과 쪼개져 나간

뼛조각들을 필사적으로 이어 붙였다. 환자의 목숨을 움켜잡고 있는 이숙영과, 땀범벅으로 수술 중인 조재호를 보며,

나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조재호는 1차수술에서 으스러진 다리를 수습해 놓았다. 2차수술은 1차수술이 끝나고 72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작됐다. 내가 괴사 조직과 추가 오염원을 제거하고 복벽을 봉합했고, 

조재호는 환자의 다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버텼다. 

그러나 수술 경과가 좋지 못했다. 인조혈관으로 재건한 원위(遠位)부 혈관으로 피가 돌지 않아 

다리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한 전신합병증으로 장기 기능들이 마비되기 사작했다.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대형 혈관마다 박힌 중심정맥관을 통해 약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었다.

환자의 피 농도보다 환자 몸으로 들어가고 있는 약물의 농도가 더 진할 터였다. 2차 수술후 10여일이 지났을 때

환자의 왼쪽 다리를 결국은 잘라내야만 했다. 조재호는 수술방 앞에서 탄식하듯 말했다.

 

-아...... 저는요, 정형외과 의사로서 말이죠. 정말, 정말 이 수술이 가장 하기 싫어요.

 

조재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조재호를 또다시 곤혹스럽게 만든 것만 같았다. 

늘 그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조재호의 눈빛은 침통했으나 수술방으로 진입하는 동시에 다시 예리하게 빛났다.

그는 환자의 좌측 다리를 잘라내면서도 복합개책 골절로 완전히 쪼개어 갈라진 골반골의 안정성을 확보했고,

우측 다리를 온전히 보존했다. 수술은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전신합병증은 진행을 멈췄다. 환자는 살아났다. 

 

 그는 예비역 해병이자 취업 준비생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한 쪽다리를 잃었고 인공항문까지 달았다. 20대 청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 괴로워 하지 않았다. 좌절하는 대신 살아있음으로 가질 수 있는 나머지 가능성에 집중했다. 

그 긍정이 놀라웠다. 그런 삶의 태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2년후 그 환자는 인공항문복원 수술을 받았다. 환자 몸에서 대변 주머니가 사라졌다. 

환자는 더 쾌할해졌고 보조기를 착용하고 잘 움직였다. 그는 외래로 왔을 때 곧 취직을 할 거라고 내게 말했다. 

그때 그 환자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숙영과 조재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얼마 뒤 그 환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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