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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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24 -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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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4-24 ㅣ No.111639




2017
04 24 () 가해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4,23-31
요한복음 3,1-8


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040419)


< ’
생명의 책’ >


어제 부활 제2주일로서 우리는 주님부활의 팔일 대축제를 일단 마감했다. 무릇 부활축제의 기쁨은 성령강림대축일까지 50일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8일 동안 4복음서가 전하는 주님부활과 발현에 관한 성서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부활사건 자체가 초기교회의 제자들에게 차원 높은 신앙의 도전으로 부각되었음을 보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제자들의 부활신앙은 고무되었다. 주님부활에 관한 성서의 기록들이 공생활에 비하여 짧고, 일관성이 부족하고, 내용상 서로간의 모순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요한 20,30) 목적을 가진 기록들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이 생명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책이 또한 성서이다.

교회는 오늘 부활 제2주간 월요일부터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관한 복음선포를 접어두고 성령강림대축일 직전인 부활 제7주간 목요일까지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얻게 되길 희망하는생명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을 시도한다. 생명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이 시기 동안 봉독되는 사도행전의 독서말씀과 요한복음서의 복음말씀으로 시도된다. 특히생명의 책이라 불리는 요한복음에서 선택된(3, 6, 10, 12-16) 말씀들이 생명의 의미를 충분히 밝혀 줄 것이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오늘 복음(요한 3,1-8)이 그 장()을 열고 있다.

문맥상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오늘 복음의 이전 부분을 잠시 보자. 거기에는 과월절을 맞아 상경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동안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고 이 기적들을 본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도 아니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믿음도 아니다. 따라서 이 믿음은 영원한 생명과는 무관한 믿음이다. 그저 예수께 대한 호감(好感)이라 표현함이 적당할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사가는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2,24) 라는 표현으로 이 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암시는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예수님의 언명(言明)이 있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 대한 호감(好感) 이상의 마음을 가진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묻는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2) 이 대목은 어느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루가 10,25) 라는 질문과 비슷한 유형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는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만큼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이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이유이다. 이는 유다인들의 지도자에 속하는 니고데모가 다른 유다인들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속셈일 수도 있고, 니고데모 스스로가 지금까지 몸담아 왔던 유다교 신앙에 대하여 혼돈과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가 던진 질문 이상의 차원으로 응수하신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 새로 태어나야 함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의 반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은 강행(强行)하신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5-6) 이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영()에 의한 삶을 영위하려 하거나, 하느님의 나라를 직관(直觀)하려 하거나, 하느님의 나라에 입적(入籍)하려 하는 자는 물과 성령의 세례(洗禮)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이 말하는물과 성령의 세례는 우선적으로 내적 변화를 통한 새사람이 됨을 의미한다. 니고데모에게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육체를 지배하는 율법에 의한 묵은 삶을 벗어버리고 영을 지배하는 사랑에 의한 새로운 삶에로 초대받은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자신의 육과 피, 즉 자신의 힘과 열정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모든 일은 하느님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물과 영으로 재생(再生)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적인 생명에 참여하고 또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생명이 인간 고유의 생명을 속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생명은 오히려 인간에게 자유를 준다. 이 자유는 방종을 종용(慫慂)하는 자신의마음대로가 아니라 율법과 격식과 겉치레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양심대로행하는 행동이다. 인간의 양심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원초적으로 심어주신 신성한 품위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04041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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