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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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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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3-19 ㅣ No.110831

정호승 시인은 밥알은 밥그릇에 있으면 먹기 좋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밥알이 옷에 붙어 있거나, 입가에 붙어 있으면 지저분하게 보일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밥알은 떼어서 버리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겠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버리고, 버려질 것입니다.’ 저는 연과 연줄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연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야 아름답습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연줄을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줄이 끊어진 연은 곧 땅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연줄은 연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연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밥그릇과 같은 모세의 도움으로 갈증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연줄과 같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홍해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지만 결코 광야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로 만든 구리뱀이 있어야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기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식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는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합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 우물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이 물을 길어 먹던 곳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예수님을 대하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시 목을 축이는 물은 알지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남자를 6명이나 알고 지내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진실한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누구에게 드리는지, 참된 예배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니 하나씩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그 작은 씨앗 안에 숨어 있는 열매와 곡식을 보기 때문에 뿌릴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꿈 꿀 수 있고, 이 세상의 것들을 넘어서는 참된 진리를 위해서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물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살게 됩니다. 감사에는 3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차원의 감사를 드리면서 사는지 돌아봅니다.

첫 번째는 만약에 감사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한다면, 만약에 복권이 당첨된다면 감사드리는 경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감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두 번째는 때문에 감사입니다. 좋은 결과가 생겼기 때문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건강검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승진했기 때문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우리는 이런 감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감사입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큰 불행이 찾아오지 않았음을 감사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 성인은 바로 이런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식들의 생사를 몰라도 감사드렸습니다. 온 몸에 부스럼이 생겼어도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음에도 감사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드렸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실지라도 감사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양식은 이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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