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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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화요일 "탄탄대로인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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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cham3385] 쪽지 캡슐

2017-06-27 ㅣ No.112874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아버지집으로 오르는 탄탄대로인 예수 그리스도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 편에서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다."고 하시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비좁다."고 하셨는데 
그 문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찾아 내고 나면 생명에 이르는 문은 얼마나 넓고 그 길은 탄탄대로인지요. 

그 길은 이 세상 그 어떤 무기도 때려 부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또, 쭉뻗은 고속도로 그 자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계신 그분의 온 몸이
 바로 그 길이니 그렇지요.

그 길은 바로
이 길을 만드신 그분께서 직접
피를 뚝뚝 흘리며 그곳에 달려 계시며
당신의 온 몸을 타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도록
2000년 전에 마련해 놓으신 길입니다.

그분께서는 거기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태초에 하느님께서 당신이 가진
온행복을 다 주시고자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세기 1, 26) 하시고 
사람을 만드시어 온갖 것을 다 주시며, 다만 하나 
따먹지 말라는 열매만은 다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따 먹으면 죽게 되리라고(창세기 2,17)...

그런데 성경에 보면,  사람이 뱀의 유혹을 받아
따먹으면 죽게 되리라는 열매를  따먹어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두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올릴 수도,
아래로 내려 땅을 짚을 수도 있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하늘이건 땅이건 스스로 선택하라."고
가장 중요한 "자유의지"를 주셨지요.

뱀은 온 몸을 땅에 대고 기어다니는 짐승입니다.
보통의 짐승은 땅에다 손과 발을 대고 걸어 다니지요.
보통의 짐승이 온 몸을 땅에 대었을 때는
잘 때나 아니면 죽었을 때이고요...

그렇다면 온 몸을 땅에 대고 있다는 것은
죽어 있는 짐승과 같다는 뜻이 되겠지요...

두 손을 높이 쳐들어 하늘을 향할 수도 있게 창조 된 사람이 
온 몸을 땅에 대고 있어 죽은 것과도 같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느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따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과일이 넘쳐나고,
온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낙원에서 쫓겨나
죽을 몸으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돋고(창세기 3, 18)
들풀을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짐승의 가죽 옷을 입고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쫓겨난 그곳에는 천사가 불칼을 들고 있어
이무도 그곳으로 들어 갈 수 없게 되었지요.(창세기 3,24 참조)

사람이 뱀의 유혹을 받아 죽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려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려고 
두 손을 땅에다 대어 땅의 것을 소유하여 
자기가 주인이 되려는 욕심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사람이 두 손을 땅에 대고 있으면 절대로 하늘을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제가 교리 중에 그것에 대하여 설명을 할 때는 꼭
모두 다 일어 나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땅에다 손을 대고 하늘을 쳐다 보라고 해 봅니다.
아무도 하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지요... 못 믿겠으면 한 번 해 보세요...

살짝! 어거지로! 아주 힘겹게 볼 수는 있겠지요...

아뭏든 그리되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계신 그곳과
죽게 된 사람이 사는 세상과의 사이에
아주 단단한 막을 쳐 놓으셔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그 막을 뚫고
아버지가 계신 그곳으로 올라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자체이시며
그 사랑 때문에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그분께서
어떻게 가만히 계실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 올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당신께서 직접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의 죄악을 기워 갚아 살려 주시려고 
베들레헴 성 밖 짐승의 집에서 태어나시어, 
짐승의 먹이통 안에 누으셨고, 
급기야는 하늘과 땅을 가로 막은 그 "단단한 막"에
 당신의 두 손을 못박아 거기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계시면서 
당신의 온 몸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집으로 오르는 
탄탄대로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두 손을 못박은 그 막은 세상 끝까지 펼쳐져 있으며,
두 발이 박혀 있는 그 나무의 끝은 세상 가장 밑바닥까지 뻗어 있으며,
 그 십자가에 달려 계신 그분의 머리는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 계신 그곳에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절대로 꿈도 꿀 수 없었던 
하늘나라로 오를 수 있는 탄탄대로를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고요.

