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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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네 이웃을 너 자신 처럼 사랑해야 한다.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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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7-03-24 ㅣ No.110968

마르 12,28-34(사순 3주 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데 묶으셨습니다.

 

 

 

사실, 이 이중계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변혁,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단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있을 뿐!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야,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바로 한 몸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이웃이 곧 나요, 이웃의 아픔은 바로 내 자신의 아픔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곧 이웃이요, 이웃이 곧 하느님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 형제가 곧 하느님이 됩니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 됩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빌려본다면, 남편에게는 아내가 하느님이요, 상인에게는 손님이 하느님이요, 본당신부에게는 본당신자들이 하느님이요,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저희 공동체 식구들이 하느님입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저는 아직 우리 식구들을 그렇게 하느님으로 섬기지도, 봉사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나의 하느님이신 식구들께 참으로 죄송합니다.

 

 

 

이처럼 ‘사랑의 계명’은 새로운 관점,새로운 사고와 인식의 틀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 새로운 자기에로의 전환입니다. 곧 ‘내’가 중심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 바로‘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또한 ‘남’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변화와 실천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어집니다.

 

이를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2)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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