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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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 SDB(어두웠던 실패의 밤은 지나갈 것입니다. 이른 아침의 신선함 속에 주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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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4-26 ㅣ No.129308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어두웠던 실패의 밤은 지나갈 것입니다.

이른 아침의 신선함 속에

주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밤새 허탕친 제자들의

허탈한 모습을 묵상하다보니,

낚시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떠오릅니다.

해 떨어질 무렵이면

연세 지긋하신 조사님에게

집중적으로 전화가 옵니다.

백퍼센트 요즘 가정의

절대권력자들이신

안방 마님들이십니다.

어떤 어르신들은 아주

그럴싸하게 핑계를 댑니다.

지금 어디야? 왜 아직 안들어와?”

, 지금 친구들이랑

어디 좀 나와있어.” 어디?”

~ ~ ~ 영안실에.”

또 영안실? 이미 돌아가실 분들

다 돌아가신 듯한데!”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낚아올린 사람일수록

목소리의 톤이 커지고 높아집니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저절로 나옵니다.

우쭐한 마음에 못잡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보라,

저렇게 해보라 훈수도 뜹니다.

집에서 전화라도 걸려오면,

주변 사람이 다 들릴정도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스무 마리나 잡았어. 회를 떠갈까?

오케이! 다들 모이라 그래!”

그러나 헛탕친 사람은 잔뜩

주눅이 들어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뭘 물어봐도 허탈한 웃음만 짓습니다.

자신감도 없어지고 태도도

크게 위축됩니다.

단체로 밤낚시를 떠난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스승님이 그리도 무기력하고

끔찍하게 세상을 떠나신 후,

제자들의 심정은 참담함,

당혹스러움, 난감함,

그 자체였습니다.

갑자스레 삶의 의미요 기둥, 존재의

이유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의 장밋빛 미래요 희망이었던

스승님께서 그리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시고 자신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셨으니,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에,

몸이라도 좀 움직일까 싶어,

고기를 잡으러 야간 작업을

나간 것입니다.

고기라도 넉넉히 잡혀주었다면,

숯불구이에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참담하고 쓰라린 심정을

달랠 수 있었을텐데,

그날 따라 밤새 애썼지만

한마리도 못잡았습니다.

뭘해도 안되는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해서,

넋을 잃고 앉아있는 제자들 사이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그러자 우울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반전됩니다.

애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요한 복음 215)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대화,

그리고 제자들의 단순한 순명과

실행의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그물이 찢어질듯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일하느라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겉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든 행위는, 스승님임을 인식한

수제자의 큰 수치심, 송구스러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던 밤 바다는

어두웠던 실패의 밤이었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이른 아침의

신선함 속에 주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제자들의 실패는 주님의 현존으로 인해

대성공으로 변화됩니다.

제자들이 힘을 합쳐 물가로 끌어올린

그물 속에 든 물고기의 숫자는

153마리였습니다.

500그람짜리 우럭 10마리가 든

어망 무게도 엄청난데,

1킬로씩 나가는 큰 물고기

150마리였으니,

그 무게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큰 물고기 153마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현존과 부재 사이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주님께서 우리 내면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부재하실 때,

풍기는 분위기는 절망과 낙담,

고통과 시련, 우울함과 나약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활발히

현존하시도록 우리를 비우고

말끔히 정화시킬 때,

풍기는 분위기는 따스함과 기쁨,

희망과 풍요로움,

강한 생명력과 낙천성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절망과

시련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를 향해 친히 다가오시고,

풍요롭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 힘겨워는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이 아침

우리에게 건네는 말씀이 참 따스합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복음 2112)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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