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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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사제에게 - 멸망의 도구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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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21-01-28 ㅣ No.144082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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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멸망의 도구


고해성사가 집전되는 방식이 내 자비와 사랑의 계획에는 도무지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악마의 사악한 계획에 화답하는 격이다.

어둠의 지배자인 악마는 내 구속 사업의 귀한 열매인 고해성사를 흐리게 하면서, 부활과 생명의 수단인 이 성사를 멸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도구로 변질시키려고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는 영원한 '사제'이다. 영원한 '심판자'이고, 영원한 '사랑'이며, 영원한 '정의'이고, 영원한 '자비'이다. 심판자인 내게 각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맡겨져 있다. 이 사심판은 인성에 대해서건 천사의 본성에 대해서건 공심판과 더불어 최종 결말이 날 것이며, 상소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심판이다.

무한히 공정한 심판자인 나는 각 사람을 정의에 따라 심판한다. 심판자가 된다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들의 잘못을 공정하게 용서하거나 단죄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모든 사제는 곧고 올바르고 공평한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 이 권한은 그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자인 내게서 온다. 그런데 사제들 가운데는 이 권한이 마치 그들에게서 오기나 한 것처럼 경솔하고 무분별하게 행사하는 이들이 많다. 이 초자연적인 권한이 그렇게 행사되는 것을 보면, 영적인 감수성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런 사제들은 고해자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갖은 변명을 다 찾아내도록 도와 주면서 하느님의 자비가 크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모(冒)고해


하느님의 자비는 크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이지만, 그렇게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악용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아들아, 이는 중요한 일이고, 그래서 다시 말한다 : 신적 정의를 집행하는 자들아, 마귀의 공범이 되지 말아라! 구원의 도구들아, 멸망의 도구가 되지 말아라!

인간이 하느님을 조롱하고서도 책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내가 이 구원의 수단을 제정하면서 한 말은 아주 분명한 말이다. 모호한 데라고는 조금도 없다. 즉 죄를 용서하거나 그대로 두거나 둘 중 하나이다.


진실한 통회가 없는 고해는 유효할 수 없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는 진지하고 효과적인 정개(定改)가 없으면 진실한 통회가 있을 수 없다.

많은 고해가 무효이다. 이중적인 모(冒)고해도 많다. 고해에 필수적인 마음가짐 없는 고해자 및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죄를 용서하는 사제는 이 성사를 모독하고 따라서 모고해죄를 범하게 된다. 이 놀라운 구원의 성사를 타락시켜 멸망의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사제는 사탄의 해로운 계획에 가담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제는 하느님과 영혼들의 선익을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찾는 자이다. 하느님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 역주)."라고 말한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판단, 곧 자기 자신의 양심이나 고해자나 하물며 나와도 타협하지 않는 진지하고 치우침 없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것도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


나는 현대 사목의 이 주요한 점을 들어 사제들의 영혼에 더 깊이 박아 주기 위해서 어떤 말들을 기꺼이 되풀이 한다. 사제들이 아무런 구별도 없이 모든 이의 죄를 용서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많은 사제들이 그토록 쉽게 용서하는 것은 이제는 아무것도 죄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순결도 더 이상 덕행이 아니다. 책임감 있는 부성(父性)은 제대로 이해만 되면 훌륭한 것이지만, 그것이 부부 관계 속에 일어나는 모든 방종까지 덮어 주게 되었으니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교양을 쌓게 한다는 구실로, 음란의 싹과 철학적 신학적 오류의 싹이 난무하는 더없이 반(反)순응주의적인 서적을 읽는 것도 허용되고 있다.


거의 모든 일이 부정행위와 도둑질을 토대로 하고 있는 오늘날, 정의는 부정하게 취득한 이득을 되돌려 주겠다는 성실하고 단호한 결심을 고해신부가 고해자로부터 확실히 받아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엄격한 의무에 대해 고해자에게 주의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흔한 것이다.

이는 고해신부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즉 자기가 시대에 뛰떨어지지 않은 현대인임을 고해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눈감아 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악을 근절하기 위해 싸워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굴욕과 학대를 당하지 않으려고, 바야흐로 어둡고 무서운 때가 닥치려고 하는 이 시기에, 그 중요한 일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굴욕과 학대를 피할 수는 없을텐데 말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와 함께 내 어머니와 성 요셉도 네게 축복을 보낸다.

(1975년 10월 28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하느님의 엄중한 정의


장차 대징벌이 덮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아예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징벌이란 하느님의 자비와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들마저 나의 수난과 죽음은 결코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만심 때문에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자만심이 그들에게서 지혜의 선물을 앗아갔던 것이다.