이제 왜 제가 그 길이 탄탄대로라고 했는지 이해가 좀 되시나요?

2000년 전에 주님께서 분명히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5,10)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대희년을 선포하시며 "대희년"을 준비하라고  "삼천년기"를 내시면서
 "이제 겨자나무가 다 자라 전인류를 덮을 만큼 컸습니다." 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신다고요...

대희년 전까지는 
그 길로 나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어려워 
"좁은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희년이 지나고도 17년이나 지난 지금은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이 쉬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일 때,
 이 길 그 자체인 "참행복의 길"에 대한 글을 다 썼는데도 지금껏 기다린 것이, 
2001년 6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멈춘 것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사람들의 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저에게도 때가 이르지 않아 14년 동안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짐승처럼 죽은 사람들 가운데 주님께서 "참사람"으로 내려 오신
 2000년 전 그때부터 이 세상에는 기원이 시작되었고, 
짐승처럼 죽게 된 사람들이 본래의 모습인 
사람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완전한 때가 이르렀다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완전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가 다 건설 되었다고...

이 세상에 건설된 하느님 나라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주님의 사도들이 12기둥을 세우고,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무수한 성인들이
벽돌 한 장 한 장이 되어 완성 된 건물입니다.

저도 다만 1972년 12월 부터 지금까지 
거기에 벽돌 한 장 얹고 싶어서 꾸준히 달려 왔는데, 
자비롭고 사랑 넘치시는 주님께서 부족하고 보잘 것없는 제게 
하늘나라의 엄청난 신비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대희년이 1년 더 연장이 되었었습니다.

저는 그때 마침 독일에 계셨던 오라버니 덕분에 200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있었던 대희년 폐막 미사 때
교황청 베드로 대성전 마당에 있었습니다.

 

 

대희년의 성문이 닫히기 하루 전 날! 그 성문을 통과했고, 그 다음 날 역사적인 그 순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집전하시는 그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주님 말씀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다하여도, 이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틀림없이 그 좁은문으로 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마음을 먹고 주님께로 나아가 그분께 손을 내밀어 도우심을 구한다면요... 그 길로 나아 가 그분의 몸을 타고 오르는데 꼭 필요한 일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이웃의 먹이로 내어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밥"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남이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라지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기를요.... 그러면서도 자신은 남의 밥이 되어주는 것을 무슨 큰 손해라도 보는 것으로 여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생각하지요. "네가 요~~만큼 내어 주면 나도 요~~만큼 내어 주겠다."하며 "자신의 마음 속 자"의 눈금을 잽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한 몸을 이루는 부부 사이에서 더욱 더 치열해 지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이 세상의 모든 부부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하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많이 변하게 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을 텐데요... 2000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어왔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먼저 남의 밥이 되어 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너무나도 손해를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선뜻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그 일을 몸소 "나"를 위하여 하셨습니다. 내가 생각지도 않은 그 때에 "나"를 위하여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오르시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나의 먹이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보고도 남을 위하여 먼저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당신께서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오르는 탄탄대로로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좁고 험해보여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 길이 들어가 보면 얼마나 좋은 지... 그곳은 처음부터 하느님 나라의 참행복이 철철 넘쳐 흐르는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그 길로 나아 오라고 그 길을 만들어 놓으신 그분께서는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관에 둘러쌓여 불타는 성심 그 안에서.... 그 문이 아무리 좁아도, 또 그 길이 아무리 비좁아 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내"가 그 문을 통하여 들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그분 안에서

울님들 모두 오늘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되시기를 바라오며 연중 제 12주간 화요일 첫 새벽 인사를 올립니다. 2017년 6월 27일 하느님의 보잘것없는 종 박미라 도미틸라 올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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