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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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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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15 ㅣ No.115449

 

2017년 10월 15일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 이사 25,6-10ㄱ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

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제2독서 필리 4,12-14.19-20

형제 여러분,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20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태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제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성적표에는 ‘수, 우, 미, 양, 가’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한자의 글자로 성적표에

표시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중에서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은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마 대부분 ‘우’ 이상은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 양, 가’는 좋지 않은

점수로 아주 나쁜 말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성적을 나타내는 이 한자는

모두 좋은 말이지요.
빼어날 수(秀), 넉넉할 우(優),

아름다울 미(美), 양호한 양(良),

가능할 가(可). 이렇게 모두

좋은 뜻이 있는 평가방식입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이유로 지금은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이 평가를 보면서 문득

리 성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더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면

그만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미, 양, 가’를 맞았다고 해서,

 “이 돌대가리야. 나가 버려!”

라고 혼내시지 않습니다.

문제를 틀렸다고 단죄하는 것은

세상의 기준일 따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저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원하실 따름입니다.

세상의 점수는 이 세상

안에서만 해당할 뿐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점수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고,

 변화되기를 끊임없이

촉구하실 뿐입니다.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주님의 잔칫상은 그 자리에

참석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어떻게

참석할 것인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이 잔치에는 선한 손님

악한 손님 할 것 없이 모두

초대됩니다.

핑계를 대고 잔치에

오지 않은 이를 비롯해서

선한 사람만 초대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호의이며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사람,

즉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것입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함께

섞여 있는 현재의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왜 교회에 악한 사람이

왜 있는가 싶지만,

이 역시 하느님의

호의가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 복음을 통해

영원히 함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최후의 심판 때에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혼인예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혼인예복은

세례 자체라기보다는

깨끗한 마음과 흠 없는 양심,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혼인예복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평소에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들을 통해서

예복은 더욱 더 아름답고

화려해질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어떤 예복을 차려입고

주님의 혼인 잔치에

가고 있나요?

사람들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살아간다.

(아나톨 프랑스)

오늘은 아빌라의 대 데레사 축일입니다.

축일 맞이하신 분 축하합니다.

"무서운 사람 좀 되세요"

(‘따뜻한 하루’ 중에서)

중국 당나라 때 천재 시인인

'이태백'이 한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붓을 꺾고

유랑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유랑하던 어느 날 산중

오두막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었는데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노인이 아침부터

뭔가를 숫돌에

열심히 갈고 있었습니다.
이태백은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노인은 큰 쇠절구를

숫돌에 열심히 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태백은 이상해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갈고 계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 갈고 있습니다."
이태백이 생각할 때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느 세월에 그 쇠절구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는지...

이태백은 노인이 행동에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지만,

계속해서 쇠절구를

열심히 갈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던

이태백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 다시 붓을 잡았고,

이후 유명한 문필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언제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냐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결코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노력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사람

한 번 되면 어떨까요?

빠른 시간의 흐름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러나 안타까움을 갖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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