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부인 입니다. 


(복자 풀톤 쉰 대주교)

 

 

고해성사란 무엇입니까?  일종의 벌거벗음입니다.

 현대에 유행하는 피부가 아닌, 도덕적인 나신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 상태에서 "주님, 이것이 저의 본모습입니다. 저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해성사를 할때 인간 쓰레기(human garbage)의 재활용(recycling) 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오늘 날 쓰레기 재활용 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 쓰레기 재활용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고해성사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제를 통해 죄를 사함받을 때마다 항상 나타나는 죄의 효과(effect)가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어린이들이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등 무언가를 잘못할 때마다  나무판에 못 하나씩을 박아야 한다고 해 봅시다.  이후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엄마가 그 잘못을 용서해 주면서 "이제 그 못을 뽑아라" 한다면 무엇이 남습니까?  네, 맞습니다.  못으로 뚫린 구멍이 남습니다. 이것이 죄의 효과입니다. 따라서 죄가 용서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배상하는 행위를 해야 하며, 이것이 못으로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보속을 받는 이유입니다.  고해성사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함으로서 인생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영국 런던의 성 패트릭 성당에 오던 어느 남자가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내가 성당 문을 열면 그는 아침 7시쯤 나와 뒷자리에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책도 없이 기도를 하다가 9시가 넘으면 영성체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밤에 성당 문을 닫을 때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몇 달동안 이를 관찰한 후,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전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착하게 살았습니까?" 이는 그를 실험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예"라고 한다면 나는 그가 전혀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받은 은총에 비하면 나는 예전에 비하여 몇 천배나 더 나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신발을 저당 잡히고 술을 마실 정도로 심한 중독이었으나 매번 재의 수요일이면 술을 끊기로 맹세하고 부활절까지 그를 지켰습니다. 그는 몇 년동안 이를 지켰습니다. 그러던 중 "내가 40일 동안 술을 끊고 착하게 살 수 있다면, 40년 동안 착하게 살 수도 있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40년 동안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았습니다. 

 

 

영혼이 어지러울 때, 주님께로 가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어느날 성당에 들어가서 신자석 앞줄에 앉아서 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런던 코벤트 가든 구역에서 성당구역까지 들어가는데는 세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이 성광을 들고 성체 강복을 시작하려는 순간, 그에게는 평생 그에게 닥쳤던 유혹을 합친것보다 더 큰 엄청난 술과 악에 대한 갈망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는 고통이 너무 커서 참을 수가 없어서 신자석을 뛰쳐나가 중앙통로를 달려 그 세 개의 계단위에서 비틀거렸습니다. 성체 강복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는 마음을 찢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고해성사를 보겠습니다." 그 때 고해를 한 후 그는 지금까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도합니까?" "18시간 정도 합니다" "(기도가) 잘되는 날은?" "24시간이요"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을 때와 같은 허름한 곳 (dive) 에 살고 있었는데, 많은 밤들을 무릎을 꿇고 세상의 모든 알콜중독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 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 쓰레기의 재활용입니다. 주님께서 "99명의 의인보다 1명의 죄인의 회개를 천국에서 더 기뻐한다"고 하신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사제관에 찾아온 두 명의 소녀로부터 뉴욕 허드슨 강 옆의 아파트로 즉시 가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키티가 죽어가고 있어요" "키티가 누구인데?" "그 녀를 모르세요? 모든 사람 이 그 녀를 알아요" 나는 그녀의 병에 대해 물었고, 그들은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종부성사를 위한 성체와 성유를 가지고 우중충한 5층 계단을 올라, 내가 평생 본 중 가장 더러운 방 중 하나에 들어섰습니다. 고기와 기름, 종이와 걸레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한쪽 구석 의 더러운 간이 침대(cot)에 매우 아파 보이는 한 소녀가 누워 있었습니다. "너 괜찮니?" "네, 모든 사람이 절 알아요" "키티, 이제 주님과 화해를 할 준비 가 되었니?" "아니요, 왜냐면 저는 뉴욕에서 가장 나쁜 여자애거든요" "아니야, 키티. 왜냐면 뉴욕에서 가장 나쁜 여자애는 자기가 뉴욕에서 가장 착한 아이라고 할테니까." 나는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습니다. "안돼요. 저는 너무 썩었어요. 시퍼렇고 검은 이 팔을 보세요. 남편의 짓이예요. 내가 거리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나를 때리거든요. 그 사람이 나에게 독약을 먹였어요. 난 독살되어 죽어 가요." 

 

나는 복음서에서 주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었고, 마침내 그녀는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성유 도유는 하지 못하였는데, 그녀에게 주님의 자비를 확신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 사이 독약은 그녀의 뇌의 여러 부분에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녀는 자기의 신체 기관들을 잃어 버린다는 생각 속에서 자기 어머니에게는 귀를, 친구에게는 눈을, 다른 친구에게는 혀를 준다는 등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유를 도유하자 그녀는 곧바로 회복하였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미안해, 키티.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그녀는 말했습니다. "네, 제가 좀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지요." 

 

그 이후로 그녀는 그가 함께 일하던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토요일 밤 고해성사를 위해 앉아 칸막이를 열면, "신부님, 이 애가 키티가 말씀드린 그 여자애 예요" "이 애가 키티가 말씀드렸던 남자애예요." 하면서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밤 사제관에 있는데 키티가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지금 사람을 죽인 여자애가 하나 있어요" "어디 있는데?" "성당안에 있다고 했거든요" "거긴 잠겨 있는데?" "그렇다면  길 건너편의 현관에 앉아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문으로 가서 그 아이를 오도록 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죄를 용서받은 후 자비의 사도직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고해성사의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우리의 짐이 무거워질 때 주님께 갈 수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외부적 표지까지 받습니다.  이 외부적 표지들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부인 (denial of sin)입니다. 내가 장님이면서 빛이 없다고 믿으면 내가 영영 볼 수 있겠습니까?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서 소리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죄인인 것을 부인한다면, 어떻게 내가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죄악보다 더 나쁜 것은 죄의 부인이며,  이것이 우리의 생을 대하는 현대의 태도입니다. 

 

 영혼이 어지러울 때, 주님께로 가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좋은 목욕만큼 생기를 주는데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죄의 용서만큼 영적으로 생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고해성사의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무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께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위로가 되는 이 한 마디를 남기겠습니다.  여러분이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결코 구세주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아멘.  

                                                                                                                         (http://www.banghak.or.kr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