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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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러르는 사람과 닮으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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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silver0824] 쪽지 캡슐

2017-08-12 ㅣ No.113836

 

 




2017년 가해 연중 제19주일


<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복음: 마태오 14,22-33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우러르는 사람과 닮으려는 사람

 

건축학개론이란 영화는 한 사람이 속한, 혹은 속하고 싶어 하는 공간을 소재로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영화라고 합니다. 사소한 오해로 스무 살 대학생 때의 첫 사랑은 깨졌습니다. 그렇지만 15년 뒤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고 합니다. 남자는 대학생 때 자신이 지어주겠다던 여자가 원했던 집의 모양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척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직 그 지어주고 싶은 집에 그 여자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바람을 기억하고 그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둘의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냥 아직도 나 좋아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되는데 왜 두 사람은 아직도 내가 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방식으로 접근할까요? 왜냐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저 바라봐서 좋은 것을 넘어서는 무엇입니다. 그것은 감정이라 합니다. 감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감정은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사진을 보며 혼자서도 젖어들 수 있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혼자서는 생길 수 없는 무엇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힘들어 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감정인지 사랑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감성적으로 당신을 바라봐주기를 원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도 사랑 받고 싶으실 것입니다.

 

만약 어떤 두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그 중에서 진정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끔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나를 좋아하는 높은 단계의 어떤 특징을 찾아내야합니다. 감정이 아닌 사랑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분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바라보는 부류이고, 하나는 그분을 따라하려고 하는 베드로와 같은 부류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부류를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을까요?

저도 이제 어디 가서 강의를 하면 팬이라고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러다보니 교만하게도 그런 영광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어떤 때는 그렇게 환호해 주시는 분들에게 큰 기쁨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많이 받다보면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후배 신부가 저는 형님처럼 되는 게 목표에요. 형님을 넘어서겠어. 전 삼융이 될 거예요 ㅎㅎ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올 해 들은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닮고 싶다는 말이 더 행복합니다. 만약 아이가 엄마 아빠가 좋다고 하면서 닮기는 싫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좋을까요? 좋아하는 것은 흉내 낼 수 있어도 닮고 싶은 마음은 사랑해야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마음이지 않으셨을까요? 당신이 굳이 물 위를 걸으신다면 그저 박수만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박수는 이미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셔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하였기에 예수님은 산으로 홀로 피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런 우러름은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그저 감정적으로만 그분을 경외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면 분명 더 큰 무언가를 바라고 계신데도 말합니다. 다행히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이 얼마나 기다리던 말입니까? 두려워 떨며 당신께로는 오기를 원치 않는 제자들 가운데 당신이 걷는 그 모습대로 걷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교회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찬양만 하는 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한 대로 자신들도 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예수님은 그분은 예수님이니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지. 우리는 약한 인간이라 안 돼!”라는 말을 가장 가슴아파하십니다. 말로는 좋아한다고 하며 닮기는 원하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다가오기를 주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닮으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너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분이 하는 것을 하게 되고 그분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그분처럼 십자가의 삶을 살려고 하다가도 한계에 부딪히며 나는 그분처럼은 될 수 없는 거구나!’라고 말한다면 베드로처럼 물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믿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면 항상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다시 손을 내밀면 약한 믿음을 다시 굳건하게 하여 걷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예수님은 병자도 고치시고 물 위도 걸으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고 심지어 당신이 죽으셨다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닮으려고만 하면 당신께서 아버지께 청하여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하게 해 주실 것이라 하십니다.

저도 저를 뛰어넘겠다는 후배에게 약간은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 주어 만약 제가 앞서있는 게 사실이라면 진정으로 저를 뛰어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그저 나를 좋다고만 하며 나를 만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사랑스럽습니다.

 

구약의 스승과 제자 중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무엄하게도 스승 엘리야보다 두 배나 큰 성령의 힘을 원합니다.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2열왕 2,8-9)

스승을 뛰어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스승 영의 두 몫을 받습니다. 참 스승은 자신을 뛰어넘겠다는 제자가 밉지 않습니다. 닮지 않으려는 제자가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와 같은 정신으로, 베드로와 같은 정신으로 그분께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날 닮았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분을 닮으려는 마음보다 더 큰 찬미는 없습니다. 닮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가까워지려는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참 찬미를 바라시며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너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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