이제 똑 같은 일이 많은 사람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로서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나는, 탁월한 모양으로 신적 '정의'의 '산 제물'이었다.

나의 강생과 수난과 죽음의 신비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께서 타락한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결정하신 신비였다.

죄는 개인과 집단이 하느님께 지는 빚이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빚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든지 그 부분적인 상환을 요구하실 수 있다. 부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도 사회도 그 빚을 온전히 다 갚을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느님께서 나의 강생과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마련하신 것이다.


나눌 수 없는 하나


징벌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고 대단한 확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 주는 나의 단호한 대답은 이렇다 : 하느님에게는 '자비'와 '징벌'이 나눌 수 없는 하나이다. 너희의 표현대로 불의가 위험 수준을 넘어 버릴 때면 하느님의 '정의'가 그 헤아릴 수 없는 극점을 향해 계속 치달릴 것이다.


이미 앞에서 했던 말이지만, 믿음이 없고 불경한 이 세대의 도시들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악하다. 도처에 타락이 끼어들고, 마구 흘러 넘치는 세찬 물결처럼 악이 지상에 퍼져 가고 있다.

내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사제들이 거기에 오염되었다.

사람들이 이토록 보편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넘치는 그릇


가련한 사제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셨을 때도 항상 자비의 계획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니, 얼마나 근시안적이냐!

내가 피땀을 흘리며 아버지께 버림받고 있었을 때, 하느님의 엄중한 정의가 그분의 외아들인 내게 온통 쏟아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게다가, 내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진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러나 그 '정의'조차 무한한 '자비'의 계획에서 나온 결과이다.

믿음이 없고 자각이 없으면 하느님의 팔을 만류할 수도 없고, 교만하고 건방진 인류를 내리치시는 그분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느님의 진노의 팔을 만류)할 수 있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내 어머니이시다. 또한 선한 이들과 무죄한 이들의 고통, 산 제물이 된 영혼들의 영웅적이고 아낌없는 봉헌이 정해진 징벌을 완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릇이 넘치고 있다. 됫박이 거짓말처럼 가득 찼다. 인간의 눈이 어두워 무서운 재난의 전조를 못 보고 있을 뿐, 이미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내 사제들 다수가 하느님의 '정의'와 일치시킬 줄 모르는 하느님의 '자비'가 숱한 누룩을 발효시켜서, 새로운 기초 위에 정화되고 쇄신된 교회가 태어나게 할 것이고, 인류 역시 교만으로 인한 모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할 것이다.

'자비'와 '정의'가 보조(步調)를 맞추어 함께 나아갈 것이다.

아들아, 시급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고 속죄하고 회개하게 하는 일이라고 써라.

신뢰를 가져라!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시행하실 때도 항상 '사랑'이시니,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시는 분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내가 받는 배은 망덕과 모욕을 네 사랑으로 보상해 다오!

(1975년 10월 8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길


길은 항상 일정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 너비를 결정하는 양 가장자리 주위의 들과 산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나아가다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지점에서 끝난다.

아들아, 각 사람의 삶도 길과 유사해서 출발점과 최종 목적지가 있다.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이 있고, 이 길은 영원한 길이다.

그런데 지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와 지성이 있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과 유사할 정도로 위대하다.


지상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인간과 달리 본성이 시키는 대로 일정한 길을 따라가도록 정해져 있다.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길을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성과 의지로 말미암아 기묘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최종 목적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정해 주신 길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다.

어처구니 없고 흉측하기까지 한 일은, 사람들이 지상의 다른 어느 생물보다 그들을 드높여 주는 타고난 재간을 남용하면서 이 세상 나그네살이의 여정을 버리고, 영원한 멸망으로 데려갈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타락을 알지 못하고, 또 거짓의 두목인 사탄이 유혹과 속임수로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겨 농락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물론, 사탄은 사람의 자유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하기야 사람이 거기에 협력한다면 그리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벗어남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내 '구속'의 귀한 열매로 그 나약함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탄을 따르고 하느님을 거부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길


사람들은 오늘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나를, 곧 곧고 안전한 길인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교활한 모방자인 사탄이 알려준 길로 접어들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내 포도밭에 가라지 씨를 뿌리는 자들은 메뚜기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단지 어리석음을 퍼뜨리고 여러 이단으로 영혼들을 대량 학살하고 있을 따름이다.

허영심과 교만으로 달아오른 마귀의 화신인 그 이단 사설(邪說)들은 음란 서적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건만, 신학교나 수도원이나 학교 등 어디서나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치명적인 독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특히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모든 인간의 길은 모태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귀착점은 육신의 죽음이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결정하고, 그 이후에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선용했는지 악용했는지에 따라 행복하건 불행하건 영원한 삶이 시작된다.

영원으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낳음을 받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인 나는, 때가 차자 지극히 순결하신 내 어머니의 태중에 강생하셨고, 지금은 영광에 싸여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있지만, 또한 '신앙과 사랑의 신비' 안에서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으로 언제나 너희 가운데에 있다. 나 역시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을 걷고자 했으니, 출발점은 내 어머니의 동정의 태중에 잉태되는 것이었고 도착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서 그 위에 달려 죽은 육신의 죽음이었다.

'길'인 나는 너희를 위해서, 곧 너희 각자가 나를 따름으로써 평탄한 길을 가고 의심이나 불안을 품지 않으며 위험하게 빗나가지도 않게 하려고 나의 이 세상 길을 끝까지 다 걸었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나의 길은 - 이는 빗나가거나 되돌아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다 -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좋고 안전한 길이며 무한한 겸손의 행위로 시작되는 길이다.


무한한 겸손


하느님 아들의 강생은 무한한 겸손의 행위였으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이 기본적인 덕행이고 모든 덕행을 이루는 든든하고 본질적인 기초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숱한 사이비 신학자들은 이 신적 사실을, 즉 내가 외양간으로 쓰이는 춥고 누기 찬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조금만 생각해도 넉넉히 깨달을 수 있으련마는!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나의 길은 그렇듯 더할 나위없는 절대 빈곤 속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비 사회의 지지자들이면서 이른바 나의 추종자들이기도 한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내 사제들은? 또 내 복음의 신적 단순함을 망각하고 복잡한 궤변과 논리로 유해한 책을 쓰기를 즐기는 몇몇 주제넘은 신학자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느냐? 나는 무한히 단순한 하느님이므로 단순함을 사랑한다안락하고 난방이 잘 된 아파트를 좋아하는 저 신학자들은 그들의 구세주가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외양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또한, 부와 안락을 탐착하고, 아무것도, 심지어 정당하지 못한 것까지도 포기하려 들지 않는 그런 신학자들의 삶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들의 구세주의 삶과 얼마나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내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모든 호소에 귀를 막고, 단지 교황의 말을 반박하는 데만 재빠른, 무관심한 이기주의자들도 있으니, 이런 자들은 '진리'로 인해서 초래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기초조차 잡혀 있지 않은 그런 모든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내 교회에 끊임없이 흙탕물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내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을 잊어버린 자들이다 : "과연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인간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에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환희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1,18)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나는 내가 세상에서 걸었던 길을 통해서 이를 환히 보여 주었으니, 그것은 겸손, 가난과 순종, 더없이 혹독한 고통, 내 아버지와 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길이었다.

사제와 목자들을 위시해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바오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했던 이 말을 잘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았습니다."(로마 1,2)


교만과 자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천 년 전의 이교도들보다 더 나을 성싶으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길'을 버리고 더없이 천박한 육정의 어둡고 꼬불꼬불한 길로 접어들고서도,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그들은 나의 진리를 흐리게 하여 그들 자신의 교만한 자만의 구렁텅이 속에 매장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예언자들과 신(新)프로테스탄트 선전자들이 하고 있는 짓이 아니겠느냐? 이 신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것은 역겨운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품이, 처음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길을, 나의 길이 아닌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번번히 내 '자비'에 호소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자비의 때였지만 바야흐로 '정의'의 때가 오려고 한다.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 아버지이신 분께서 정의를 행사하시는 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겠느냐!

그들은 어찌나 분별이 없는지, 내가 나의 삶을 부인하기를,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나의 신원마저 부인하기를 바라고 있을 지경이다.


아들아, 한 번 더 네게 당부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회개하도록 호소하여라. 어떤 반발이 일어나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지만, 그들이 교만한 고집을 꺽지 않는 이상,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세상의 '빛'인 내가 가져온 빛을 향해 눈을 뜨기를 원치 않는 이상, 이 세상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암흑밖에 달리 수확할 것이 없지 않겠느냐?

네게 강복한다. 나와 함께, 너의 어머니이기도 하신 내 어머니께서 네게 축복을 보내신다.

(1975년 10월 12일)


아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교만에서 나올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마음쓰지 말아라. 그런 판단은 비누거품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1976년 6월 8일)


수많은 내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 네 고통과 기도를 바쳐다오.

(1976년 11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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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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